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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정치·사회

[북리뷰]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by 체리그루브 2009.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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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현 정권을 지나오면서 나는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아니 도데체 노무현 대통령이 무엇을 그리 잘 못했었나?왜 보수와 진보, 그리고 시민단체는 그를 동시에 공격하는가?

 

이미 노무현 정권 측의 변호는 <대한민국 개조론>이나 <후불제 민주주의>를 통해 어느 정도 들었다고 생각했다. 보수의 입장은 애써 찾아 읽지 않아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친절히(?) 알게 되었으므로 별 관심이 없다. 문제는 진보인데, 이 기회에 진보적인 인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기회를 가져 볼 참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에 출간된, 이 책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을 집어 들었다. 다음은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노무현과 그의 정부에 대한 평가를 정리해 본 것이다.

 

첫째, 대체적으로 노무현은 진보 진영의 트로이목마였다는 평가다. 진보는 강고한 성곽을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진보를 내세운 민변 출신의 노무현을 맞아 자신의 성에 끌어 들였다. 그리고 노무현의 변절이 모든 진보 진영을 흩어놓고(일부 진보 인사를 발탁하여 정권에 편입시킴으로 시민단체는 구심점이 사라지게 됨), 진보를 무장해제 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박노자는 노무현이 일종의 음모 세력들에 놀아났다고 표현한다. 홍세화는 이점에서 노무현이 진보를 매몰시켰다고 표현했다진보 아닌 사람이 진보를 자처 하여, 끝내는 그 진보를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승호가 지적한 노무현이 좌파 내지 진보를 자처하는 바람에 그 보다 더 왼편에 있는 진보는 현실감각 없는 외계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 노무현은 애초에 진보적인 인사가 아니었다라는 평가다. 박노자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을 자수성가 형 노복이라고 얘기한다. 현 체제에서 자수성가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에 대해 만족과 충성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87년 민중의 혁명적 분위기에서는 분위기에 휩쓸려 약간 리버럴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미국과 보수 세력의 주문도 있고 해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충실히 받아 적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손석춘이 <조선일보>를 부정하면서도 그대로 <조선일보>가 안내하는 방향대로 이행했던 노무현의 정책을 비판한 것도 이것과 맥을 같이 한다. 김규항은 이념적 스팩트럼의 부재를 설명하면서 우리나라는 수구적 극우냐,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진영이냐로 갈릴 뿐 좌파나 진정한 보수, 진보는 설 땅이 없다고 통탄해 했다. 그런 면에서 약자의 상처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 부르주아였던 것이다.

 

셋째, 노무현의 실패원인은 소통의 부재였다는 평가다. 실제로 들어난 것보다 더 많이 노무현은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 주장이 실제로 더 강했다는 것이다. 이는 유신민도 동의했던 바다홍세화도 자기 자신에게만 부드러울 뿐 타자에 대해서는 오히려 엄격했던 사람이라고 비판 하였다. 한홍구는 이 부분을 상당히 안타까워했는데, 이런 노무현의 모습으로 인해 진보세력들이 돌아섰기 때문에 노무현은 관료들을 채용하여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관료들이 누구인가? 바로 IMF를 일으킨 주범이 재벌들과 관료들이 아니었나? 개혁의 대상이 될 사람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했으니,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었겠는가 말이다. 심상정에 따르면 노무현이 친미, 외교 경제관료에 의해 포섭된 케이스라고 하니사자굴에 들어가 도리어 사자 밥이 되었다고 해야하는건가?

 

넷째, 노무현 정부는 실패한 정부라는 평가다. 이에 한홍구는 수구보수세력의 단합된 행동에 노무현 정부가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권 초기에 갑자기 이라크 파병이 요청되고, 여기에 순응함으로써 많은 진보세력들이 노 정권에 등을 돌리게 되었더란 것이다. 그리고 선거로 선출되는 권력 중 대통령, 국회의원 과반석이 모두 개혁세력에 돌아간 것에 위기감을 느낀 선출되지 않은 권력(사법부, 언론, 재벌, 교회, 사립학교)이 똘똘 뭉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뉴라이트'도 출범 했다. 3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법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경쟁적으로 국가보안법 합헌,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 합헌, 행정수도 문제에 대한 관습법 주장 등을 통해 노 정권을 옴짝 달싹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홍세화는 노 정권의 변곡점을 국가보안법 폐지 실패에 두고 있다. 그만큼 국가보안법 폐지가 진보에게 중대한 이슈였다는 것이다. 다른 책에서 한홍구는 대통령을 만들어주고, 과반수 의석의 당으로 힘을 실어 줬는데, 결국 국가보안법 하나도 폐지하지 못한 것에 통탄해 마지 않았다. 진중권은 노 정권의 업적을 이 권위주의 해체에 두고 있지만, 심상정은 확실한 개혁을 위해서 추진력이 필요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노무현을 향해 낭만주의 개혁론자라고 평하였다.

 

다섯째,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라는 평가다. 좋다. 앞의 개혁은 실패했다 쳐도 한미 FTA는 왜 하려고 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홍구도 별 답을 주지 못한다. 왜 그랬을까요?라고 반문한다. 진짜 궁금한가 보다. 심상정의 대답이 비교적 명쾌하다. 한일 FTA 용역 건이 200건에 달할 동안 한미FTA 용역은 급조한 3건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개방대세론, FTA 대세론, 미국만능론 등 추상적 담론 수준의 신앙이 추진하도록 부추긴 것이라 했다. 하지만 똑똑한 노무현이 이런 신앙적인 주술에 넘어갔다는 건 좀 순진한 생각인 것 같다. 박노자의 음모론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미국의 요청을 받아 적고 실행에 옮겼다는 박노자의 설명이 좀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노무현 정부의 진보 매몰과 관련하여 정말로 중요하게 다시 정립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 보수이고 무엇이 진보인가 라는 것이다. 한홍구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 보수는 일본의 극우파와 닮았다고 한다. 친일적인 요소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민족적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보수는 과거로부터 계속 승계되어온 친일 세력의 자기 지키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진정한 보수의 임무 즉, 민족적 자긍심, 국가의 이익, 공공성에 대한 가치는 배제한 채 자기들의 살길만 찾는 수구세력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모두들 이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국민이 똑똑해야 나라가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다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진보의 시각을 정리해 본 것이다.

 

홍세화는 우리에게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에서 벗어나라고 권고한다. 흔히들 요즘 노동자들이 의식이 없다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의식 없는 것이 아니라 반노동자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를 부정함으로써 우리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취한다. 같은 맥락에서 김규항도 계급이란 말은 어떤 지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체라고 주장했다. , 계급 의식을 갖자는 말은 현실을 바로보자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박노자도 자신의 글쓰기 목적에 대해 이 부분을 강조하는데, 기존의 의식들에 대한 커다란 물음표를 찍는 작업이라고 했다.

 

홍세화똑똑한 한 놈이 아흔 아홉 명을 먹여 살린다는 세간의 말에 다음의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똑똑한 한 놈이 과연 아흔 아홉을 먹여 살리기는 하나?’ 그리고 설령 똑똑한 한 놈이 먹여 살린다고 해서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그런 사회여야 하나?’ 이것은 어쩌면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만이 옳고, 그것이 국익이라고 믿는 담론에 대한 반성의 질문일 것이다. 똑똑한 한 놈을 앞세운 미국이라는 나라를 너무 비판 없이 좇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사회복지가 잘 발달된 유럽에 비해 미국은 기부를 모델로 하여 성장했다. 성공한 억만장자가 많은 나라. 상상도 못할 액수를 경쟁적으로 기부하는 부자들의 나라. 하지만, 가난한 국민으로 살아가는 중산층에서 탈락된 미국인들을 바라보며 잠시 가던 길을 멈춰서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이 드는 건 왜일까?

 

홍세화는 현대사회에서 탈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선배라고 얘기한다. 인터넷은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선배는 인격적인데다 특수 관계이기 때문에 대학이나 전교조 같은 환경에서 탈의식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느냐는 면에서 그는 회의적이었다.

 

④ 김규항은 우파는 중간이상의 계급을 대변하는 태도이고, 좌파는 그 이하의 계급을 대변하는 태도라고 하였다. 인구 구성비로 보자면 좌파는 지지를 많이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좌파는 왜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이념의 스펙트럼이 너무 좁기 때문이란다. 우파의 이념인 수구적 극우냐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진영이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유럽은 상당히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단순히 그들만의 국민성으로 치부해서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으로 강한 해자를 두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알게 모르게, 다큐로 또는 책으로).

 

⑤ 김규항은 노동운동은 사람을 상품화 하는 경향을 뒤집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결국 돈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한 싸움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신주의에 대한 근본적 가치관이 자본가와 같기 때문에 권력의 교환밖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변화는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타당한 지적이다. 명분 자체가 바르고 곧아야 흔들림 없이 이겨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다. 이건 어쩌면 지금도 싸우고 있을 많은 분들의 수고를 함부로 재단하는 것일 수 있어 조심스럽다.

 

한홍구는 국립묘지가 다음세대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상징적 공간이라고 하였다. 왜 그런고 하니 군대에서 자살로 죽은 장병은 그곳에 묻힐 수 없는 것이 현실이란다. 군대라는 환경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린 이들에 대한 자리는 없다는 것은 결국 용도 자체가 다음세대의 전쟁을 위한 상징 공간이라는 말이 아니고 무어냐는 것이다. 의미 있는 얘기다. 조금은 비약적이다 싶지만, 기억해 둘만 하다.

 

⑦ 진중권은 현재 조갑제류의 할아버지들이 인터넷에 몰려있다고 하였다. 좀더 의미 있게 얘기를 풀어 생각하자면, 노인을 상대로 한 컴퓨터 교습이 각 지자체 마다 상당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이들에게 이제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장벽이 열렸다고 보는 것이리라(내 생각). 과거 노 정권을 만든 이들이 네티즌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수구 세력들도 정보화를 통한 조갑제류 할아버지들을 양산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리 있는 의견이다.

 

⑧ 손석춘은 말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 가로 누구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처음부터 좌파니, 보수니 하는 시각으로 그들의 의중을 한꺼번에 떠 보는 시각은 이 시대 정치과잉 현상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의견이다.

 

이 책은 진보 지식인들의 날카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어떤 것들은 내가 채 소화할 수 없어서 놓친 경우도 많았다.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겉보기와 다른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눈치 채지 못하고, 내 인식의 너머에 있는 많은 사회적 과제들이 아직 내게 들어오지 않은 것이리라 생각한다.

 

노무현도 내 인식의 너머에 있었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노무현에 대한 이면은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진보적인 시각에서 정립이 되었다고 본다그리고 한편으로 이 책을 보았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음을 떠 올려 본다. 그리고 그의 훼손된 자존심과 억울함을 공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시 못 올 민주화 시기라며 가족을 이끌고 청와대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소신 있게 활동한 대통령이었지만, 진보적 인사들에게서는 따가운 질타를 한 몸에 받아 누린 대통령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한나라 당 인사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듯 하다. 하지만 차이가 왜 없었겠는가? 이명박 정권을 보노라면, 차이는 분명히 있다! 다만, 진보인사의 기대에 정확히 못 미쳤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생전 당신의 이런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운동이 원칙의 문제라면 정치는 선택의 문제더군요. 운동은 항상 원칙적으로 문제제기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고 부득이한 선택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는 것이죠. 이에 반해 정치는 선택인 거지요.”(참여사회, 2007.07, p29) 유시민이 헌법을 얘기하며 들려준 존재당위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어떤 면에서는 정치인은 현실의 존재에 맞춰 선택을 해야 하지만, 진보인사들은 이상이라는 당위’(그렇게 되어야 한다)에 맞춰 선택할 것을 끊임없이 주문하는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이 주는 진보적 과제들과 비주류적인 담론들이 앞으로 많은 이들의 눈과 귀를 통해 전달되고 확산되어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들이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노무현 정부의 부족했던 결단들에 대한 반면교사를 삼아 이 다음의 기회에서는 꼭 사회에 희망되는 인사에게 한 표를 내어주는 시민이고 싶다. 내 딸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갈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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