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신화와 전설에 담겨있는 '변신 이야기'를 흥미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변신'이 동양적인 세계관과 닿아 있었으며, 주로 여성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발견되었던 점이다. 전통사회 여성들의 정체성은 「선녀와 나무꾼」, 「콩쥐 밭쥐」모티브를 새로운 관점에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저자는 변신 이야기에 관한 시작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고대인들은 동물에 대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무시무시하고 사나운 동물들은 그들을 둘러싼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피하고 싶으면서도 숭배하고 싶은 대상이 이었다. 또한 동물은 그들이 사냥해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경배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들이 사냥터에 나가기 전에 동물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에는 그 동물의 강한 힘이 인간에게로 전이되기를 바라는 주술적 의미가 들어있었다. (17)
이렇게 하여 강한 동물로 변신하는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변신 이야기는 '이루지 못한 소망'에서 모티브가 된 다음의 이야기로 진전된다.
마을을 구하기 위하여 돌로 변하는 비한족 신화의 영웅들이 주로 남성이었던 것에 비하여 중국의 문헌신화에는 여성들이 변신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그 변신은 주로 이루지 못한 소망 때문이다. ... 이루지 못한 소망 때문에 변신하는 여신들의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봉건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강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61)
비근한 예(例)로서, 항아라는 여신이 남편을 버리고 월궁으로 돌아간 후 흉한 두꺼비로 변했다고 하는 전설에는 다음과 같은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었다.
한대(漢代)라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무제(武帝) 이후 유가(儒家)가 통치 이데올로기로 채택된 후, 여성이 지켜야 할 덕목에 대해 조목조목 규정짓기 시작했던 시기가 아니던가. 전국시대 문헌에도 이미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라는 기록이 보이거니와, 한대에 이르면 그것은 더욱 공고화 된다. 『열녀전』이라는 책이 유향에 의해 편찬된 것도 결코 여러 훌륭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황제가 좋은 여자를 가까이 하고 요사스런 여자를 멀리 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려 했던 것이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 위대한 창조신 여와도 복희라는 남신의 배우자가 되어 뱀 모양의 꼬리를 꼬고 있는 형태로 등장했던 시기였다. 항아가 남편을 배신하고 혼자서 불사약을 먹은 행위는 용납될 수 없었다. 그래서 기록자는 항아를 흉한 두꺼비로 변하게 했다. (67)
망부석 이야기는 전통사회 여성의 보편적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망부석이 갖는 이미지는 기다림과 희생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남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된다고 여겼던 전통사회 여성들의 일반적 관념이었다. 중국에서나 우리 나라에서나 망부석 전설은 여성의 '수동적' 기다림을 보여준다. (72)
옷을 입으면 새가 되고 벗으면 여인이 된다는「선녀와 나무꾼」류의 이야기도 비한족 신화에서 자주 발견되어지는 전설인데, 빼앗긴 '깃털옷'으로 인해 남편에게 수동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억압된 전통 사회 속에서 정체성의 회복(여성의 구원)을 다룬 이야기 마저도 남성에 의해 수동화 되어짐을 보여주는 데, 잘 알려진 '잃어버린 신발 한 짝' 이야기가 그것이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와 콩쥐의 꽃신은 신발을 벗어 놓고 떠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뛰어난 남자나 왕에 의지해 여성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수동적 여성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여기서의 갈등은 주로 전처의 딸과 계모의 딸로 빚어진다. 한 남자를 위한 쟁취와, 늘 희생당하는 전처의 딸, 그리고 남자의 구원이 모티브인 것이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우리 나라 고소설이나 중국 위진시대 이후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불교적인 인과응보 관념이나 권선징악의 개념, 윤회와 업보 등의 관념이 들어간 전설들로서 고대의 변신 신화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88)
저자는 이러한 신화와 전설 속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과 죽음을 다루면서 동양적 세계관을 주목한다.
인간과 세계에서 동떨어져 군림하는 신의 이미지는 변신의 세계와는 관계가 없다. 자연을 인간과 같은 층차에 놓았던 고대 중국의 장자식 사고와는 달리, 자연을 인간의 하위개념으로 놓았던 성서에서는 신들이 다른 몸으로 변신하는 신화들이 나타날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은 "세계의 신화 가운데서 구양성서의 신화만큼 우울한 것은 없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7)
죽어서도 다른 형체로 변해 생명을 이어가는 그들에게 '비극적'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나라나 중국의 고소설들이 대부분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는 이유 역시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다른 형체로, 동물이나 식물의 형태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에서 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훤히 순환하는 세계에서 생명은 직선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1)
이 짧은 책의 결론은 이렇게 끝난다.
자연을 인간의 정복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서구의 기독교적 전통과는 달리, 고대 중국인들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여겼다. 인간의 아름다운 이성에 대한 자각은 일찍이 주(周)나라 때부터 있어 왔지만, 그리고 유가와 도가의 시간관이나 자연관이 조금 다른 점이 있긴 했지만, 시간을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으로 파악한 점, 세상 모든 것은 변할 뿐 사라지는 것은 없다는 관점,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순환적 고리의 일부로 보는 시각, 이러한 사유방식들이 중국인들의 사고 기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바로 변신 신화가 발생하고 전승 될 수 있는 기제가 되었다. (90)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면서 보니, 너무 동양사상이 위대하게만 보이는데, 서양의 직선적 사고와 대비해서 이해와 시야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지, 누가 낫고 못하고식의 사고는 위험할 것으로 보인다. 현실이 팍팍하고 힘들고 돌파구가 없어서 찾는 변신이야기의 슬픈 시작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전족을 신은 여인의 하염없는 고통과 신세한탄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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