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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소소한 일상

창조론 비판

by 체리그루브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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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래전에 읽었던 것을 옮겨, 그때의 생각을 다시 정리하는 차원에서 기록하는 것이다. 한때 창조과학을 신봉하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신상언씨가 뉴에이지 사상을 극혐하던 때와 그 시기를 같이 하는데, 이는 소위말하는 온누리 교회를 중심으로해서 누란노의 서적 판매 부수가 맹위를 떨치던 1980년 ~ 2000년대까지를 의미하지 않나 싶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아래의 기사는 밴쿠버에 위치한 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이자 창조과학 운동의 중심에 있던 양승훈 교수가 2006년 부터 시작된 창조론 논쟁 이후 창조과학을 떠나게 된 배경과 학술적 논지를 다룬 글이다. 중간에 밑줄치고, 글자 배경색을 칠한 것은 나의 개인적인 강조점이라고 보면 된다. 원문 링크는 하단에 밝혀둔다.


내가 창조과학을 떠난 네 가지 이유

저는 2006년 7월, <창조와 격변>(예영)이라는 책을 출판한 이후 창조론 논쟁 속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자들과의 논쟁보다도 다른 창조론자들과의 논쟁에 휘말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헤프닝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한국인 창조과학자는 제가 제시한 다중격변론을 다른 이단적 주장들과 함께 부수는 만화를 그려 발표하기도 하고, 서울 인근에 있는 어느 교회는 제가 창조과학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집회 강사로 초청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1981년에 시작된 한국에서의 창조과학 운동은 일정 부분 한국교회에 도움을 준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지적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한국 교회에서 성경의 과학적 변증을 주도한 창조과학 운동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교단과 관계없이 한국교회의 근본주의적 분위기는 창조과학의 전성기를 여는 기초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은 급속한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이 시대의 새로운 제사장으로 부상한 과학자들이 무너지고 있는 성직자들의 통합적 권위를 재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창조과학의 2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홍수설과 젊은 지구론은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단 한 차례의 홍수로 인해 지구상의 대부분의 지층과 화석이 형성되었으며, 또한 대부분의 지표면의 모습이 결정되었다는 주장은 과학적 증거들과 일치하지 않는 점이 너무 많습니다. 지구와 우주가 6천년 전에 창조되었다는 주장 역시 틀렸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6천년/대홍수론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틀린 이론을 많은 사람들이 지지할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볼 필요 없이 저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1980년, ‘80 세계복음화 대성회’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던 창조과학 세미나에서 미국 창조과학자들로부터 처음 단일격변설을 소개 받은 이후, 제가 이 이론이 완전히 틀렸음을 확신할 때까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으니까요. 어떻게 과학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그것도 기초과학인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틀린 이론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믿고 있었을까요? 명백한 오류지만 모른 척하고 지내는 것이 틀렸음을 계속 주장함으로서 교회 내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보다 나아서 그랬을까요? 여기에는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전문성 부족

첫째 이유는 창조과학을 전업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창조과학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전문가이지만 창조과학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연구를 하는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더라도 학자적인 치밀함을 가지고 연구하거나 평가하지 못합니다. 기원 논쟁의 대부분의 이슈들이 기초과학 분야에 속한 것들이며,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제대로 연구를 하기 위해 오랜 훈련이 필수적입니다. 꼭 학교에서 해당 분야의 석, 박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혼자서라도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근래 북미주에 있는 두어 분이 인터넷을 통해 저의 글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창조과학 분야에도 전문가들이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전문가라는 분들의 글을 퍼서 올려놨습니다. 하지만 반론을 올렸던 한 분은 경영학을 전공한 분이며, 다른 한 분은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퍼온 글의 저자들도 역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창조과학에 참여하는 분들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창조과학자들 중에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만 그것은 창조과학과 관련된 전문성이 아닙니다. 그러면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전문성이 부족하면 자신이 전문적인 연구를 하지 않음은 물론 학문적이지 않은 문헌을 인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2008년 8월, 저의 제명 문제를 논의하면서 한국창조과학회 이사회가 열렸는데 그 때 회의록과 더불어 우주와 지구가 젊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헌들을 20여개 첨부하여 임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우연히 저도 그 문건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문헌들 중에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글을 쓴 분들 중에 지구나 우주 연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이 한 사람도 없었으며, 그 글들을 모은 분도 서울 인근 어느 대학 웹디자인학과 교수였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주나 지구 연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창조과학자들은 대폭발이론을 그렇게 심하게 비판하지만 대폭발이론, 흔히 표준모델(Standard Model)로 알려져 있는 이 이론을 전공하는 분들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초기 우주론을 전공하는 분들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해당 과학 분야에서 전문성이 없는 분들이 또 다른 비전문가들이 쓴 대중서적들을 근거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논쟁에 참여하니 온갖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2006년 <창조와 격변>에서 제시했던 다중격변론에 대해서도 몇몇 창조과학자들이 비판했지만 아쉽게도 정작 이 이론을 제대로 공부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중격변모델을 비판하면서 대규모 운석이 떨어지면서 남긴 증거들이 화산폭발 때 만들어지는 증거들과 비슷하다는 주장을 하며 운석 충돌 자체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모리스(Henry M. Morris)는 달 표면의 수많은 운석 충돌 자국들을 사탄과의 영적 전쟁의 흔적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생대와 신생대의 경계에 있는 K-T 경계면 멸종도 부정합니다. K-T 경계면이 운석 충돌에 의한 것인지, 화산폭발에 의한 것인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K-T 경계면 멸종이나 수많은 운석이 지구와 충돌한 흔적은 해석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입니다.

비록 제가 제시한 이론이기는 하지만 저 역시 다중격변설이 100%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이론은 적어도 지금까지 동일과정설이나 단일격변설(대홍수설)에 비해서는 맞을 가능성이 높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증주의자들의 표현을 빈다면 다중격변설은 더 나은 이론이 나와서 오류가 입증될 때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잠정적인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1997년, 한국 대학을 사임하고 밴쿠버로 올 때까지만 해도 창조과학 연구에 저의 남은 생애를 걸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창조과학의 2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지구/우주와 대홍수 개념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기보다는 그것들이 맞음을 좀 더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해 다른 문헌들을 조사하면서 동시에 야외 탐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업으로 창조과학을 연구하면서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창조과학 모델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증거가 너무 많고 분명했습니다.

창조과학에서 특히 많은 오해가 난무하는 분야는 창조과학자들 중에서 전공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천문학과 우주론 분야입니다. 창조과학에서는 현대 우주론의 표준모델이라고 하는 대폭발이론이나 별이나 은하의 나이를 전공하고 있는 학자들이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대폭발이론 등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는 초기 우주론 연구는 천문학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려니와 상당한 이론물리학적 배경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면 현재의 이론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저는 대폭발이론을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비판하는 것은 학자적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폭발이론의 연구는 고사하고 이를 제대로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아마추어들이 학문적이지 않은 문헌들을 근거로 대폭발이론을 마치 사탄의 이론인 듯이 매도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한 예로 대폭발이론을 비판하면서 이는 제재소가 폭발해서 저택이 만들어질 가능성, 수 백 만 개의 비행기 부품 더미가 폭발해서 747 점보기가 조립될 가능성 등을 운운하는 사람은 이 이론의 기초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라고 보면 됩니다. 초기 우주론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대폭발이론은 너무 많은 증거들이 축적되어서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폭발이론의 세부적인 분야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대폭발이론보다 천문학 분야의 이론적 증거나 관측상의 증거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음은 분명합니다.

2. 편향된 인용

둘째 이유는 편향된 문헌 인용 때문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나 말을 문맥에 맞지 않게 인용하거나 필요한 문헌만 선별적으로 인용하는 “생략에 의한 속임”(deception by ommission)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데이터들만 선별적으로 인용하고 싶은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화론자들도 그런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많지만 안타깝게도 창조과학자들 중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구나 우주 연대 문제를 다룬 창조과학자들의 문헌에는 의도적으로 데이터를 왜곡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창조과학 운동의 선구자인 모리스(Henry M. Morris)가 윗콤(John C. Whitcomb, Jr.)과 공저한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는 “수 백만 년 전에 사라진 바다”(the sea which vanished so many million years ago)라는 구절을 “여러 해 전에 사라진 바다”(the sea which vanished so many years ago)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방사능 연대측정법은 어떻습니까? 방사능 연대측정은 드물게 틀린 결과가 나오기는 하지만 98% 이상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창조과학 대중강사 중의 한 사람이자 전직 과학교사였던 호빈드(Kent Hovind)는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이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호빈드 자신은 한 번도 방사능 연대를 연구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신, 불신을 막론하고 자신이 한 번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은 분야에서 전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모두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자들에 대한 인격 모독이기 이전에 피조세계의 법칙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아마추어로서 미국 창조과학자들의 문헌만을 접할 때는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은 마귀가 만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위스콘신 대학(University of Wisconsisn-Madison) 과학사학과에서 방사성 연대측정법의 하나인 탄소연대측정의 역사를 석사 논문 주제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도 탄소연대측정이 엉터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논문을 작성하면서 방사성 연대측정 분야의 문헌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제가 그 분야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질학 분야에 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한 차례의 노아의 대홍수만으로 지구의 모든 지층과 화석, 그리고 각종 지형들이 형성되었다는 주장은 매우 단순하고 성경적인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단일격변설이 터무니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오랜 연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최소한의 지질학 상식을 가지고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인근에 나가서 하루만 돌아다니면 충분합니다. 어떤 반대되는 증거가 있더라도 나는 단일격변설만을 믿겠노라고 신앙고백을 한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남겨놓으신 지구 역사에 대한 증거가 너무나 뚜렷합니다. 노아의 홍수는 분명하게 일어났지만 창조과학에서 말하는 노아의 홍수는 아니라는 것이 증거에 충실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의 속도가 변한다는 주장도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과학에서는 백억 광년 이상 떨어진 별빛을 지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젊은 우주의 틀에서 설명하기 위해 과거에는 광속이 무지하게 빨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느려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먼 거리에 있는 퀘이사(quasar) 스펙트럼의 다중선 분석에 기초한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빛의 속도가 늦어지고 있음이 증명되었을까요?

실제로 창조과학에서 인용하고 있는 해당 논문의 저자들은 과거에 빛의 속도가 더 빨랐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우주에서 빛의 속도가 변했다고 해도 그것은 현재 속도의 백만분의 일 정도의 무시할 정도이며, 이 또한 관측오차 이내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는 결과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이 결과는 오히려 젊은 우주론에 심각하게 반대되는 증거인데도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데이터를 잘못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편향된 신학

셋째 이유는 편향된 신학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창조과학이 근본주의 운동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근본주의 신학의 특징은 반지성주의적이며 전투적이라는 점입니다. 창조과학이 그렇게 많은 과학적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성경을 과학적으로 변증하는데 반지성적이라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어떤 창조과학자와 창조연대와 관련하여 장시간 전화로 논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미국창조과학연구소(ICR)의 연구만으로 충분하고 우리는 그 주장을 어떻게 전하는가의 문제만 남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분은 더 이상의 연구는 필요하지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은 제게 더 이상 많은 공부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근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반성의 부재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돌진합니다. 창조론 논의에 있어서 현재의 혼란은 자신의 주장이 신학적으로 어떤 함의가 있는지 충분히 반성하지 않은 채 신학적 기초가 없는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너무 멀리 갔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의 단순함이 문제를 키웠다고나 할까요? 아직까지 그런 정관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기 한국창조과학회 정관에는 정회원이 되려면 이공계 분야에서 적어도 석사학위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창세기를 전공하는 구약학자들은 정회원이 될 수 없었고, 창조과학에 대한 신학적 반성은 애초부터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미국 창조과학회도 비슷합니다.

근본주의 신학이 단순한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손에서 더욱 더 전투적이고 선명성 있게 다듬어진 것이 현재의 창조과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신학적 반성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신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분들이 다룸으로 인해 좌충우돌하는 현재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 창조과학의 문제는 신학이나 과학사, 과학철학자 등 인문학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하지 않고 과학자와 공학자들 중심의 운동이어서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반성의 여지가 없는 자연을 대상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신학자들처럼 생각이 그렇게 깊지 못합니다. 때로는 신앙생활에서 그런 단순 사고가 유익할 때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단순 사고를 가진 분들이 창조/진화와 같이 신앙적, 이념적 함의가 강하게 내재된 분야의 지도자로 참여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신학적 반성 능력, 다시 말해 신학적 소양이 부족한 분들이 강한 신학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논쟁에 뛰어들게 되면 옹기전에 황소가 뛰어든 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것은 어떻게 드러날까요? 신학적 훈련을 받지 못한 분들은 자신의 과학적 주장이 어떤 신학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한 예로 창조과학자들은 성경 문자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자신들은 성경 문자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근본주의적 주장을 하면서도 자신은 근본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사용하면서도 자신은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보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념적 자기 정체성(self-identification)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근본주의자라고 부를 때는 그 사람이 자기 입으로 자신을 근본주의자라고 말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주장과 태도가 근본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과학자들은 아무리 자신을 근본주의자, 혹은 성경 문자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도 신학자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근본주의, 혹은 성경 문자주의로 부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 스스로의 신학적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전문 신학자나 과학철학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것도 훌륭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다른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내는 분들이 창조론 분야에서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큰 고통입니다. 어폐가 많지만 갈릴레오의 심경을 헤아려 보기도 합니다.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 분명한데도 어디에 그런 성경 구절이 있느냐고 갈릴레오를 비판, 정죄했던 당시 로마 대학 교수들과 교황청 이단심문소(The Holy Office) 도미니칸 배심원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당시 천동설주의자들은 성경을 내세워 갈릴레오를 정죄했지만 실제로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근거해서 갈릴레오를 정죄하고 비판했습니다. 오늘날도 창조과학이 천동설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외형적으로는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하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이데올로기나 잘못된 신학에 근거한 것은 아닌지...

흥미로운 것은 지금도 일부 근본주의자들 중에는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도 있고, 천동설을 주장하는 책도 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의 글을 보면 하나 같이 성경 구절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는 사실입니다. 천동설을 주장하는 어떤 근본주의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는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태양이 움직이는 것을 보여준다는 성경 구절이 67개나 제시되어 있습니다!!

4. 소통의 문제

넷째 이유는 소통의 문제 때문입니다. 저는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저와 다를 수 있고 또한 저의 제가 제시한 모델이나 이론의 오류를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나서 겸손하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누구라도 완전히 주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지만 그래도 편견과 아집, 독선과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진지하게 하나님 말씀과 그 분이 만드신 피조세계의 증거들을 함께 연구한다면 진리의 성령께서 바르게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기쁘게 대화할 수 있으며, 서로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창조론 오픈 포럼”은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오픈 포럼이기 때문에 당연히 창조과학자들에게도 오픈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초기 단계라 모든 사람들에게 오픈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복음주의적 신앙을 견지하고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초청합니다. 그래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서로의 의견을 겸손하게 개진하고, 논의함으로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대한 선한 청지기로 구비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위 기사를 링크를 밝혀둔다.

내가 창조과학을 떠난 네 가지 이유 - NEWS M

본지는 밴쿠버에 위치한 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이자 창조과학 운동의 중심에 있던 양승훈 교수가 2006년 부터 시작된 창조론 논쟁 이후 창조과학을 떠나게 된 배경과 학술적 논지를 연재 합니

www.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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