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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종교

[북리뷰]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by 체리그루브 201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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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우종학 지음
새물결플러스, 2017

과학이나 철학에서 통용되는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이다. 가령 먼 외계 행성에 외계인이 살고 있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고 해서 외계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20)

과학은 하나님이 쓰신 자연이라는 책을 읽는 방식이다. 하나님이 쓰신 책은 두 가지다. 특별계시인 성경과, 일반계시인 자연이라는 책이 그것이다. (24)

물론 과학은 그리 위대하지 않다. 과학이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낭만주의적인 과학은 20세기가 되면서 무너졌다. (78)

성경을 읽는 바람직한 방법은 성경의 저자들이 의도한 내용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만약 성경의 저자가 의도하지도 않은 내용까지 억지로 읽어낸다면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데까지 말하고 성경이 말하지 않는 곳에서 멈추라는 권면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113)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은 현대 과학의 결과에 바탕을 둔 철학적 논증을 통해 기독교 신앙뿐 아니라 유신론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종교를 공격하고 있다. <만들러진 신>을 통해 한국사회에도 잘 알려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대표적인 과학주의 무신론자로 꼽힌다. 도킨스와 함께 신 무신론 운동을 이끌어 가는 대니얼 데닛이나 미국의 언론인이었던 크리스토퍼 히친스, 그리고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 등을 쓴 신경과학가 샘 해리스도 과학주의 무신론자에 포함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물리학자 스티브호킹도 <위대한 설계>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신 무신론에 힘을 실어 주었다. 호킹은 한두 페이지 분량의 짧은 내용이긴 하지만 우주가 창조되는 과정에 시은 필요 없다는 언급을 이 책에 담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133-134)

빅뱅 우주론이 등장한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빅뱅 자체를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빅뱅 자체에 관한 과학적으로 엄밀한 설명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이론 물리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초끈이론이라든가, M이론이라든가, 혹은 다중우주와 같은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러한 설명들은 아직 빅뱅 자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엄밀한 과학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이론들을 입증할 수 있는 경험적인 증거들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이론적인 면에서도 이 이론들은 완성된 이론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145-146)

과학주의 무신론은 철저히 증거주의에 입각한 주장이다. 하지만 과학적 증거가 없다면 사실로 여기지 않는 증거주의적 태도는 사실 우리의 삶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사실과 가치, 지식이나 진리가 과학의 영역에만 제한되지는 않는다. 증거주의의 잣대를 통과해야만 사실이 되거나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과학 외적인 영역에도 분명히 사실과 지식, 진리가 존재한다. 가령 인간의 생명이 존엄하다는 믿음은 과학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 걸어가다 만나는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인 도덕률은 그것이 옳다고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는 걸까?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를 증명할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해서 그 명제는 믿을 만한 가치가 없게 되는 걸까?
우리의 삶은 증명되지 않으며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수많은 믿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 아내는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이 사실인지 아닌지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남편을 위한 다양한 행동이 사랑의 증거로 채택되어 엄밀하게 증명될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사실은 경제적 혹은 심리적 유익을 누리기 위한 합리적 선택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아무리 사랑을 고백한다고 해도 사실은 그녀 자신도 속고 있는 것이 아님을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 글쎄다. 그렇지만 나는 과학으로 증명되기 때문에 그녀의 사랑을 믿는 것이 아니다. 증거에 기반한 증거주의적 판단에 의해 사랑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을 경험했기에 믿고 받아들인다.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되어야 할 영역도 우리 삶과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모든 것을 과학의 잣대로 판단하겠다는 식의 증거주의는 우리 삶을 피폐하게 할 뿐이다. (151-152)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고 그래서 에너지와 물질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와 지식의 풍요함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동일하고 오래 참고 신실하신 성품을 반영한 창조세계를 창조하셨고 창조세계를 운행하는 원리로서 자연법칙을 부여하셨다. 그래서 자연세계는 자연법칙에 의해 질서 있게 운행되고 인과관계를 따르며 예측 가능하기도 하다.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한 뒤에 우주가 스스로 운행되도록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주를 붙들고 다스리면서 자연법칙에 따라 우주가 운행되도록 섭리하고 있다. 이것이 창조주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고백이다. 그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창조세계를 다스리고 돌볼 대리자로 세우셨다는 의미다. 그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세계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성적 능력이다.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한 창조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세계를 관찰하고 이름 짓고, 창조세계의 운영체계인 자연법칙을 파악할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인간에게 부여하며 놀라운 지식과 지혜를 인간들에게 나눠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능 이성을 갖게 되었다. (157-158)

안타까운 점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뒷받침하는 지적인 토대를 거의 갖고 있지 않거나 혹은 너무 약한 토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누가 신을 만들었는가"와 같은 성립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무신론자들과의 대화나 토론에서 밀리고 만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을 명확히 이해하는 일,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의 주장을 명확히 파악하는 일, 그리고 신앙의 지적 토대를 궃건히 다지는 일이다. (159)
요약하자면 복음주의권의 그리스도인드링 취할 수 있는 스펙트럼은 계획된 진화, 인도된 진화, 지적설계, 오랜 지구론 정도가 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중에서 하두 입장에 서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다른 입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무신론적이며 성경에 위배되는 견해라고 공격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320)

또한 우리는 창조의 그림이 조금씩 깨지고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천동설이 무너져지만 창조신앙이 무너지지 않았고 천사가 달을 끄는 것이 아님이 판명 났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다스리심에 대한 신앙이 파괴되지 않았다. 지구의 나이가 6천 년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성경의 권위가 떨어지거나 믿지 못할 책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변화는 오히려 우리의 제한된 이성안에 가두어두었던 창조주와 그의 역사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 변화는 오히려 제한되었던 창조의 관점을 확장시키며 창조신앙을 더욱 튼튼한 기초 위에 바로 세우는 과정이다.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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