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발견
아거 지음
인물과 사상사, 2017
꼰대의 기원 설명에서, "번데기"의 경상도 사투리가 "꼰대"였다고 하며,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잘난척하는 사람"을 일컫는다는 부분에서 확~ 단어의 뜻이 이해됐다. 한번쯤 직장에서 경험해 보암직한 상사들의 얼굴이 떠올려질 때쯤, 나도 그 대열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살짝 반성해 보는 책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문장 하나 하나가 가슴을 찌른다. 이 책으로 상처투성이 된 나는 꼰대였는가 보다. 저자도 따지고 보면 나보다 연배가 하나 아래이니 나라고 별수 없잖은가.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문장과 인용이 잦더라 싶었는데, 출판사도 알고보니 [인물과 사상사]다. 내가 단일 출판사로는 가장 많은 책을 본 출판사, [인물과 사상사] 일텐데.. 역시나 강준만 아저씨가 공들인 그 출판사 느낌이 뱄다. 안철수 지지하다 요즘엔 쏙 들어가셔서 통 어찌 사시는지 알수가 없는 분. 이문열 훈계짓 하지 말라고, 소설가면 소설가 본연의 업에만 충실히 하라고 실명비판하신 분이, 대학에서 제자들 가르치다 말고, 정치판을 짜시더랬던 분. 이분도 꼰대였나?
어쨌든 이 책의 본문에서 밑줄친 부분들을 모아봤다.
나보다 나이가 적거나 직장 내에서 후배가 내 의견에 반대하는 걸 고깝게 여긴다. 살아온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나보다 경험이 적은 이들의 말을 신뢰하지 못한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서서히 말을 놓기 시작했고, 회의 자리에서 상사와 생각이 달라도 입 밖에 내지 않는 걸 훌륭한 처세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사에게 하는 만큼 내 밑에 있는 직원도 나를 대우해주어야 한다 생각하고, 그게 틀어졌을 때 '나 때에는 안 그랬는데'란 말을 주워 삼킨다. 어느새 나는 꼰대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 '어쩌다 꼰대'가 되었다. (7-8)
처절하게 공감되는 내용이다. 어쩌다 꼰대가 된 나의 사연 같다.
개인의 성공담을 기반으로 '너희들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자기계발서는 꼰대 의식이 활자화된 것에 불과하다.(10)
자기계발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꼰대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타자와의 만남과 부대낌을 통해 성찰하고, 사유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행동을 변화시키면서 성장하는 건 꼰대의 태도가 아니다. 대신 꼰대는 남에게 인정을 꼭 받아야 한다. 인정을 받지 못하면 성질을 부리거나 뭔가 불이익을 준다. 그래서 꼰대는 독불장군이며, 불통의 아이콘이며, 과신과 독선의 산물이다. (25)
전 직장 상사가 과도하게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사람을 사람으로써 아니라 불량품 취급하는, 자신이 개조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인품들. 한 없이 깍아내리고는 자신의 애타는 인정 욕망은 거침없이 내뱉으신 분들.. 조심하자, 나도!
최근 나는 타자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만큼이나 타자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타자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넌 나와 다르구나'라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할 때 내가 타자에게 건네는 말은, 또 행동은 그에게 폭력으로 가닿을 수 있다.(27-28)
무슨 말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첫 문장을 이렇게 고쳐야 하지 않을까? "최근 나는 타자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 만큼이나 타자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라고. 그래야 뒷 문장하고 설명이 이어지니 말이다. 어쨌든 다름을 인정해야 타자와 같을 거란 심정으로 내뱉는 말들이 폭력이 되지 않겠다는 굉장히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깨달음이다. 종교 모임에서 내뱉는 나의 "믿음 좋음"에 대한 서술이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폭력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주의해야겠다.
2016년 7월 7일,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의 놀라운 망언이 있었다. 그는 <경향신문>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나는 1퍼센트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구의역에서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게 자기 자식 일처럼 생각이 되나.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등등의 발언을 했다. 그는 다음 날 <경향신문>을 찾아와 과음과 과로가 겹쳐 실언 했다고 사과했다고 하던데, 함께 자리에 있던 기자는 과음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30-31)
경향신문 기자들의 용기 있는 취재기에 박수를 보낸다. 도대체 나향욱은 기자들을 어떻게 보고 이런 마음의 소릴 짓껄인 것인지 그 의도가 궁금하다. <내부자들,2015>의 대사를 공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민중은 개.돼지"라고 말할 거까지야. 자신의 지위에 대한 자만과 평소 정치적 소양이 목구멍을 비짚고 나온 것이겠다 싶다. 그래서 이니는 지금 뭘하는 지 궁금타, 갑자기. 18.2.22 기사에 보니, 파면 쉬소 소송에서 승소. 그러나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배청구는 모두 패소. 세 치혀로 얻은 게 없는 셈. 자유한국당에서는 받아줄지도 모를일이다. 배현진 처럼. (이책에서 얘기하잖는가 젊은 꼰대 조심하라고)
뭐든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뭐든 다 경험했던 것처럼 말한다. 뭐든지 내가 제일 잘할 것처럼 행동한다. 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 등등 '척'하기 바쁘다. 조금이라도 남보다 뒤쳐져 보이고 싶지 않다. 아등바등한다. 그러면서 남을 무시하고 가르치려 든다.(34)
이거 안해봐서 아는데, 내려놓으면 맴이 편하다.
전에는 몰랐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지금은 안다. 그게 동굴 속 횃불에 비친 커다란 그림자를 나라고 착각했던 것이라는 걸. 그래서 꼰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동굴 속 그림자를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동굴 속 꼰대들이 갇혀 있는 더 큰 동굴 속에서 나와야 한다. (34)
동굴의 비유 너무 잘 아는 우화인데, 비유가 참 적절하다.
내가 겪은 주관적인 경험을 일반화해서 그 사람에게 적용하고, 내 처지에서 그 사람을 재단하려고 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 이질적인 존재, 즉 타자는 타자로 인정해야 하지만, 타자를 '나'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평가하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36)
앞서 이야기처럼 타자의 다름을 인정해야 알게 모르게 짓는 언어적 폭력도 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차카게 살고 싶다.
고약한 노인네 증후군은, 꼰대의 행태와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인정 욕구에 과도하게 굶주려 있고, 권력 관계에 따라 남을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남의 성취를 인정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을 질투하고 시기한다. 이러다 보니 자신의 권력을 과도하게 내보이려고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남이 나를 깔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내 위치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사람들을 '적대감과 분노'로 짓밟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47)
그래서 찾아보니, 이런 책도 있다. 곱게 늙을 일이다.
'어디서 감히'는 상대방과 대화하거나 소통할 때 쓰는 말은 아니다. 모든 대화와 소통을 차단할 때 쓰는 말이다. 여기에 돈을 지불했다는 것이 추가되면 인격체로서 누군가를 존중하는 일은 더 힘들어진다. 꼰대가 쉽게 내 뱉는 말은, 존중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와의 소통을 일방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서 매우 폭력적이다.(65)
나는 이 언어의 폭력을 잘 안다. 어렸을 때, 어른이 되어버린 형님, 누님들의 말씀에 껴들다가 늘 듣던 말이라, 똑똑히 기억하고, 한편으론 제일 하지 않고, 제일 싫어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상처가 곪고 내재화 되어 누군가에 권위적으로 굴려고 하는 방어기재가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어 내심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똑똑하고 경쟁적인 일부 부모들은 '기죽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설령 네가 잘못해도 꼭 사과할 필요는 없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남을 이겨라(커닝이나 폭력 정도는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남 신경 쓰지 말고 네 것만 챙겨라(약하고 아픈 사람 도와줄 필요 없다)'와 같은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보내 자녀들을 냉혹하고 지능적인 범죄자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80) 이나미 <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인용
똑똑한 부모들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주는 처세라니.. 나향욱하고 뭐가 다른가!
다시 말하지만 서열과 신분에 따른 귀천 관념은 남을 모욕하는 기반이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귀천을 가르고 서열을 가르는 걸까. 권력의 정도다. 권력은 금력에서 나온다. (101)
'백화점 모녀 갑질'을 소개하는 서두에 나오는 문장이다. 대단한 금력에서 빚어진 귀천 관념이란다. 그런데 고작 대기업다니시는 분들은 얼마나 돈을 많이 받기에 그렇게 갑질이신지.. 금력보다 자리가 귀천 관념을 고착시켜주는 것은 아닐는지.
꼰대는 조직 내에서 한 인간을 독립적인 주체가 아니라 자기가 마음대로 부려도 되는 수단으로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이 전체주의의 시발점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110)
전체주의의 시발점이라는 말에 등골이 오싹해 온다.
그러니 남, 모욕하지 말자. 누구에게나 남을 모욕할 권한 따위는 없다.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등한시하고 모욕하는 건, 그래서 안된다는 걸 몰랐다고 해도 용서가 안 되는, 생각보다 거대한 폭력이다. 남의 자존감, 무릎 꿇리지 말자. 그 모욕 때문에 누군가는 하루 하루를 사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자. (111)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보면, 벌집을 들쑤시지 말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의 마음을 벌집에 비유한 것이다. 비슷한 말인 것 같은데도, 카네기의 말은 결국 "손해볼 수 있는 리스크를 만들지 말라"라는 말로 바꿔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즉, 나의 이익 측면에서 생각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훼손하는 말은 삼갈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모욕하지 말라는 것은, 순전히 그런 이익 관점의 동기가 아니다. 사회 정의의 차원 같다. 인간의 존중받을 권리를 세워주는 차원. 좀더 높은 차원에서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의 '꼰대' 성찰은 그래서 다른 것 같다.
과거 언저리만을 더듬는 꼰대의 태도는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다. "보수 꼴통"은 "세상이 지옥 같아? 그냥 견뎌!"라고 말하고, "좌파 꼰대"는 "세상이 지옥 같아? 그럼 너네가 바꿔!"란 식으로, 무책임한 이야기를 해대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150)
꼰대는 꼭 보수 우파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 꼴통 꼰대는 약도 없다. 조심하자.
그러니 어딘가를 응시하며, 촉촉이 젖어오는 눈시울과 함께 추억 언저리를 더듬는 짓은 혼자 하자. 누가 먼저 물어오지 않는 이상 내 경험, 내 추억을 섣불리 꺼내지 말자. 그것은 나한테나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자 추억이지, 발설하는 순간 짜증을 유발할 뿐이다. 또 과거 경험에 빗대 현재를 재단하는 일 따위는 하지 말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짜증 유발자, 분노 유발자가 되는 길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란 보상심리, 접자. 그 보상심리로 애먼 상대에게 복수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공감능력, 키우자. (163)
난 선천적으로 공감능력 부족자다. 그러니 이 책을 보며, 내가 느낀 공감은 누군가로부터 나는 이런 사람 아니라는 인정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써 공감이 아니길 조심스럽게 소망해 본다. 언제까지는 일정정도 내가 내뱉는 말과 행동에, 이 책의 내용들이 많이 자기검열 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마저도 기억에서 흩어질 때 즈음엔 어찌해야 할지, 답이 없다. 이 글들이라도 자주 들여다 봐야 할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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