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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인문

[북리뷰] 도덕경

by 체리그루브 2009.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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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지음, 현암사 펴냄, 1995.12.01 발간

 

<인도로 간 예수>라는 책이 기억난다. 예수의 탄생후 30세가 되기까지의 행적이 성경에 나타나지 않아 예수가 인도로 간 것이 아닐까하는 기발한 생각에서 얻어진 추측성 이야기일 것이리라. 하지만, 인간의 생각은 동서고금 비슷해서 그런지 그의 사상이 인도에도 있는 것 같고, 마치 그것을 차용해서 쓴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덕경> 풀이는 마치 예수가 중국으로 가서 도가 사상을 배워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말이 노자의 말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그리고 예수의 말이 닮아갔던 만큼이나 더욱 궁극적 실제에 대해 포괄적이고 우주적인 설명들을 하는 것 처럼 보인다.

 

<도덕경>과 같은 중국 고전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으나, 그것은 마치 성경읽는 것과 같은 것이구나 싶었다. 한 번 읽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주 들여다 봄으로써 새로의 의미해석이 매일 가능한 것이라는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뉴턴의 말과 같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더 먼 곳을 볼 수 잇게 된 셈이라고나 할까.(11)

'도'란 직관과 체험의 영역이지 사변과 분석과 정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20)

 

무위란 보통 인간사에서 발견되는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남을 의식하고 남 보라고 하는 행위, 자기 중심적 행위,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억지로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의 부자연스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고(natural) 너무 자발적(spontaneous)이어서 자기가 하는 행동이 구태여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행동, 그래서 행동이라 이름할 수도 없는 행동, 그런 행동이 바로 '무위의 위(無爲之爲)', 함이 없는 함'이라는 것이다.(26)

 

도같이 궁극적인 것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 못 된다는 뜻이리라. 물론 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 실재는 체험의 영역이지, 사변적으로 따지거나 논리적으로 캐내려는 지적 노력의 대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37)

 

<법구경(法句經)>에 "육중한 바위가 바람에 움직이지 않듯 지혜로운 사람은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6:6)고 했다. 공자님도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염려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않는 일이 있나 염려하라."(<논어> 1:16)로 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approval-seeking mentality)'에서 해방되면 얼마나 홀가분한 삶이 될 수 있을까?(70)

 

묵직하고 조용하게 사는 삶, 어느 면에서 우직하기까지 한 삶이 결국 긴 안목으로 볼 때 그런 경박한 삶보다 훌륭하다는 것이다."(122)

 

"아무튼 여기서도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휨과 검은, 영광과 오욕 같은 반대 개념을 대할 때 어느 한 쪽을 택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태도가 아니고 양쪽을 모두 껴안는 '이것도 저것도'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지도자가 이런 태도와 안목을 지닐 때만 진실로 '세상의 본보기'가 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물이 모여들듯 천하의 인심이 그에게 모여드는 '세상의 계곡'이 된다고 한다.(129)

 

요즘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끼니를 걱정하는 절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으로서 무엇이나 남처럼 가지려 하는 마음 때문에 생겨난다. 흔히 말하듯 '필요(need)'보다도 '욕심(greed)'에서 생기는 가난이다. 이럴 때 분수를 알고 자족할 줄을 알면 빈곤감이 없어지고 자기에게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처럼 느끼며 살 수 있다.(149)

 

도가 이러니까 도를 따르는 사람, 특히 도의 원리에 따라 사람을 이끄는 지도자는 이런 식의 삶을 살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남에게 이로움을 줄 뿐 공로를 주장하거나 이름을 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153)

 

훌륭한 사람이란 자기 덕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다.(169)

 

사실 이런 피상적이고 천박한 뜻으로서의 예가 강조되는 사회는 생명력이 없는 사회이다. 사회의 통념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삶의 깊은 의미를 찾아 이를 추구하는 '참삶(how to live)'의 문제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오로지 사회에서 떠받드는 고루한 윤리 체계를 비판 없이 받아들여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만 매끈하게 꾸미려는 '처신(how to behave)'의 문제가 주관심사가 되어 버린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윤리적 창조성이나 자발성은 없고 어떻게든지 남의 눈치나 살살 봐 가며 남 하는 대로만 따라가려는 일률적 획일성만이 판치게 된다. <도덕경>은 이런 약삭빠르고 얄팍한 예의 껍질을 깨어 버리라고 권고한다. 이런 식의 예는 모은 '혼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피상적인 것에 신경쓸 것이 아니라 더욱 근본적인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170)

 

조화는 자기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겸손함을 전제로 하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이다.(185)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능력을 주시옵고,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함을 주시옵고, 이 두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어떤이의 기도(194)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간을 소비하면서 죽어 가는 것이다. 살아 가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죽어 가는 연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주어진 삶을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의연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218)

말하자면 우리의 '궁극 관심'이 흥청망청 내가 누릴 수 있은 물질적, 경제적 풍요로움의 추구가 아니라, 진리와 사랑과 정의 같은 대도의 길을 걸으면서 거기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힘쓰는 일이 되리라는 것이다.(229)

 

엄격하게 따지면 한 쪽의 부란 다른 쪽의 희생을 전제로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내가 번 돈이니까 내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남보란 듯' 흥청거리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도둑이 따로 없다. 노자에 의하면 한 쪽에서는 굶어죽는데 우리가 이를 못 본 체 내 돈 내가 쓴다고 하며 흥청거리면 그것이 바로 도둑이라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럴 경우 우리는 도둑보다 더 못할지도 모른다. 도둑은 자기가 한 일을 잘못으로 알고 부끄러워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내 재산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사람은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 모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겠다.(230)

 

성인은 욕심이 없다. 있다면 다만 욕심을 없애는 욕심뿐이다. 불교에서는 욕심을 없애겠다는 욕심도 욕심인 것만은 틀림이 없으므로 그런 욕심마저도 없어진 완전한 무욕의 상태를 이상으로 보는데, <도덕경>에서는 거기까지 말하고 있지는 않다. 아무튼 성인은 욕심을 버리겠다는 욕심 외에 딴 욕심이 없기 때문에 남이 귀하다고 하는 것도 귀히 여기지 않는다. 집념이나 집착이 없기에 뭐든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의연함이 있다.(274)

 

선거철만 되면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오는 많은 사람을 보라. 그 가운데 상당수는 자기를 낮추는 척이라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겸손을 가장하여 환심과 표를 사려는 것 뿐이다. 이런 식의 겸손은 아무리 허리를 많이 굽혀 몇 백 번 절을 한다 하더라도 참된 의미의 자기 낮춤이 아니다.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라."하는 성경구절이 생각난다. 겸손은 수단이나 목적이 될 수 없다. 누가 겸손해지고 싶다고 해서 겸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속사람이 바뀌어 사람됨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때 나타나는 자연적인 태도이다.(281)

 

군사 대국은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앞에서도 지적한 것과 같이 역사적으로 큰 제국은 그 강함 자체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다. ... 미국이 망하기 전에 다시 약함을 회복할 수 있을까? (322)

 일반적인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지만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 가는 것이다.(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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