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대중화로 인해 미국은 전 국토를 광케이블로 깔듯이 붐이 일어났으나 곧 철회한다. 남아도는 케이블은 반값에 인도와 미국의 해저 케이블 연결에 쓰이게 되는데, 이때부터 미국의 인력시장은 값싸고 영어에 능숙한 인도인으로 대체된다. 인도인은 각 산업분야의 Y2K문제를 해결하는 데 광범위하게 동원되었으며, 닷컴 붕괴이후부터는 각 기업들의 악화된 재정사정을 만회하기 위해 아웃소싱의 수혜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값싼 노동력에 대한 추구는 제조공장의 해외이전에서도 잘 보여 진다. 결과적으로 인도와 중국과 같은 나라는 부유해 질 수 있었고, 점점 더 난해한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세계는 바야흐로 혁신의 각축장이 되었고 이제는 모두들 세계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도전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상은 본서의 방대한 줄거리 앞부분을 힘겹게 줄인 요약이다.
저자는 이러한 세계화의 기로에서 국가, 기업, 개인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이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는 '온정적 평평주의'를 내세우는 세계화 옹호론자이다(513). 그러면서도 베스트셀러 작가이기에 그가 제시하는 세계화 담론에는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문제는 그의 세계화 담론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세계화의 정당성과 그 그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기에 그의 글에 나타난 세계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세계는 정말로 평평한가?’에 대한 물음이다. 저자 스스로도 평평하지 않다고 고백한다.(652) 세계에는 아직도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13억명의 사람이 있고, 다국적 제약회사의 개발 철회로 인해 말라리아로 아프리카 난민 100만명이 매년 죽어간다.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3억 달러를 기부하는 빌게이츠의 행위을 인터뷰와 함께 칭찬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마치 다국적 기업만이 이런 빈민구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화는 가속화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온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세계화의 '추악한 작은 비밀'(저자가 즐겨 사용하는 말) 하나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다국적 기업의 진입을 용이하게 하고 헤지 펀드와 같은 대규모 자금의 출입을 자유롭게 하여 한 국가에서 뽑아낼 수 있는 재정적 이득을 가장 극대화 하고자 하는 강대국의 야심찬 프로젝트, 이름 하여 '자유무역'의 다른 이름이 ‘세계화’인 것이다. 일찍이 동아시아와 우리나라에 불었던 IMF 위기도 그와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한 집단이기 때문에 빌게이츠와 같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갖게 하려는 것은 순진한 독자에 대한 기만일 수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살펴보려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을 얘기하려는 게 아님을 다시 환기 시키고 싶다. 왜냐하면 이 방대한 도서 전반에 걸쳐 경제가 아닌, 기술과 정보에 집중하여 평평화가 이야기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세계는 정보 앞에서 평평한가?' 라고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답은 의외로 명확하다. 평평하지 않다. 이는 저자가 암암리에 성토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MIT의 석학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지식 데이터를 중국 학생이 흡수하는 데는 3개월이 걸린다고 이야기한다(504). 물론 이와 같이 창조하는 데에는 10년이 걸릴 거라고도 한다. 아무리 미국의 이공계 학생의 수가 줄어들고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 줄어든다고 죽는 소리를 해도 미국에게는 강력한 "지적재산권"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간 동안 지적재산권의 장벽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다.
어쨌든 저자는 그러한 미국 정부의 기술인력 양성에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와 들이쳐 올라오는 인도와 중국 같은 나라에 대한 경계심만 보아도 아직 정보에서 조차 평평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불(不)평평을 계속 유지하고 싶기에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의 첨언은 우월성를 내비치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볼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평평한’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고 다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당연히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 않지만, 점점 더 ‘평평한’ 것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할 수록 웹 브라우저 말고는 평평한 것이 없다는 불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정보의 평평함을 예(例)로 들어 경제적 평평함으로 가고자 하는 것은 저자의 글쓰기이다. 이제 프리드먼은 본격적으로 개발도상국이 취해야할 개방성과 자유무역에로의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언제든지 근로자의 해고가 자유롭도록 하는 것이 마치 국가경제에 매우 이로운 방향이라는 듯이 보호무역의 해체와 노동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국적 기업에 너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정책이다.
1980년대 후반까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프로그램을 받아들인 제 3세계 국가가 70개국이 넘어서면서, 워싱턴의 원격조종을 받는 안정화, 구조조정, 충격요법은 이미 남미 같은 나라들의 공통된 조건이 되었다. 이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WTO)는 모두 미국이 강력하게 의결권을 행사하고, 그 의결권은 다시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 기업의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할 세계화의 두 번째 추악하고 작은 비밀이다.
어쨌든 저자는 이에 대한 사항은 뒤로 하고 농민에게도 문화적 혜택을 주어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개발도상국의 개혁의지를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전반에 걸쳐 이야기 하는 정보의 평평함이 갑자기 경제적 평평함으로 둔갑한 것이다. 마치 정보가 평평하면 경제적으로 평평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보도 평평하지 않으면서 무슨 경제적 평평함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인가? 따라서 이는 정보의 평평함에 대한 환상만 가득 심어주고, 개발도상국의 보호무역을 무장해제 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숨겨있고, 좀더 악의적으로 해석하자면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긴 수명 연장을 위해 개발도상국을 희생시키자는 것이리라. 지나친 악의적 해석인가?
셋째, 반세계화에 대한 저자의 오만한 의견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세계에 필요한 것은 반세계화 운동의 소멸이 아니다. 반세계화 운동은 성장해야 한다. 이 운동은 많은 에너지와 대중 동원력이 있다. 그러나 이 운동에는 실제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빈민층과 협력하여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일관된 의제가 없다.”(675)
일관된 의제가 없는 것은 어쩌면 맞는 말이다. 그들은 환경주의자로서 반세계화주의자 일 수 있고, 문화적 다양성을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반세계화주의자 일수 있고, 포퓰리스트로서 반세계화주의자 일수 있다. 그만큼 그들 삶의 자리에 대한 시급성은 각개전투적이이며, 세계화를 옹호하고 있는 프리드먼의 세계화 담론만큼 주류적이지 못하기에 매스컴에서 크게 소외되어있다. 이들의 문제는 솔직히 말해 주류 언론이나 매스컴을 통해 시원스럽게 알려지지 않고, 모든 세계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것에 있다 하겠다. 왜 그런가? 매스컴과 언론은 돈을 많이 주는 사람을 더 많이 노출 시키며, 심지어는 광고주에 반대되는 집단은 왜곡해서 보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프리드먼이 반세계화 운동이 성장해야한다고 본다면, 지금 다시 그의 '델' 노트북을 열어 그들을 지지하는 책을 다시 써야 할 것이다. 그 책 제목이 이러면 어떨까? <세계는 결코 평평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세계는 평평하다>는 세계적인 흐름을 인과적으로 해설해 보여주는 데 참신하고 탁월한 면을 갖고 있다. 프리드먼은 평평화 동력으로 10가지를 들고 있는데 물론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동감하고 새롭게 얻은 지식은 다음의 지식을 얻는 기반이 될 것이기에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이 갖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옹호론은 ‘그것이 정당한가?’라는 부분에서 비판해야할 여지를 갖고 있다 하겠다. 이 책은 이로운가? 세계적 상황을 이해하고 주류 담론을 이해하는 데에는 이롭다. 하지만 좀 더 정당한 탈세계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주변화 된 담론도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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