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 읽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 졌다.
다른 이들이 읽고 생각하는 방식을 살핀다는 것은, 나의 독서를 교정하고 좀더 비슷한 심정의 사람들과 교감한다는 따뜻한 동기에 기인한다. 지은이가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 자신의 일기는 나를 돌아다 보게 하는 면도 있었고, 일종의 <82년생 김지영> 같은 느낌도 있었다. 담담하게 풀어내는 독서와의 상호작용과 20대 처지의 고민에서 공감되는 면이 많았다. 그리고 적잖게 아내와 딸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딸... 대학 등록금 어떻게 마련해 줘야 하나. 갑자기 책을 읽다가 아내에게 물었는데, 시큰둥한 답변을 한다. 더 벌면 되지..
단순히 '성과사회'로의 이행이 우울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 수준에 이르면 자기착취가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된다"고 분석한다. '자유'라고 착각하며, 스스로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일 뿐이라는 착각이 나 자신을 자본의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다.'더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완결'은 없다. '더'만 있다. 개방성과 미완결성은 성장에 유리하다. 이는 분명 자살로까지 치닫는 '자기착취'다. (67)
솔직히 위와 같이 생각했다는 것은 물론 저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겠지만, 지난 번에 읽었던 <고용신분사회>보다 훨씬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서열에 대한 집착은 이십대에게 가장 통속적인 자기방어 기제가 되었고, 차별당하는 자신을 인정하는 동시에 타인을 차별하는 것 역시 정당화한다.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등 약자에 대한 멸시 등이다. (70)
우리가 누군가를 멸시하거나 하는 행동과 습관이 사실은 나 스스로를 갈아먹는 행위일 줄이야. 뭐 감정적으로 격해져 봤자 손해라는 것은 늘상 후회로 막닿뜨리는 일이지만, 방어기제까지 운운하며 나의 행동을 돌아다 봐야 한다고 하는 것은 성찰의 결과라고 밖에.
삼포세대를 넘어 'N포세대', '88만원 세대', '이태백' 등등. 나와 친구들을 명명하는 단어도 참 많았다. '짱돌을 들고 바리케이트를 치라'며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어른들도 있었다. 하지만 짱돌을 든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75)
달라진다. 적어도 촛불은 바꿨다. 이승만 정권시절에도 서울신문사에 쳐들어가 불을 지르는 사건도 있었다. 요즘 언론이 겁없이 구는게 역사를 잊는 치매에 걸린게 아닌가 할 때도 있다.
대학 등록금 천만원 시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집은 갈수록 줄어들고 국가는 앞장서서 학자금 대출을 권한다. 정상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시작부터 빚인 삶에 새로움, 창의력은 불안감에 잠식된다. 책에는 학자금 대출을 모두 상환한 사람이 등장한다. 대출을 다 갚은 뒤 일상에서 생긴 첫번째 변화는 '음식'이었다. 그에게 빚이란 음식을 줄이는 것이었고, 상환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어른들은 말한다. 우리 때는 풀죽만 먹고 살았다고. 다 같이 풀죽을 먹는 것과 나만 풀죽을 먹어야 하는 것은 다르다. (83)
나와 타인은 다르다고 인식하는 서술이 조금 슬펐다. 누군가 같이 연대해줄 사람이 필요할 거라고 봤다. 애들 둘이 있는데, 6년 후 대학 보낼 생각하면 사실, 이 글을 읽는 시점부터 조금 떨린다. 집을 줄여가야 할라나?
문유석 판사는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는 집단주의 문화"라고 말한다. 집단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쉽게 무시되는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이 결국 불행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집단이나 공동체는 개인에 앞서는 숭고한 유기체가 아니다. 개인은 집단이나 공동체를 위한 기쁘게 헌신하고 희생해야 할 나사못이 될 수 없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노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91)
멋진 말이다. 집단안에서의 개인이 마치 나사못 처럼되어야 한다는 의식의 고정관념을 깨야한다. 개인이 먼저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한다는 말.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멋진 말이다!
일단 판매되면 더 이상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상품들과 달리 노동력은 판매 된 뒤에도 일하는 능력이나 강도 등을 끊임없이 평가받으면서 통제된다. 노동력의 경쟁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성별이나 학력,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차별을 통해 노동력이 통제된다. 경영합리화라는 이름 아래 경쟁은 당연해진다. 경쟁 시스템에 놓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다른 사람의 걸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 '너'의 기대, 나아가 '사회'의 기대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 이것이 결국 '나'를 소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사람이 피폐해진다는 말이다. 노동자는 동시에 소비자라는 점도 다른 상품과 다른 점이다. 자본은 노동자가 끊임없이 소비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것은 자본가가 아니고 노동자이고, 노동자가 충분한 소비를 하지 못하면 자본이 아무리 생산력을 발전시켜도 소용이 없다. (135)
노동력을 판매하는 나같은 직장인에게 이 글이 주는 메시지는 슬프기까지 하다. 늘 숙명처럼 여겨야 하는 기술에 대한 갈망과 공부의 정체가 끊임없는 평가에 대한 나의 방어기제였던 것인 걸까? 압박감에 시달리기까지 했던 것일까? 어쩌면 누군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블로그 글 등록에 대한 스스로의 재촉은 있었다. 내가 나를 가만놔두지 않는 이런 착취와 피차취가 내 속에 일어난다.
저자의 독서 일기 오픈에 박수를 보낸다. 젊은 날을 치열하게 보내고 고민한 평범한 소시민인 저자가 앞으로도 더많이 성장하고 본받을 어른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나 또한 사회적 꼰대로써, 뒤이어 올라오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나몰라라 하지 않는 어른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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