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좌파와 우파의 갈등을 이해하는 것은 미국인의 정치와 종교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좌파의 태동 배경과 신좌파에 대한 대항으로 생겨난 신우파, 극우파에 대한 사상과 운동들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대한 큰 소득으로는 미국 극우파에서 일어난 ‘음모이론’에 대해 전체적 맥락을 확실히 짚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진보-좌파의 권력층 형성
미국은 개인방임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을 근간으로 설립된 국가였다. 유럽처럼 봉건주의가 없었고, 귀족 작위 부여에 대한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평등한 중산층의 국가였다. 하지만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은 많은 피해 서민들에게 국가의 지원, 간섭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고, 민주당 루즈벨트의 4선 당선을 이끌어 내었다. 뉴딜정책은 서민들에게 일자리를 나누어 주었고, 뉴딜 진보주의자들은 사회 안전망에 대한 정비를 시작하였으며, 인권신장을 위한 정부 개선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매카시를 위시한 공화당 의원들은 이들 뉴딜 진보주의자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였고, 공산주의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은 비미국적인 것이라 하였다. 이에 뉴딜 진보주의자들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찬성하면서, 애써 자신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한편 2차대전 전후 세대인 베이비 붐 세대가 풍요로움 속에서 20대를 맞이할 즈음, 늘어난 인구와 구직난으로 사회는 불만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이들은 참여민주주의를 정부에 요구했고, 이들의 대항운동은 신마르크스주의, 공동체주의, 무정부주의, 트로츠키주의, 흑인민주주의, ‘히피’사상, 여성해방, 동성애 등으로 확산되어 일어났다. 이러한 ‘대항문화’는 공동체 사회를 추구했고, 참다운 개인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마약의 사용과 공동체의 친밀감을 위해 성 해방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 ‘문화혁명’은 성공을 거두었고 이들은 대학교수, 언론인, 문인, 예술가, 영화인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탈근대주의’나 ‘다문화주의’로 포장되기도 하였다. 70년대에 들어 이들은 ‘진보-좌파’인 신좌파(the new left)로 불리게 되는데, 정계에 진출하여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의 개헌이나 인권신장에 기여하였다.
신우파의 사상과 행동
계속되는 진보주의자들의 정권 장악을 목격한 보수주의 중상류층들은 70년대부터 신우파(the new right)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본래 공화당 닉슨 대통령이 정권에서 물러나고 부통령으로 진보주의자 넬슨 록펠러가 선임되면서 공화당의 정책이 민주당화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에서 생겨난 ‘보수-우파’의 결집에 따른 것이었다. 헤리티지 재단의 활동과 대기업과 연계된 대선이나 1975년에 보인 낙선운동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운동은 진보 좌파적 엘리트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던 중하층으로 번져갔다. 우파 민중주의의가 시작된 것이다. 제3세계의 민중주의가 재벌, 금융가에 대한 대항이었다면, 당시 미국의 민중주의는 ‘진보-좌파’ 엘리트 정부에 대한 대항이었다. 이들은 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상층부도 아니었고, 복지혜택을 누리며 사는 게으른 하류층도 아니면서 각종 세금 납부에 시달리며 희생당해야 하는 민중이었다.
신우파 대중은 경제적·정치적 문제보다 사회적·문화적 문제를 중요시 여겨 ‘사회적 보수주의 운동’과 ‘문화적 보수주의’ 운동을 하였고, 근본주의 기독교 백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학교버스통합 폐지 운동을 했는데, 곧 인종차별폐지에 대한 반대 운동이었다. 특권 좌파 엘리트들은 흑인 없는 버스로 애들을 학교에 보내지만, 중하위 백인들은 흑인들과 함께 지낼 것을 강요받아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우파 대중들은 중산계급과 청교도의 나라가 빈민과 범죄의 소굴로 세속화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각종 복지정책은 게으르고 부도덕한 정책이라고 비난했고, 정부의 보조를 받는 전위예술가들은 기독교를 모욕한다고 하였다. 심지어 이들은 미국의 조속한 멸망을 예고하였다.
이들은 <기독교인의 목소리>라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투표활동을 안내하거나,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고, 심지어 1992년에 창설된 기독교연합은 세속주의자, 진보주의자, 사회주의자, 유대인이 주도한 새로운 세계질서(new world order)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조직되었다. 가정수호 연합회라는 단체는 여성 해방운동가들의 조직을 공격하고 남녀평등헌법수정 조항(ERA)의 비준을 막고자 설립되었다. 기독교 단체들은 진화론에 오염된 교과서를 버리고 창조론에 입각한 교육을 실시하고자 사립학교법 개정과 연방정부가 각 사립학교의 운영에 일체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제정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은 모두 제리 폴웰 목사의 충고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1982년 이 법안은 좌절되었다. 신우파는 노동조합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거대노조’는 ‘거대정부’와 마찬가지로 막강한 조직의 힘으로 선량한 시민과 기업의 자유를 제약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권법을 주 단위로 제정되도록 약화시키고, 노조에의 의무가입 규정을 폐지하려 하였다.
극우파의 사상과 행동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우파는 극우파로 바뀌게 된다. 이들의 보수성은 더욱 급진적인 성격을 띄게 되는데, 기독교애국방위연맹(CPDL)이라는 준군사조직의 민병대 출현이 그것이다. 이들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이며, 대개 이들의 자유라 함은 인종을 차별 할 자유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은 또한 헌법근본주의자들인데, 그동안 개정된 인권 관련 조항을 건국당시의 10조까지로 축소하여 문자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수정헌법 16조의 폐지 운동도 하였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소득세 납부를 정한 법이었다. 총기규제에 대한 반대에 있어서도 이들은 시민계급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총기 로비단체와 긴밀히 연결되어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이들은 지방급진주의자들이기도 한데, 연방정부의 환경규제에 반발하고 있다. 배심원 지상주의란 말도 있는데, 진보적 판사들이 관대한 판결이 나렸을 때, 극우파들이 분개하여 반대 전원일치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사상의 근저에는 ‘기독교 정체’신학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지금의 미국인들이 고대 이스라엘의 순수 혈통이라고 믿는 태도이다. 이들은 반유대적인데, 자신들을 ‘신의 선민’으로 여기고 미국을 약속의 땅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유대인을 미국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부의 백인 농부들은 빚에 대한 저당 차압으로 유대 금융가, 법률가들이 몰수 해 가는 행위를 보고 분노하여, 이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악으로까지 생각한다고 한다.
극우주의 사상에서 빚어진 음모론은 팻 로벗슨 목사와 제리 폴웰 목사가 퍼트렸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원문은 아래에서 감상해 보자.(p.67-69)
팻 로벗슨(Pat Robertson) 목사는 1991년 베스트셀러인 『새로운 세계 질서 The New World Order』에서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경기와 군사적 충돌의 원인이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사악한 금융가들의 조작 행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음모를 꾸미는 이들 금융가 집단은 18세기에 독일 바바리아의 ‘일루미나티’ 조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유럽과 미국 두 지역에서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그 세가 커졌다는 것이었다.
이들 유대인 음모 세력은 국내적으로는 선량한 민중을 수탈하기 위해 연방지불준비제도(FRB)와 같은 정부 통제 기구들을 만들었으며, 국제적으로 미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하여 국제연합(UN)을 만들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이 국제연합을 통해 미국을 흡수하고 있고, 그것을 토대로 결국 하나의 세계 정부, 하나의 세계 경제, 하나의 세계 독재체제를 만들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음모세력인 이들 유대인 금융가는 냉전 기간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긴 사악한 사람들이란 것이었다. 그들은 연방 정부의 정책 엘리트와 결탁했으며 그 과정에서 미국의 국가 이익에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던 것도 결국은 이들의 방해 때문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그들이 나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계획은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 정부 속에서 궁극적으로 미국을 소련과 결합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팻 로벗슨 목사는 1991년의 걸프 전쟁도 유대인 금융가들의 농간으로 미국 정부가 이라크의 후세인에게 신호를 잘못 보냄으로써 일어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극우파가 신우파와는 다르게 이스라엘 국가에 대해 적대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신우파는 이스라엘 국가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극우파의 반유대주의(anti-Samitism)와 반공주의(anti-Communism)는 ‘아마겟돈’ 전쟁론과 천년왕국설(millennialism)로 연결되었다. 그것은 미국을 무너뜨리려는 국제적 음모 세력 때문에 미국이 언젠가는 그들과 최후의 대결을 벌여야 될 제3차세계대전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평화와 정의로 1천년을 통치할 날이 오기 전에 미국인들이 ‘그리스도의 적들’과 벌이는 무서운 제3차세계대전이었다. 그것은 극우파가 출현하기 오래전인 1970년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핼 린지(Hal Lindsey)의 『지구 마지막 날』에서 묘사된 내용인데, 뒤늦게 극우파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최후의 결전은 미국과 유럽연합을 한 편으로 하고 소련과 중국의 공산군 및 아랍의 이슬람군을 다른 편으로 하는 두 세력 사이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일부의 기독교인을 구출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천년왕국설에 대한 믿음은 미국의 우파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퍼졌다. 그 때문에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도 1984년의 선거전에서 제임스 베이커와 함께 PTK 텔레비전에 나가 “우리는 아마겟돈 전쟁을 보게 될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마겟돈 전쟁론은 1970년대 이후에 널리 퍼진 미국 사회의 비관주의적인 분위기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 시기는 바로 로마 클럽이 ‘성장의 한계’라는 개념을 가지고 세계 경제의 파국을 우울하게 제시하던 때였다.
그러므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마의 제국’으로 부른 것도 결국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대혼란을 일으키게 될 사탄의 도구와 소련을 같은 것으로 보는 우파 기독교인, 즉 근본주의자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음모이론은 베트남 참전 용사들이 지지를 보냈고, 많은 젊은이들에게 람보와 같이 총을 들게 만들었으며, 사설 용병 훈련에 참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가올 아마겟돈 전쟁을 위한 구실로 민병대 출현이 집단들 사이에서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들 ‘기독교 정체’ 운동은 연방정부와의 잦은 충돌 끝에 포시코미타투스 지도자들의 감옥행과 위스콘신의 타이커톤델스가 폐허가 되면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흩어진 이러한 생존주의자들은 그날이 올 때, 백인 기독교인들은 유대인, 흑인, 동성애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여전히 유대 정치인과 연방정부, 특히 민주당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미국 백인들의 비이성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인종차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추악한 기독교 ‘근본주의’와 ‘기독교 정체’신학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인들이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실어다 나르는 세계정복 음모론의 실질적 배경이자 실체인 것이다. 세간에 읽혀지는 여러 음모 서적들도 사실은 매우 비슷한 내용의 재생산 및 각색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300인 위원회』, 『그림자 정부』그리고 최근엔 『화폐전쟁』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미국인을 저 같은 극우주의적 성격으로 매도하며 보는 시선은 우리 스스로를 인종주의자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민주당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당선 시키며, 국민의료보험의 부활 등과 같은 국가의 책임있는 간섭을 필요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대중들 중에서도 서서히 극우적 행동에 대한 반성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은 것이다. 오바마가 하루빨리 부시 부자의 설거지를 끝내고 본 궤도에서 우파의 치우침을 교정하는 날이 오길 기도한다.
'READING > 정치·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리뷰] 마이너리티 역사 혹은 자유의 여신상(살림지식총서003) (0) | 2009.08.11 |
---|---|
[북리뷰] 미국의 정체성 (살림지식총서002) (0) | 2009.08.11 |
[북리뷰] 음모의 지배계급 300인 위원회 (0) | 2009.08.09 |
[북리뷰] 진보의 역설 (0) | 2009.08.04 |
[북리뷰] 미디어 대충돌 (0) | 2009.08.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