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세계의 단일 정부를 추구하는 음모 세력인 300인 위원회에 대한 고발 서적이다. 읽는이 개인의 해석과 분석이 많이 요구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여왕을 중심으로 한 이 300인 위원회의 세력은 그 동안 세계의 굵직한 전쟁을 의도적으로 주도해 왔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전범 세력들이 아닌가? 영국이 중국에 아편전쟁을 일으키면서 마약을 팔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에도 제3세계를 이용한 마약의 생산과 유통을 주관하고 있고, 이로 인해 거둬들인 거대한 자금을 이용해 IMF와 세계은행을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300인 위원회는 세계의 흐름을 주도해 나갈 정책을 입안하는 싱크탱크를 갖추고 있으며, 300인 위원회의 실행력에 뒷받침해 줄 수많은 전위조직과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마약 및 퇴폐문화를 통해 미국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으며, 단일 된 세상을 위해 금융을 지배하고, 기독교를 해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300인 위원회에 대한 이야기는 기독교신자들의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에서 재생산되어 널리 퍼져있다. 그들이 기독교의 해체와 위기를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사실상 글쓴이 존 콜먼 박사가 우리나라의 지만원, 조갑제류의 작가라고 생각할 것 같으면, 기독교인의 걱정도 지나친 극성스러움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복음주의' 신앙을 전해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성경문자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사실상 '근본주의' 신앙에 가깝다. '근본주의' 신앙 중에서도 60, 70년대 미국에 만연했던 전쟁과 핵 확산으로 인해 세계 멸망에 대한 종말 신앙인 '세대주의'는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300인 위원회를 계시록에 기록된 '적그리스도'와 동일시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왜 저자는 이와 같은 음모론을 저술한 것일까? 중반쯤 읽으면서 그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음모론을 저술한 또 다른 음모가 배후에 깔려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만원, 조갑제류의 글쓰기 의도는 우리가 아는 바 대로 수구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반공주의적이고, 대남공작적인 음모들을 퍼뜨리고 돈을 버는 것이다. 바로 ‘공안상품’인 셈이다. 그럼 존 콜먼의 글쓰기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같은 선상에 놓고 보아서 인지, 읽으면 읽을 수록 그의 반공주의, 극우주의, 기독교 근본주의가 눈에 밟혔다. 결국 그가 고발하는 300인 위원회는 오늘날 미국의 현실에 위협이 되는 가상의 적임과 동시에 세계(?) 기독교인들의 적인 것이다. 이러한 느낌을 받은 정황적 증거를 네 가지로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페이비언주의자들이 정계의 요직에 들어서는 것을 언급한다(p.56). 페이비언주의자는 사회주의자들을 일컫는데, 이들의 요직 점거는 300인위원회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300인 위원회의 전위조직 리스트를 보면 각종 시민, 사회운동 단체들이 지목되고 있다. 산업민주연맹, 미국사회민주당, 사회문제연구소, 시민연맹, 민주사회주의협회, 의류 노동자 조합 등등. 어쩌다가 이 단체들이 존 콜먼 박사의 눈에 낚여 이렇게 올랐나 싶게 하나같이 좌파스럽다. 여기서 눈에 띄는 단체로 전쟁 저항자 연맹이라는 단체가 들어왔는데, 노엄 촘스키가 그 임원으로 등제 되어있다(p.88). 순간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세계의 양심' 촘스키 교수가 300인 위원회의 하수인이었다니?! 그의 고견에 귀를 기울이던 많은 미국인들을 그로부터 등 돌리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본래 임무를 다한 것이 아닐까 싶게, 이 책은 매카시즘적이었다. 심지어 매카시즘의 장본인인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국무부와 CIA에 대한 사회주의자 색출작업을 시도하였을 때, 이 300인 위원회에 의해 조사가 중단(p.243)되었다는 대목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자는 매카시가 음모의 뿌리를 뽑을 뻔했는데 못했다며 개탄해 한다.
둘째, 저자는 미국의 도덕적 타락의 배후에 300인 위원회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예로 든 것이 비틀즈와 마약이다. 비틀즈의 미국 흥행은 300인 위원회가 주도한 문화정책이었고, 이들의 노래가사가 마약의 유통을 도왔다고 평가한다. 또한 미국 내 갱단들의 난립과 이권싸움도 300인 위원회가 주도한 것이고, 성적 타락과 범죄율 상승도 모두 같은 배후를 지목하고 있다. 특히나 반기독교적인 제의인 악마숭배는 마약류를 취하면서 얻게 되는 몽롱한 정신상태를 일종의 신인 합일로 보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300인 위원회가 마약 유포를 통해 악마 종교를 퍼트릴 계획이라고 주장한다. 마약·범죄·성과 같은 사회 문제를 외부적 요인으로 결부시켜, 미국의 순수성이 마치 음모세력에 의해 계획적으로 타격 받은 듯한 발언은 도리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단결시키고, 이 음모론에 경도된 사람들의 애국주의적 단합을 도모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늘 민족적 단결이 2% 부족한 나라이니만큼.
셋째, 근본주의 기독교만을 유일한 신앙으로 인정한다. 이 책에서는 여러 부분의 성경 인용을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기독교를 정치적으로 의식하고 있다. 문제는 기독교의 믿음에도 해석적 차이에 따라 근본주의 신학, 복음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해방주의 신학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중에 해방신학을 노골적으로 경계한다. 제 3세계 신학에 속하는 해방신학은 인간이 인간에게 종속되는 것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예수의 정신에 따라 남미 문화권에서 발원한 신학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도 300인 위원회가 퍼뜨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주교 로메로의 죽음을 매도하고, 수많은 남미 민중의 신앙을 헛되게 만드는 발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이렇게 하여 저자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기독교의 다양한 믿음의 형태를 일원화 시키고, 되도록이면 근본주의적으로 몰아 단결시키려는 것이다.
넷째, 유럽의 음모 세력이 미국을 좌지우지 한다고 주장한다. 언론, 기업, 은행, 보험회사들이 300인 위원회의 통일된 지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저자가 상세하게 나열한 그 은행의 목록은 잉글랜드 은행, 미 연방준비은행, 국제결제은행, 세계은행 외에 나라마다 대표하는 24개가 더 있다. 또한 기업들로는 IBM, CBS, NBC, BBC, 리먼브라더스 등이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크고 작은 기업들의 목록이 있는데, 이러한 다국적 기업에 대한 나열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도가 궁금해졌다. 반유럽 정서를 자극하여 미국의 자국 보호에 대한 단결을 불러일으키고, 호명된 회사들에 대한 이익에 참여하지 말 것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에 대한 국민적 증오를 불러 일으켜 미국만의 경쟁력 있는 금융 회사에 밀어주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저자는 WASP이거나 WASP 내에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 처럼 보인다. 내용 중 "동부에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하며 그들을 비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미국 서민의 불만어린 시선은 바로 이 지배계급 WASP에 가 닿은 것이다. 이들을 마치 유럽 음모 세력과 별개의 것으로 설정하고, 미국 내의 분노의 시선을 유럽인 외적 분노로 슬쩍 바꾸고자하는 속셈은 아닌지, 그가 WASP라는 표현대신 "동부에 사는 사람"으로 표현한 부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참고로 저 유명한 WASP 표현이 일절 언급되지 않으니 말이다.
이제 저자인 존 콜먼 박사를 규정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우선 매카시스트다. 적색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또한 국수주의자이며 민족주의자다. 그리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며 보수주의자다. 이런 모든 성분을 복합해서 극우적 색체를 발하는 글쓰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서술한 여러 역사적 정황들은 개연성만 있고 결과론적으론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적으로 300인 위원회의 음모에 모두 짜집기 식으로 넣은 느낌을 준다. 케네디의 암살, 이탈리아 수상 알도 모로의 살해,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등등의 배후, 심지어는 굵직한 세계 대전의 배후까지 이 300인 위원회를 거론했다. 사실 케네디의 암살은 이런 음모론의 주 단골 메뉴여서 식상하기까지 하다.
300인 위원회의 허구성에 대해 반박할 근거는 사실상 내게 없다. 하지만, 저자의 말 대로 300인 위원회가 실제 존재한다면, 저자는 반드시 다음의 불일치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다.
첫째, 사회주의자들이 정계 요직에 득세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사회복지 시스템이 낙후되었고,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으며, 대다수의 국민은 불행해 한다. 정말 300인 위원회가 심어놓은 사회주의자들 맞나?
둘째, 각종 시민단체가 300인 위원회의 전위조직들이라고 언급한 부분이다. 막강한 사회조직들은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환경을 생각하고, 인권을 중시하고, 전쟁에 반대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조직들의 목소리는 너무 작게 들리고, 여전히 힘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음모적인 단체라고 볼 수 없는데, 어떤 면에서 300인 위원회의 전위조직이라는 건가? 미국 자국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셋째, 300인 위원회에 의해 언론이 장악 당했는데, 어째서 촘스키 교수와 같은 전위조직 임원들의 목소리가 주류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는가? 촘스키 교수는 주류 미디어를 타지 않고 끊임없이 1인미디어로서 출판 활동을 하고 있다. 왜 같은 편인 300인 위원회 소속 미디어들이 그의 목소리를 매체에 실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결국, 저자는 반세기를 이끌어온 반공주의에 따라 미국의 기존 모든 사회변혁, 복지향상 시도를 좌절시킴으로써 보험, 은행, 기업에 유리하도록 정책을 펼치도록 하는 숨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 또한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를 자극함으로써 다양성과 이견을 불식시키고, 반 유럽정서를 키우게 한다. 미국의 문화·범죄·성적 온갖 타락을 외부로 돌리면서도 실제로는 미국의 문화가 더 해롭다는 것은 감춘다. 철저히 미국인만을 위한 책이다. 왜 이런 책이 번역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존 콜먼의 이 메시지를 더 이상은 실어다 나르는 기독교인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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