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 브레히트는 2차대전과 관련된 사진 69종을 모아 그에 대한 묘사를 4행 시로 첨가하여 이 시집을 출간했다. 독일어 원문으로 읽어야 그 진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언어적 한계상 번역본으로 만난 것이 아쉽다. 이 책이 의미있는 것은 그가 독일 나치를 피해 망명하던 당시, 수집한 사진들을 연대기 순으로 편집하여, 대화체의 시를 첨가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야 요즘의 기술력과 창작능력을 갖춘 모든 블로거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다양한 면에서 창의적인 장치들이 포함되있다. 우선 이 책의 제목이 왜 <전쟁교본>이냐는 것인데, "교본"이라는 것 자체가 배우기 쉽도록 정형화 된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 창안하여, 4행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율에 맞춰 입으로 쉽게 따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각 도서관마다 비치되어 모두에게 읽히기를 바랬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과 그 전쟁을 수행한 사람들(피해자)을 나누어 보도록 했으며, 다시는 이와같은 참극에 국민들이 고통당하지 않았으면 하면 마음으로 <전쟁교본>을 출간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당시에는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이데올로기(포토 리얼리즘)가 만들어졌던 시기였다. (그럴만도 한 것이 사진기가 귀한 기계였고..) 그런 르포주의에 반하여 반어법적인 형태로 '사진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몸소 시집으로 담아낸 것이다. 사진에다 말을 붙인다. 그러나 그 사진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담긴다.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독자의 시각에 '의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가 단순한 시가 아니라, 사진과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대화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밖에도 책의 구성을 흑백으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어 사상의 대비를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나치의 시작과 멸망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전쟁을 일으킨 인물들의 사진, 도심 폭격사진, 전쟁으로 지친 얼굴들, 무엇보다 저자가 독일인이라서 그런지 독일군 내부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이 수집되어 보여진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화형식으로 짤막하게 묻는다. "누구를 위해 전쟁을 하는가"라고 말이다. 그는 밀가루를 공수하는 미군의 사진에서는 "밀가루와 임금"을 동시에 받아야한다고 비판한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주의자였다. 그래서인지 책의 전체적인 방향도 독일이 사회주의와의 전쟁에서 패했다는 식의 결론에 이르는 것 같다.
이 책을 읽다보니, "기동화된 독일 교회"라는 당시의 신문기사를 찍은 듯한 사진이 하나 눈에 띈다. 어처구니 없는 이 기사를 같이 읽어보자
"카톨릭 신자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제 독일 카톨릭 교단은 약 38개소의 이동교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작은 자동차에 조립된 제단인데 교통이 불편한 지방에 투입되어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모두 미사를 볼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앞으로도 특히 멀리 떨어진 군 주둔지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10개가 넘는 이러한 움직이는 교회가 더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신부들이 운전사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역시 그 밑에 저자의 간결한 시가 표현된다.
오 즐거운 사명, 신을 기동화 하라!
진격 중인 히틀러를 신은 아직 뒤따르지 못했다.
신에게도 결국 휘발유가 바닥나겠지만
그래도 기대해 보아라, 전쟁에서 신이 지지 않기를.
해학이 묻어나는 그의 글에는 뼈아픈 독일 교회를 향한 비판이 스며있다. 사랑이 없는 기독교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뒤따르게 한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이땅의 기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모든 교회에 대한 반성이게 한다. 사랑없는 나에게로부터도 반성이 터져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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