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괘한 법정드라마인데, 마음이 불편하다.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지 못한 채 끝난 것이 아쉬워서겠다. 드라마 시작부분에 등장했던 설거지 하던 아내는 화려한 변호사로 변신하여 일과 가정을 너끈히 양립하며 남편과 별거하고, 자신의 사랑(외도)도 지켜간다. 문제의 시작은 남편의 외도인데, 타이밍상 해명이 늦어지고 구차해지면서 오해만 깊어갈 뿐 결국에는 정서적 이혼 상태로 남아 쇼윈도 부부로만 겨우 유지하는 수준에 이르는 결말이라니.. 다른 송사들은 시원스레 결말을 해피하게 끝내주면서도 정작 자기의 문제는 이렇게 종결짓는 게 굿와이프라니, 아이러니다.
어쩌면 나는 15년 경력단절 전업주부가 하루아침에 천재적 재능으로 남편을 함정에서 구해내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순진한 결말을 기대했기에 이처럼 착잡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한 편으론 나도 이런부분에선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건가라고 회의가 드는 걸로 보니, 그냥 소시민의 목가적인 희망이라고만 이해해주시길.
인상적이었던 몇 지점을 꼽아보면,
첫째는 김단(나나 분)의 활약이었다. 진짜로 로펌에 저런 수사관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싶을 만큼 모든 사건의 해결은 김단에게서 시작된다. 예전 암행어사라는 드라마의 상도 쯤 된달까? 열쇄따기, 수사정보 파헤치기, 사람찾기 등 모든 업무능력에서 그 수완이 돋보였다. 전직 검찰청 수사관이었는데 이태준 검사(유지태 분)에게 짤려서 로펌MJ에 귀하게 스카웃된 케이스. 그런데 과거 이태준과 잠자리 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김혜경 변호사(전도연 분)와의 관계가 급랭하게 된다. 이쯤에서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 지는데, 이 드라마가 미쿡에서 물 건너온 것을 감안해 생각하자면, 김단은 레즈비언이다. 그야말로 이태준과의 과거는 치정이 아닌 정보를 빼내기 위한 거래였다고 볼 일. 극중 김단은 정보를 빼내기 위해 누군가와 잠자리를 하는데, 뒷모습이 여자였던 것이 근거가 되겠다. 그녀에게는 정의는 없다. 과정과 절차도 없어서 무법적이고 신속하기까지 하다. 여자인데 남자보다 더 남자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다.
두번째, 폭력적인 장면 없이도 스릴을 안겨준 법정 공방의 긴장과 공판이후 스스럼없이 일상을 나누는 변호사들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판사와 고객 앞에서는 서로의 변론계획에 맞춰 날선 공방을 하다가도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다시 옛 선후배와 친구로써 대화를 이어 나간다는 게, 꽤나 나이스 해 보였다. 일과 사람을 분리해서 다루는 노련한 스킬이라고 보였다. 실제도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경우도 이래서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셋째, 계약서의 중요성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대목이 있었다. 부부가 이혼하면서 위자료 지불을 위해 같이 경영해 오던 회사를 매각해 나눴다는 얘기. 이 과정에서 로펌 MJ가 이혼 성사를 위해 무리하게 헐값에 회사를 팔았고, 매각 이후에도 회사는 꾸준히 성장해서 이 부부가 손해 봤다며 100억원의 손배 소송을 로펌MJ에 걸게 된 사건이다. 결국에는 일상적인 종이 한 장이 판결을 갈랐다. 변호사에게 위임한 매각 건에 대해 잘못이 있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1장의 계약서.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계약서가 사라지고, 로펌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서.류.분.실.때문. 문제가 없을 때는 문제가 안되지만 귀찮은 게 서류보관이다. 송사와 각종 증명에 없어서는 안될 서류의 중요성이 의외의 지점에서 떠올랐다.
기독교 관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에서는 어느 누구도 기도하거나 신께 간구하지 않는 사람들로만 가득찬 그래서 더더욱 현실적이지 못하게 그려진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세상 살다보면 송사에 휘말릴 지경에 이른 사람들은 하다못해 지뿌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께 맡기고 기도하기 마련이거늘, 여기 등장인물은 하나 같이 변호사만을 의지한다. 변호사가 신이다. 신들의 전쟁이 법정에서 펼쳐진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서 노니는 꼴이 되어버린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 수 없는 대목이 몇몇 있다.
우선은 남편의 외도와 반성 그리고 이후 아내의 외도다. 아내의 외도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물론 진정성 없는 남편의 사랑, 아내가 바라는 것을 해 주기 보다는 자기의 처세를 위해 장식품 아내를 곁에 둬야 하는 남편의 비극도 한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나마 유지하는 가정을 너무 쿨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동경하거나, 위기의 가정을 정당화 할 수 있을만큼.
둘째는 수단의 정당성이 훼손된 상태에서 얻는 승소가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다. 양육강식의 사회에서 사자가 되어 친구를 디딛고 밟아서라는 오늘날 대부분 부모의 사고와 닮은 지점이다. 좀더 나은 차원을 추구해야 함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경쟁논리를 부추긴다.
셋째는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가정은 모두 훼손됐고, 그럼에도 공동체성이 없다. 마치 그런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처럼 말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법정 드라마에 심폐소생 가정을 넣어두고 조마조마하게 지켜 보게 만든 쫀쫀한 드라마였다. 그래도 외도는 너무 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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