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걸까?
저자 이스터브룩은 그 이유를 만족과 감사 보다 불평과 불만이 팽배한 현대인의 심리적 요인에서 찾는다. 그리고 해결방안으로 긍정의 심리학을 주장한다. 만약 이 책이 심리학 도서의 범주에 들어갈 책이었다면, 나는 이 책을 그런대로 교훈적인 책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풍요로운 소수의 정치적인 견해를 담고 있으면서, 약자인 다수의 저항을 사회에 대한 불평, 불만으로 폄하하고, 그것이 진화심리학적 측면에서도 정당한 듯이 말하는 것에 있어서는 쉽게 수긍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이 책은 다음 네 가지 면에서 적잖이 헷갈리게 한다.
첫째는 서구의 경제적 풍요를 온갖 수치와 지표로 나열하고 이해시키려 했던 시도들인데, 『미국인의 발견』(살림지식총서081)이라는 책에서 보여지는 이야기와는 확연히 대조적이었다. 가령 『진보의 역설』은 미국이 범죄율이 낮아지고 있다거나 교육 수준이 세계적으로 높다고 말하는데, 『미국인의 발견』은 범죄율이 세계 최대라거나 심지어는 공부하다 총맞아 죽을 확률이 한국의 16배라거나, 학력평가 수준이 세계적으로 하위라고 진술한다. 심지어는 공립학교의 취약한 재정구조도 말하고 있다. 환경적으도 누구나 알듯이 미국은 자국의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교토의정서에 동의하지 않는 ‘자국이기주의’를 보인 국가이고, 무기실험을 통해 어떤 생물도 살아남지 못할 죽음의 땅을 소유할 정도로 환경의식이 약한 국가라고 설명한 데 반해, 『진보의 역설』은 미국이 꾸준히 환경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의심스러운 증거들을 나열하고 있다. 의료부분, 군사부분 어느 것 하나 일치하는 것 없는 대조적인 두 책을 보며, 나는 『진보의 역설』은 ‘풍요로운’ 집단의 서술을 옮겨 담았고, 『미국인의 발견』은 '안 풍요로운' 집단의 시각을 서술하고 있다고 보았다. 결국은 '풍요로운' 집단이 '안 풍요로운'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행복해하지 못하는가 하고 질문하는 게, 이 책의 화두였다. 그러고 보면 질문이란 것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질문 자체가 정당한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사회에 만연한 심리적 불만과 불평이 행복한 삶을 가로막는 주 요인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스터브룩은 또한 인간이 진화 심리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부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도록 진화"(144)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학문적 당위성까지 들고나올 셈인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사실상 사회·경제적인 복지향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잔 말없이 순응하고 따라오라는, 그리고 '바보처럼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다 보면 너희들도 우리처럼 된다'는 식의 신(新) 아메리칸 드림을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경제적 요인을 교묘히 사회심리적 요인으로 둔갑시켜 '안 풍요로운' 사람에게는 반성을 강요하고, '풍요로운' 사람에게는 현 체제의 정당성과 지지를 보내는 메시지인 것이다.
나를 더욱 헷갈리게 했던 세 번째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저자가 직접 말했다는 것이다. ① 미국이 갖고 있는 건강보험 문제, ② 일부의 계층이 너무 많은 부를 소유한 문제, ③ 상류층의 탐욕이 그것이다. 처음부터 이러한 문제가 '안 풍요로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이었다고 말했으면 좋았겠지 싶으면서도 순간 다른 의혹이 찾아왔다. 미국이 당면한 사회적 문제가 이것뿐이던가? 군산복합체, 범산복합체, 변호사들의 비윤리적 행각, 총기소지관련 문제, 가족과 생이별을 만드는 예비군 제도의 허점 등등 굵직한 문제들의 수만 헤아려도 수십 가지가 넘을 것 같은데, 왜 겨우 이 세 가지만 논하는가! 혹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을 만큼 명백한 미국의 문제점이자 세계가 비웃는 의제로서 이 세 가지를 숨김없이 내어놓고, 마치 미국의 문제는 그 이상 더 없는 듯한 포장을 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미국의 문제점을 성급히 마무리 짓는 저자의 진술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미국의 구조적 문제 극복 방안에 대한 해결책은 이 책의 과제가 아니었던 듯 싶다.
네 번째는 미국인의 소비문화를 지적하고 그것을 긍정의 심리학으로 풀어가는 결말이다. 어느 정도 정치적 발언을 했는가 싶더니, 이제는 미국인의 소비심리에 들어있는 허영이 모든 불평의 원인이듯이 논리를 전개한다. 그리고 심리적 공허와 자존감의 결여가 지나친 소비의 근원이라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만이 그들의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기재라고 역설한다. 사실 이 결말은 앞에서부터 흘러 온 모든 것에 대한 결말이었다.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어도, 긍정의 심리학을 놓지마라고 주장한다. 구조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풍요로와 10분벌이 노동력만으로도 맛있는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정크푸드로.
저자 그레그 이스터브룩은 <뉴스위크> 객원 편집인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한 가지 비슷한 인상을 받았던 인물이 생각난다. 바로『넥서스와 올리브 나무』, 『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이다. 그는 <뉴욕타임스> 기자답게 시장논리와 세계화의 필요성을 교묘히 전달하는 신자유주의의 나팔수를 자처했던 인물이다. 그러고 보니, 이스터브룩도 저널리스트라는 면에서 프리드먼과 닮았고, 저서 활동을 통해 활발히 지배계급을 옹호하는 면에서는 닮은 꼴이다. "사실 북미자유무역협정은 미국인부터 멕시코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선물 의미한다. … 왜 세계화 논쟁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이러한 방식으로(부정적으로) 판단하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84)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조·중·동과 맥을 같이 하는데, 1) 풍요로운 집단의 시각만을 충분히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2) 잘못된 지표라도 자신에 유리하면 교묘히 편집하여 설득력 있게 논리를 이끌어 간다. 3) '안 풍요로운' 집단을 '불평·불만' 집단으로 비꼬아 본다. 반체제 집단으로 묘사하는 것 같다. 4) '안 풍요로운' 집단을 체제 내 순응적인 인간으로 쇠뇌·강요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간단한 해독작용제로 『미국인의 발견』(살림지식총서081)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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