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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경제·경영

[북리뷰]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by 체리그루브 2009.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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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nomadism)이란?

공간적인 이동만이 아니라, 버려진 황무지를 새로운 생산의 땅으로 바꿔가는 것, 곧 한자리에 머물러 있다 해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 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

  

 

 

500만년 전 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 이래로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해 왔다. 기껏해야 땅에 정착한 시간을 인류사에서 이끌어내자면 0.2%(1만년) 정도일 뿐이다. 의미 있는 해석이다. 인간을 호모 노마드(이동하는 인간)라고 불러도 보편적 진리는 틀리지 않을 만큼 유구한 세월 동안 인간은 이동해 왔다. 비록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국가가 인간의 이동을 방해하고 있다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런 "정착의 역사"도 여전히 이동의 생기 속에서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겠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논리를 인류사에 대한 숨가쁜 고증을 통해 밝혀 내고 있다.

 

아탈리는 왜 '노마디즘'이라는 프레임으로 역사를 바라본 것일까? 원시 인간으로부터 이동과 자유라는 인간의 본능이 역사 이래로 어떻게 면면히 흘러왔고, 오늘날의 이동하는 인구의 현상을 밝혀 보려는 흥미롭고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의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이러한 프레임으로 보지 않으면 안되는 숙명적 세계관이 그 속에 숨겨 있어서였던 걸까?

 

근대의 국가는 이 원시적 노마드를 학살하고, 관료의 체제 아래 묶어두고, 낡은 것으로 치부하여 왔다. 전 세계의 소수로 존재하는 원시적 노마드 종족은 아직도 평균 수명 이하의 열악한 가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왜 소수로 남겨졌던 것일까? 서구의 제국적 야망과 이기적 약탈이 빚은 결과로 학살과 추방이 그들의 삶의 자리를 몰아내었던 것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유럽에서 자행된 유태인과 집시들에 대한 학살과 추방, 미국에 들어간 수천의 유럽인이 수천만의 노마드 인디언을 학살하고 가두었던 이야기 등은 인류의 죄악사를 보는 듯 하여, 노마디즘에 대한 환멸까지 들 정도였다.

 

이제 원시적 노마드는 사라진 것일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민족적이고 종족에 국한되었던 것이 이제는 직업적인 특성과 상업적, 유희적 특성을 띄고 오늘날 우리의 삶의 층위와 부의 계급을 결정해 주는 주요 키워드가 되었다. 아틸라가 궁극으로 설명하고 했던 부분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인프라 노마드는 생계를 위해 국적을 떠나 일을 해야 하는 저임금의 이주노동자를 지칭하고, 하이퍼 노마드는 전문직군의 고임금 노동자를 일컫는다. 상업적 노마드도 이야기 한다. 세계화를 부추기는 경제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이야기다. 현재는 세번째로 시도되는 세계화란다. 유희적 노마드라는 말도 있다. 승마, 서핑, 골프, 댄스의 스포츠엔 노마드 특유의 정신이 들어가 있다는 독특한 해석이다. 그럴듯 하지만, 미래의 주요 스포츠가 될 거라는 주장엔 동의 할 수 없다.

 

매년 9천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나고, 자기 나라를 떠나는 사람은 1천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2003년에 25억이던 인프라 노마드는 2050년엔 50억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특별히 근거를 내놓진 않는다. 저자가 워낙 함축적인 언어로 추리다 보니, 읽으면서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계속 지적 폭력에 상처를 입으며 책장을 들춰 넘어간다.

 

이런 일련의 노마드 이야기는 역사가 증명하듯, 서서히 노마드의 저항을 예견한다. 세계대전의 시작 때마다 전쟁에 대한 무르익은 정서가 유럽 전역 곳곳에 가득했다지 않던가! 미국은 이제 옛 로마와 같이 서서히 내부로부터 붕괴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서슴치 않는다. 중국과 인도에 의한 붕괴가 아닌, 민주주에 의해 붕괴될 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과거 노마드가 만든 위대한 발명품이 아니었던가! 역사를 '노마디즘'적 프레임으로 보는 저자의 지적 통찰력은 단순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의 현상과 다가올 미래를 보는 그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숙명적 과제였다. 

 

이제 우리는 노마드 정신이 인간의 욕구였다라는 것을 우리의 인식에 편입해 넣어야겠다. 인식의 그늘이 아닌 양지(陽地)에 노마디즘을 펼쳐 두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과 삶의 양식을 대함에 있어 어떤 통제로 그들의 자유를 구속하려 들지 말아야겠다는 노마디 마인드를 형성해야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의 강제적 인권 유린에 대해 묵과할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를 향해 자국의 국가 권력을 휘두르는 저 미제국도 이제는 억압받는 노마드들로부터 외면받고, 심지어는 내부 국민으로부터도 붕괴의 원인을 제공 받게되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인류에 학살과 추방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가슴 아픈 역사는 쓰기도, 읽기도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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