이 책은 『대학생 글쓰기 특강』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처 그 책을 구입하지 않아 순서를 잘 못 택한 후회는 하고 있지만, 그보다도 제목에 비해 내용 자체는 순수 글쓰기를 지향한다기 보다는 입시준비생의 논술 대비용 내용이었다는 것 때문에 조금 실망 스러웠다.
하지만 글쓰기의 스킬을 배울수 있었다는 것과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 가르침이 왜 현재 나의 글쓰기와 다를수 밖에 없는지 정확한 가르침을 받은 것 같아 나름 해방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포스트 모던 시대의 저자란 '편집자'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그 동의의 실천을 지향한다.(4)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전략적 사고 없이 글을 쓴다.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담담하게 드러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선 안 된다. 그건 마치 이성관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채 혼자서만 사랑 감정을 독식하려는 것처럼 이기적인 발상일 수 있다. 내가 쓴 글은 우선적으로 남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해를 돕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 마음가짐이 바로 '전략적 사고'다.(13)
과도한 독설은 독설의 악순환을 낳기 마련이다.(27)
"논술은 주장을 담는 글쓰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문제 해결을 위한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논술은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31)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사회과학 이론과 개념들을 공부할 때에 그것을 현실 세계와 분리시킨 '박제된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달리 말하자면, 실제 삶과는 동떨어진 현학 욕망이 강하다는 것이다.(57)
앞으로 새로운 사회과학 이론과 개념들을 접할 때에 "이건 어떤 현실 문제에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는 습관을 갖도록 하자.(61)
꼭 글쓰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일상적 삶에서 관성과 타성에 가까운 심리의 유혹을 자주 받는다. 친한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는 일상적 삶에선 그런 유혹에 굴복해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만인이 지켜보는 무대에 올려진 것과 같은 논술 글쓰기에선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미 익숙한 자신의 심리 상태를 의심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검증 결과에 따라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도 필요하다.(71)
"한국 정보의 방식은 '여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잘못됐다. 왜냐하면~'입니다. 'No~because'방식이지요. 그러나 잘못된 점을 지적할 때에도 'Yes~but'방식이어야 합니다. '당신들이 좋은 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설득할 수 있습니다."(74)
"접속어와 지시어를 지나치게 많이 쓰는 것도 눈에 띄는 문제입니다. 거의 매 문장마다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 ~해서, ~했는데' 등의 말을 많이 씁니다. 이것은 구어체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은 내적 연결성에 의해 연결이 되는 건데, 접속어에 의해 억지로 연결시키면 더욱 뜻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78)
속어를 사용하는 심리는 글을 쓰는 이 자신의 후련한 느낌을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80)
과도한 '자기 드러내기' 역시 구어 마인드와 관련이 있다. 구어체는 때로 글의 맛을 살릴 수 있지만 관리가 필요하다. 물론 그 관리는 구어체 사용 마인드까지 포함한다.(81)
"'~것이다'형의 문장을 쓰기 전에 '~이다'로 바꾸어도 문제가 없는지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85)
'시대정신'이니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니 하는 거대담론을 구사하게 되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 거대함에 압도돼 빨려 들어가게 된다. 자기 생각을 정당화하려는 포장심리로 오용돼 습관으로 굳을 위험이 있다는 걸 조심하자.(88)
가장 바람직한 건 필요에 따라 '거시'와 '미시' 담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사회현상을 분석할 때에도 탁월한 안목을 제공해준다. 사회현상을 거시적으로 보고 미시적으로도 보는 이른바 '차원구분'을 시도해 보자.(90)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거대담론' 편향성에 대한 경계다. 거시와 미시, 추상과 구체를 동시에 사랑하자. 그것들은 서로 가로지르면서 뒤섞이기도 한다는 걸 유념하자. 세상은 예술이다. 복잡하게 보자. 역설 같지만 그래야 단순하게 이해된다. 처음부터 단순하게 보면 뒤죽박죽이 돼 세상을 이해하는 걸 아예 포기하게 된다.(91)
"우리가 동조하지 않은 의견들을 담고 있는 텍스트, 우리가 좋게 생각하지 않는 이즘의 영향권 아래 있는 텍스트를 읽어보는 것도 좋은 훈련이다. .. 생각의 자유를 가로막고 자기 외의 다른 사상을 금지하는 이즘은 받아들이지 말라!"(100)
"관점을 논술할 때는 각 관점을 객관화시켜서 논의하는 것이 옳고, 입장을 설명할 때는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염두에 두고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옳다"(101)
도식주의(圖式主義)란 모든 사물을 이미 이루어진 틀이나 공식에 맞추어 조금도 바꾸지 않고 곧이곧대로 다루려는 경향을 의미한다.(111)
"대중소설을 읽는 경우에 작동하는 것은 소위 공리주의적인 쾌락 계산법인데, 지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크게 노고를 기울이지 않을 때 산출되는 즐거움이 큰 법이므로, 대중소설의 사건이나 등장인물들은 스테레오타입인 경우가 많다"(114)
성공한 경영자의 경우엔 그의 모든 행위의 의도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반면, 실패한 경영자의 경우엔 그의 모든 행위의 의도가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실패한 경영자일 망정 자기 딴엔 잘해 보려고 했던 일의 의도조차도 부정적으로 평가된다면 그것보다 더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123)
- 결과주의에 대한 경계의 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원인과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 놓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논술 글쓰기에서 결과주의에 대한 이해는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124)
'심리적 유혹'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감정도 검증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간 당신은 매우 이질적인,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주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 왔다. 인터넷에 들어가서도 그렇게 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배설에 가까운 발산을 해 왔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겐 '감정 통제'의 경험이 없다. 많은 학생들의 글쓰기에서 드러난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129)
"우리 언론은 누가 무슨 발언만 해도 '파문'이나 '논란', 심지어 '일파만파'라는 말을 쉽게 사용한다. 실제로 그 발언이 파문이나 논란을 일으키기 전에 미리 이런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논란을 조장한다. 이런 호들갑이 역겨운 이유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생각이 들어오면 그것이 성숙된 방식으로 논의되기도 전에 반대 의견을 가진 언론이 세를 규합하고 연대해 새로운 새악을 무조건 밀어내고, 다른 의견이라도 낼라치면 마녀사냥의 태세를 갖추기 때문이다."(135-136)
우리는 이런 식으로 공공 영역에서 생명력을 잃고 남발되는 단어들에 대해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하면서 논점을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137)
권력자들이 평론가 행세를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146)논쟁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몰입의 쾌락을 만끽하는 동시에 그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 몰입은 그 어떤 장점에도 불구하고 시야를 좁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넓게 보고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성찰 없는 논쟁적 글쓰기는 글로 하는 막싸움에 다름 아니다.(146)
실제로 현실세계에서 '비판'은 자주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게임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내가 하면 비판, 남이 하면 비난"이라고 보는 것이다.(166)
감정이 앞서다 보면 은유의 오.남용을 저지를 수 있다. 그걸 경계하기 위해 '은유로서의 병'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가 하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은유법을 동원한 비판을 할 때엔 '은유는 폭력'이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스스로 검증 과정을 거쳐보는 것도 좋겠다.(170)
"자본주의 사회만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자본주의는 전쟁을 먹고 삽니다. 그리고 전쟁은 자본주의를 먹고살죠. 사회가 이윤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한 국가는 곧 사람들과 여타 자원들을 착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윤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은 전쟁에 연루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172)
오늘날의 대중민주주의는 설득을 통치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사실상 수사학의 복권을 가져왔다.(188)
에델만이 관찰하는 정치언어엔 '가치체계의 전도(inversions of the value hierarchies)'가 무성하게 일어나고 있다. 예컨데, 전쟁은 평화를 위한 것이고, 사형은 폭력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이고, 가난한 사람과 젊은이들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건 그들을 돕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걸 거부하는 건 그들의 자립과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한 것이 된다. 매스미디어에서 1년 365일 내내 쏟아져 나오는 언어엔 그런 '가치 체게의 전도' 현상이 흘러넘친다.(190)PC(Political Correctness)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을 주창하면서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에 근거한 언어 사용이나 활동에 저항해 그걸 바로 잡으려는 운동이다.(195)
"백두산 천지의 장관을 보고 '위대한 자연'이 아니라 '위대한 절망'이라고 표현한다면, 인간의 능력으로는 창조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을 인간의 왜소함에 견주어 더욱 강조하는 한 차원 높은 수사가 된다."(204)
사자성어 화법의 최대 강점은 압축성과 신축성이다.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경우라는 걸 전제로 하여, 논술 글쓰기에서도 그 활용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212)
행여 법조계 문자의 흉내는 내지 말자. 그건 최악의 문장 형태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215)
제가 보기에 이오덕 선생님은 언어의 주된 목적을 커뮤니케이션으로 보는 게 아니라 민족적 순수성 보존으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224)
이는 이른바 설득적 정의의 오류(persuasive definition)다. 용어를 정의할 때 부정 또는 긍정의 방향으로 감정이 실린 방식으로 정의 하는 걸 말한다.(242)
'READING >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리뷰] 담론의 발견 (0) | 2009.08.09 |
---|---|
[북리뷰] 한국인을 위한 교양 사전 (0) | 2009.07.25 |
[북리뷰] 한국 논쟁 100 (0) | 2009.07.24 |
[북리뷰] 유식의 즐거움 (0) | 2009.06.30 |
[북리뷰] 도덕경 (0) | 2009.06.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