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교수를 아세요?” 가끔 누군가에게 뜬금없이 물어본다. 물론 거의 모른다고 대답한다. 아마도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이 분을 알고 그 글에 동감했다면, 우리 나라는 틀림없이 좀더 좋은 나라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1996년 즈음 채플시간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었었다. 부패한 왕권과 조작된 저울추가 만연하던 BC. 600년경, 타락한 제사장들은 여전히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외쳐 백성의 눈과 귀를 가리었다. 오직 선지자 예레미야만이 그 거짓 제사장들을 향해 비판의 소리를 높였었다. 독제의 권력이 서슬퍼렇게 국민을 압제하던 유신시절, 국가 권력에 맞서 필력으로 대항했던 인물 리영희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통해 많은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에게 인권유린과 반민주의 폐해를 일깨워 주었다. 민주화의 스승이자, 진정성을 갖춘 저널리스트, 그리고 사회과학자의 면모까지, 나는 이 책을 통해 리영희 교수의 사상적 외길을 엿볼 수 있었다. 리영희는 이 시대의 사상적 큰 어른이었다.
강준만 교수는 리영희의 주요 저서, 사설, 논평, 인터뷰 기사 그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평론을 선별하여 6.25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0년씩 구분하여 리영희가 바라본 현대사를 보여주고 있다. 읽는 내내 마음 언저리에 묻어난 그의 성토하는 구절들과 나의 감동을 기록하고 싶었다. 원 출처는 강준만 교수의 본 저서에 표기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이 책 『리영희』의 페이지만 기록하도록 한다.
1) 6.25 목격
“학교 깨나 다닌 젊은이들은 다 어디 가고, 이 틀림없는 죽음의 계곡에는 못 배우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 나라의 불쌍한 자식들만이 보내지는가? 나라사랑은 힘없는 자들만이 하는 것인가? 전쟁과 군대를 알게 될수록 나는 점점 더 사색적으로 되어갔다. 그럴수록 이 나라의 기본부터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3)
6.25 발발 후 리영희가 목격한 부패상이다. 배운 집 자식이 후방으로 빠지고 목숨 걸고 싸우러 가는 군인들은 죄다 가난하고 못 배운 집 자식들이었다. 전쟁 중에서도 후방에서는 저녁마다 지배집단의 춤 파티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간부들의 군수품 횡령으로 전국에서 군인으로 차출되어 모여든 9만여 아버지, 형, 동생이 동사나 아사로 죽어야 했다. 이제 교육받고 금의환향한 저 배운 집 자슥들은 주요 관직을 차고 앉아 다시 세상을 호령하고 있다. 이 수구들의 죄악상을 어찌 하여야 할인가!
2) 박정희 정권
“무민혹세의 시대가 온 것이다. 온 세상에 논리는 간데없고, 도덕은 얼굴을 돌렸으며, 정의는 오로지 '힘의 정의'가 난무했다. 이에 대항해야 할 언론은 권력에 강간을 당했다. 신문과 방송, 출판과 표현의 자유는 목을 졸렸다. 단말마의 신음소리가 사회에 기득 찼다. 이른바 '언론인'들이라는 많은 직업인들이 그 직업적 자리를 이용해서 권력의 시녀가 되어 알몸으로 아양을 떨고 있었다. 화간이라 하기에조차 너무도 구역질 나는 타락이었다" (115)
1974년 유신정권 출범으로 언론은 정부와 유착 형태로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대학교는 군사훈련소로 변하였다. 어용교수만이 지식인으로서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다. 조선일보는 일본으로부터 받은 차관을 들여 호텔을 지었다. 지금도 기생관광을 공공연히 저지르는 조선일보의 부수입처 이기도 하다. 이때에 그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많은 지식인과 대학생들이 그의 책을 교과서로 삼아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국가보안법으로 붙잡힌 리영희는 감옥에서 박정희의 죽음을 맞이한다. 실없이 웃었다고 한다.
3) 신군부 정권
“어찌됐건 학원 지율화 조치는 우선 당장 학원에 상주하던 경찰 병력이 철수하는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100명 가까운 해직교수와 1,300여 명의 시국 관련 제적생을 복직, 복학시켜줌으로써 적지 않은 사림들을 햇갈리게 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이제 공부나 열심히 하자’며 돌아 선 학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51)
강준만 교수는 신군부의 가장 큰 범죄행위로 지역 분열주의 공작을 펼친 점을 든다. 그리고 당시는 광주가 아니었더라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었지만, 신군부은 경제력이 약하고 좌절에 익숙한 광주를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었다고 한다. 5.18 이후 이를 감추고자 하는 언론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대학가에는 진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학원 자율화 조치에 의한 햇갈림도 잠시였다. 결국 87년 6.10항쟁으로 국민은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내게 된다.
4) 문민정부 그후
“통일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나는 사회민주주의 체제로의 수렴을 생각합니다. 북한사회주의의 인간을 위주로 하는 장점과 남한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위주로 하는 장점을 수렴하는 것이지요. 난 어느 쪽의 흡수통일도 바라지 않아요.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국내외의 지혜를 모아야 하고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되고 나면 국제적으로 중립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중립이라는 것 자체가 수렴적 형태입니다- 남이 절반 변하고 북이 절반 변하게 되면 남북 민족 내부의 합의가 상당히 이루어질 수 있고 주변국이 거부할 이유도 없어질 거라고 봅니다.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습니다. 지정학적으로도 동북아 4강의 교차점에 서울에 있으니 이주 적합합니다" (268)
그의 통일관은 어느 한쪽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었다. 공평하게 장점을 수렴하여 통일을 한 후, 중립국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람직하게 보았다. 하지만, 초기 그가 따르던 김영삼 정부는 남한의 우월함만을 강조할 뿐이었고, 결국 그는 돌아선다. 1996년 은퇴와 함께 절필을 선언하지만, 노 선생의 펜은 아직 꺽이지 않았다. 2002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함성과 “대한민국”을 외치는 모습을 보며 민족주의를 우려했었고, 2004년에는 이라크 파병 반대에 참여해 10억 아랍인을 우리 민족의 적으로 돌리는 행위라고 강력하게 항의하기까지 하였다.
5) 기독교에 대하여
"광적인 냉전, 반공, 군부독재가 이 나라를 암흑 속에 몰아넣고 있던 지난 30여 년 동안 그 신문기사에 나온 교회들의 성직자들이나 그 교회들에서 기도 드리는 선남선녀들이 군부독재에 반대한다는 말을 나는 과문한 탓인지 들어본 일이 없다. 민주주의와 인간권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싸우는 개인들과 세력에 대해서 매도하는 소리는 그들의 입과 교회의 선전물에서 듣고 본 일이 있지만, 공감하거나 동정하는 말은 틀어본 기억이 없다. 세계에서 기독교가 가장 위세를 떨치는 나라 대한민국의 꼴이 왜 이럴까? 1994년 4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사회에서 전세계를 향한 뉴스는 한국종교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반대로 철저한 타락과 추악함이다. 권력과 돈에 눈이 먼 종교가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구제할 수 있을까?" (207)
그는 자칭 인명재천교와 세옹지마교를 믿는다고 너스레를 놓는다. 하지만 위의 글에는 확실히 뼈가 있다. 이 땅의 기독교를 믿는 한 사람으로써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앞장서서 기독교를 어느 누구에게 해명할 엄두도 안 난다.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6) 수구 언론에 대하여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정치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이런 상황에서 으레 등장하는 것이 수구세력의 유일한 처방인 '적색공포증' 선동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붉게만 보이는 공포증이다.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이라는 출판물을 그 '적색공포증' 선동의 대변지로 삼은 이 비정상과 반논리의 폭력은 금년 초부터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지식인들을 하나씩 골라서 조준경에 맞추어 시살 해 왔다" (215)
이제 조·중·동의 반민족적, 수구 보수적 언론 행각은 많은 국민들의 의식 속에 녹아 들어있다. 하지만, 많은 지식인들과 대학교수들이 저 매체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지배집단의 입맛에 맞는 글들을 끊임없이 배설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다음에 나오는 그의 인터뷰 기사는 여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미국이 한국에 들어온 반세기 동안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게 된 영원한 미국숭배시장과 미국에 대한 철저한 열풍의식, 이런 것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추악했던 긴 세월의 독재정권하에서 물질적 혜택만 있으면 정신적 인격적 인간적인 것 보다 더 귀중한 가치를 도외시하는 세력들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수구 반공주의 극우 반평화통일적인 전쟁애호적 냉전 사고와 성향의 집단과 개인들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한국의 무조건적 복종의 대가로 미국이 경제적 보복을 한국에 하지 않거나 약간의 물질적 혜택을 약속하면 무조건 현실감각 있는 외교, 만족스런 외교’ 라고 박수 갈채를 보내는 것입니다. 두 입장 모두 문제는 자기 자신들이 발 딛고 사는 대한민국 이라는 국가가 미국에 대해서 부끄러운 머슴 수준이라는 냉철한 인식이 없다는데 있어요” (287)
냉철한 자기 인식은 그가 보여준 모든 글에서 독자에게 촉구하는 실천 항목인 것 같다. 이것은 의식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미국을 동경하는 검은 머리 미국인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된다. 매체 속에 감춰진 권력의 속성과 지배집단의 의도를 공론화하는 작업에 참여하는 시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제 리영희 교수의 책은 많은 경우 절판 되었고, 헌책방에서 조차 쉽게 구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어쩔거나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그의 글을 필요로 하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그의 글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좋아할 만한 사람들에 의해 그리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나는 나 스스로에 묻고, 그 누군가에게도 물을 것이다. “리영희 교수를 아세요?”, “리영희 교수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우리는 그를 여전히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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