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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정치·사회

[북리뷰] 후불제 민주주의

by 체리그루브 2009.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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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유시민의 인간냄새 나는 에세이 한 편이다. 헌법에 비춰본 국민주권 백서랄까? '나는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답이 헌법에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헌법 10조는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태어났다고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느리게 책장을 넘기며 생각해 보니 그가 행복이라고 소회한 자신의 글자락이 내가 원하는 행복의 한 장면이어서 큰 공감을 됐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쓸 때, 나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내면이 충만해지고 삶이 온전해지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 일만큼은 어느 누구한테도 크게 뒤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행복하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명서 가끔씩은 주변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행복할 것이다."(p.32)

 

저자는 우리들이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회의가 우선이라고 역설한다. "깨달음은 당연해 보이는 것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된다. 의심의 화살을 쏘아보지 않고는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없다. 검증 없는 믿음은 이성의 무덤이다. ...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는 무엇보다 먼저, 만인이 신봉하는 것처럼 보이는 명제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질문할 수 있는 자유이다."(p.40) 특히 헌법의 1조를 두고 "유리그릇만큼이 깨지 쉬운 사상"(p.44)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것이 갖는 속성이 '존재'가 아닌 '당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기가 주권자임을 알고, 누구에게도 부당하게 나의 주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나의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학습하고, 국민에게서 나오지 않은 부당한 권력이 나의 주권을 침해할 때 분연히 일어나 연대하고 투쟁할 줄 아는 개인, 그러한 개인이 민주공화국을 만들고 유지하는 힘의 원천이다."(p.61-62)

 

과거 우리는 유신의 그늘아래 '긴급조치'라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독재의 폐쇄회로"(p.50)에 갖혀 살았었다. 한국인의 몸에 맞는 법을 만드느라 수고하신 이들 '양복입은 침팬지'들은 "지식은 있으나 지성과 양식은 없고 두뇌는 명석하나 심성은 혼탁한"(p.57) 무리였다. 그들은 한 때 무대에서 사라진 듯 하였으나 다시 권력을 잡고, 미디어를 흔들고, 시민단체의 명판을 걸고 올라와 '뉴라이트'라고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는 형국이 되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시절 그렇게 쏘아대던 빅3 언론의 화살도 이들에게 있어서 만큼은 잠잠하였다. 이제 수구 보수 세력의 집합소가 된 권력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하며, 모든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고 일소한다. 과거 히틀러도 선거에 의해 총리로 올라선 것을 상기시킨다.

 

그가 보는 '진보'와 '보수'의 기준은 '연민'이었던 것 같다. "동시대를 살면서 같은 사건을 경험하지만, 사람들은 그에 대한 견해와 태도를 달리한다. 괭이갈매기의 동종살해와 인간의 대규모 동종살해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연민과 분노를 느낀다면, 당신은 이미 '진보적'이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것이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인 만큼 불가피한 일이며, 무슨 수를 쓰든 간에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별 느낌이 없다면 당신은 이미 '보수적'이거나 앞으로 그리 될 가능성이 많다."(p.67) 일전에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 산책>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이같은 연민과 분노를 수도없이 느꼈다. 누구나 자신의 가족이 그 현장에 있었거나 누명으로 간첩이 되었었다면, 그런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고 싶어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저자는 탕가니카의 침팬지의 서열사회를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힘자랑을 능사로 아는 대한민국 권력기관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사회학적으로는 침팬지에 더 가까운 동물이 드물지 않게 출몰한다. 그들은 권력 쥔 자들이 하는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권력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어리석은 국민을 숙주로 삼아 번성한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깨우고, 깨어있는 다른 사람과 손잡아야 한다. 다른 길은 없는 것이다."(p.84) 결국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국민들이 연대함으로써 찾아가고 지켜내야한다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우리는 연대가 너무 약하고, 공감하고 연민하는 마음이 너무 부족하다. 그는 말한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더 많은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을 가진 정당과 정치인을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국민에게 더 많은 기회를 골고루 제공하려는 복지 정책에 '좌익 포풀리즘'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신문들을 읽는다. 그 신문들과 똑같은 주장을 하는 보수 정당을 더 많이 지지한다. 부자를 더 부유하게 하기 위해 부자들이 내는 세금을 없애려고 깍아주면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재정지출은 삭감하는 정당에 표를 던진다. 아이들 과외비에 허리가 휜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사교육을 부추기는 교육 정책을 들고 나온 후보를 지지한다."(p.99)

 

유권자의 대부분이 노동자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주 노동당을 자신들의 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좌익노선이 짖은 것이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인 듯 한데, 이는 지나친 언론권력의 딱지 붙이기의 결과란 생각이 든다. 이에 저자도 "정보를 통제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최강 권력은 언론이다."(p.194)이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게 이것을 처음 깨닫해 준 사람은 강준만 교수다. 시대를 따라 몸의 색깔을 위장하여 살아남았고, 약한 먹이감을 향해 떼로 덤벼드는 언론의 속성을 비유해 저술한 <카멜레온과 하이에나>가 그것이다.

 

저자는 모든 종교를 존경하지만 개인적으로 인격신을 믿을 수 없다고 얘기한다. "나는 그 절대자가 내 기도를 들어주거나 내 삶의 길흉화복을 정해준다고 믿지 않는다. 그런 사소한 일은 초월적 절대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쩐지 인간이 신을 인간 자신만큼이나 초라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는 느낌이 든다."(p.134) 그는 태초에 세상을 만들고 더이상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 신을 믿는다고 얘기한다. 이점에 있어서는 파스칼의 고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의 종교에 대해 경계는 다음 글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모든 종교를 똑같이 존중한다. 그런데 동시에 종교의 권위를 업은 독선과 광신은 두려워한다. ... 종교적 독선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벗어나기 어려운 무지와 오만의 산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139)

 

남북관계는 10년 동안 가꾸어온 꽃밭과 같았다. 하지만 그는 현 정부가 그 밭을 망쳐놓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선서와 헌법 제4조를 위반하고 있다. 휴전선 남과 북에서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불신, 적대감이 자라게 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말 몇 마디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런 일을 할 능력이 없는 대통력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무능한 대통령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증오와 불신을 존중과 이해로 바꾸고 적대감과 분열이 있던 것에 공존과 화합의 정신을 싹틔우는 것은 오직 유능하고 선한 지도자만이 할 수 있다."(p.159)

 

저자는 자신의 영어에 대해 일찌기 깊이 공부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한다. 수학도 사실 자신의 아내의 실력에 비하면 비천하다고 얘기한다. 그의 전공인 경제학에 대해서도 논문 저널에 기고할 만큼 되지 못한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의 직업은 자칭 지식 소매상이다. 이러한 고백을 들으며 나는 그의 인간미가 느껴졌다. 누군가 현대의 지식인은 지식 및 문화 해설자로 변해버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자신의 정확한 이름표를 갖고 있는 셈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현 정권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 않는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감시와 비판을 무서워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나태해지고 부패한다. 거대 보수 신문들이 보수 정권과 유착하는 형태를 지속한다면 결국 이명박 정권은 권력형 부정부패의 늪에 깊이 빠지고 말 것이다."(p.267)

 

"대통령과 장관과 경찰청장의 입에서는 단 한마디도 진심어린 위로와 사과의 말도, 인간적 괴로움을 토로하는 한탄도 나오지 않았으며 오로지 '법질서 확립'과 '떼법 근절'처럼 국민을 위협하는 말만이 서슬 퍼런 칼처럼 난무했다. 그들은 '강자의 지배'를 '정의'와 동일시하고 국민주권 행사를 체제 전복행위로 간주하는 사악한 체제를 복구하기 위해 경찰력과 최루탄으로 대한민국을 '포맷'하려 할 것이다."(p.374)

 

"악한 시스템을 무너뜨림으로써 선을 실현하려는 거대한 시민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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