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웹툰을 보고 딸에게 권했었는데, 어느덧 딸도 다 읽고, 영화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더랬다. 이제는 원작과 영화의 차이가 무엇인지 조차 가물할 때 쯤 봐서일까? 딸아이가 차이점을 얘기해 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웹툰 원작을 본 강렬한 우리 고유의 사후 세계에 대한 인상은 깊이 남아, 영화 곳곳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동양에서 공유하는 사후세계는 윤회와 환생이라는 큰 틀에서 이뤄진다. 이것이 서양의 폭력적 사후세계에 비해 얼마나 더 자연스럽고, 우월한지는 예전에 읽었던 작은 소책자를 소개하며 쓴 글에서 서술한 바가 있다.
그런데 신과함께에서 보여준 사후세계는 다소 거칠다. 착하게 살아도 보통 착하게 살지 않고서는, 인간으로 환생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7개의 심판이 그만큼 녹녹치 않은데, 그나마 깐족거리는 검사와 판단력이 다소 부족한 심판관 그리고 꿀먹은 벙어리 처럼 스스로를 전혀 변호하지 못하는 못난 주인공으로 극의 긴장감을 덜어줬다.
동양 세계관을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그려넣어, 충분히 영화적 상상력을 펼쳐 보였다. 이는 웹툰으로는 가히 표현할 수 없었던 영역이다. 그러나 소소한 동양 사상의 기원과 설명은 전체 스토리에 파뭍혀, 영화로써는 도저히 웹툰이 안겨준 지식의 세밀함은 가져다 줄 수 없었다.
이런 동양 사상은 많은 부분 우리 윗세대에 만연해 있었던 부분이어서 착하게 살아야 할 당위를 제공했고, 우리 시대에 이어 다음 세대로 내려가고 있다. 그 기원이 중간에 기독교적 심판론이 끼고 바뀌어진 것은 있지만, 큰 그림에서는 '사후세계의 안위를 위해서는 현세에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짙은 동양적 사상이 녹아 있게 된 것이다.
진지한 기독교 사상가들에게는 이것이 어쩌면 좀더 값싼 기독교 신앙의 기원인가 할 것이지만, 세상사 인간은 보상이 따르는 부분에 마음을 두기 마련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을 품고 신앙생활 하는 건전한 기독교인들에게는 사후세계는 그저 덤으로 얻는 선물 같은 것으로 간주될 뿐, 현실에서 더욱 열심히 살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에 열심인 것. 이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공동체의 빛과 소금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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