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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축제인류학 (살림지식총서 014)

by 체리그루브 2022.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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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흔히 축(祝)과 제(祭)가 포괄적으로 표현되는 문화현상이라고 정의된다. 특히 고대 사회를 비롯한 전통적 사회에서 벌어지는 축제들은 성스러운 종교적 제의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종교로서의 축제

페루의 태양제는 일년 동안 모든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해 준 태양에 감사하면서, 다음 해에도 더 큰 수확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태양의 신전 안에는 황제와 그 혈족만 들어갈 수 있으며, 성직자의 손을 통해 다양한 제물을 바치고, 황제와 주변 신하들은 옥수수로 만든 빵을 흘러나온 제물의 피에 적셔서 먹었다. 이러한 희생 제물을 통해 잉카인들은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전쟁이나 평화, 농작물 수확 정도, 천재지변, 황제의 안녕 등을 예측했다. 이러 측면에서 축제는 성스러운 존재나 힘과 만날 수 있게 하는 의사소통 수단이 되는 것이다. 

환타지 추구 : 인간의 유희적 본성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호이징가(Huizinga, Johan)는 「호모 루덴스 homo ludens」라는 책에서 인간의 유희적 본성이 문화적으로 표현된 것이 축제라고 하였다. 놀이를 통해서 인간들은 기본적인 욕구충족의 충만함을 느끼는 것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더불어 재미있기’ ‘재주를 칭송받기’ ‘승리의 기쁨 누리기’ ‘규칙 습득하기’ 등을 습득한다. 

코스모스와 카오스 : 생의 역설적 찬미

축제란 일상성을 벗어던지고, 혼돈의 장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다시 현실로 회귀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 현실을 뒤엎으려는 것이 아니다. 후자가 목적이라면 그것은 이미 축제를 넘어선 혁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축제적인 상황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카오스적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남부유럽의 소몰이 축제는 죽을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거나, 과제물 기한이 지척인데도 우선은 축제에 참여하고 보는 이런 행위들이 혼돈의 장으로 스스로를 내어 맡기는 것이겠다. 

구조와 리미날리티 : 비일상성과 전도

사회인류학자이자 상징인류학자였던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이러한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을 ‘리미날리티(Liminality) 단계’라 칭하고 이러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나 공간을 ‘코뮤니타스(Communitas)’라고 부른다. 리미날리티란 ‘문지방’을 의미하는 리멘(Limen)이라는 말에서 파생한 것으로, 문지방에 서 있는 것과 같이 평소에는 금기로 여겨지는 공간과 행위의 존재를 상정한다는 것이다. 

이 속에서는 자신과 어떤 친밀한 관계를 갖지 않았던 사람과도 단번에 진한 ‘동료애’를 느끼며 이를 통해 모든 이들이 ‘동질성’ 속에서 합일되는 것이다. 월드컵이라는 지구촌 축제에서 우리는 이런 경험들을 했었다. 한달 동안의비일상적 경험은 그 이후에 다시 들어가게 될 일상적인 삶의 중요성을 더욱더 부각시켰던 것이다. 

초월적 에너지 획득

축제를 통해서 일상생활을 되돌아본다면, 외형적인 삶은 변하지 않더라도 삶의 내용이나 개개인의 구체적인 인간관계 사회구조적인 차원 등에 본질적으로 의문이 가해지고, 이에 따라 일상적 삶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기도 한다. 즉 축제 속에서 인간은 초월적인 에너지를 가진 영역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G. Balandier). 이러한 경험을 통해 다시 현실적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극단적인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축제의 상징성과 유사종교성

넘쳐나는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이윤의 극대화, 경제적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축제는 일종의 모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축제 속에서 유토피아를 찾고자 하며, 이를 통해서 자신의 생존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고차원적 욕구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적인 토대 중의 하나가 바로 문화정체성의 확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전통성의 재확인을 들 수 있겠다. 

소수민족들의 축제

축제 속에서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신이나 인간에게 재물을 바치고 또 상호간 교환하면서 끊임없이 증여와 반대증여의 순환이 일어난다. 궁극적으로 이런 증여(don)와 반대증여(contre-don)는 보다 조화롭고 평화로운 일상적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모스는 이러한 문화현상 속에서 하나의 ‘전체 사회적 사실(total social fact)’로서 증여를 통해서 호혜성의 원리를 추출해낸다. 돼지를 많이 나누어줄수록 명예와 위신이 올라가기 때문에 추장과 같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돼지고기를 베풀어야만 자신의 위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화폐경제가 도입되면서 무상으로 음식이 제공되기보다는 돈을 받고 음식물을 사고파는 과정 속에서 누가 더 많이 팔고 많이 살 수 있느냐를 경쟁하는 것으로 바뀌기는 하였지만, 재화가 끊임없이 순환되면서 사회적 관계를 재확인하는 과정으로서의 축제의 기능에는 변함이 없다. 

서구사회의 축제

카니발 축제는 사순절이라는 금욕기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벌이는 먹고 마시는 향연의 시기이다. 이와 같이 사육제 시기에 벌어지던 카니발이란 본래 일상생활의 흐름을 단절하고 평소에 금기시되었던 성직자의 위선에 대한 조롱, 외설 등이 용인되는 시기이며, 농촌사회에서는 비생산적이었던 겨울이 지나고 자연의 생산성이 증가하는 봄의 도래를 맞이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축제로는 베니스 카니발, 브라질의 리오 카니발, 독일의 쾰른 카니발, 영국의 노팅힐 카니발 등이 있다. 

일반 민중들은 카니발을 통해서 억압된 욕구를 발산하고 다시 규범적인 엄격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일상에서 억압된 본능을 축제 기간 동안 해소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정치적인 요소로 발전하는 것을 미리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종의 사회적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러시아의 마슬렌니짜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계절축제이자, 그리스정교에서 지정한 부활절 전의 대육식금지기간을 준비하는 기간에 벌어지는 축제이다. 이는 988년 토착신앙과의 융화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경험하였던 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독교 성인들과 토착신앙의 신들을 동일시하였고, 이들 신들을 교회 안으로 흡수하여 축제 속에 포함시켰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적 축제들이 그리스 정교 축일로 대체되었다. 

유럽 남부 지역에서는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팜플로나(Pam-plona)에서 벌어지는 산 페르민 축제(San Fermín)를 비롯한 다양한 소놀이 축제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이 축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축제가 벌어지는 기간 내내 아침 8시에 반복되는 소몰이(entierro) 때문이다. 1924년부터 1997년까지 이 축제에 참여하다가 사망한 사람은 14명이나 되며 200여 명의 부상자가 생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남프랑스의 수레행렬축제는 가톨릭적 전통과 농경생활과, 말과 소와 인간의 관계 등을 보여주는 등, 관광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마을주민들은 매년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도 매년 그 축제를 기다리며 한 해의 축제가 끝나면 고취된 연대감과 문화적 정체성 그리고 자부심으로 일상적인 삶을 새롭게 충전시킨다. 

영국의 에딘버러 축제는 이 축제가 고안된 이후 일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으며(군악대축제, 영화축제, 민속축제, 어린이축제, 책축제, 과학축제 등 20여 종의 축제가 있다), 8월에 그 절정을 이룬다. 이 축제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부분은 ‘프린즈(Fringe)’ 공연, 즉 다양한 사이드 공연이다. 프린즈 공연은 소규모 단체들의 자발적인 공연으로 시작되었고, 공연에 대해서는 어떠한 예술적 심사도 받지 않는다. 

뮌헨의 맥주축제는 1810년 바이에른 왕국에서 루드비히 황태자와 테레제 공주의 성대한 결혼식을 축하하는 경마대회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시에서는 해마다 7000억원의 수입을 거둔다. 

프랑스의 망똥의 레몬 축제도 특산물인 레몬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인데, 이는 단순한 물건의 전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테마 축제’로 승격시켰으며, 공문서에 레몬 문양을 넣고, 질 좋은 레몬을 생산함으로써 레몬을 지역의 상징물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축제

우리나라는 신라 시대 병졸들의 위령제(굿)로 시작한 '팔관회'와 향촌 구성원들을 결속시켰던 '연등회'로 구분지어 전해진다. 팔관회는 지배 계층의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고, 연등회는 농경의례적인 성격의 종교집단행사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한가위 추석도 이런 제천의식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조선조에서는 연등회나 팔관회가 사라지고 중국의 영향을 받아 산대잡극이 성행했다. 즉 광대줄타기, 곡예, 재담, 음악 등이 연주되었다.일제하에서 고유의 민속놀이는 미신 행위로 간주되어서 버려야 할 것으로 강제되었다.이에따라 해방된 이후에도 조선조의 유교 개념으로 이단시된 놀이의 개념이 나태와 동의어로 전수되었으며, 이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겨를도 없이 이데올로기 투쟁, 6.25전쟁, 경제난 등으로 ‘지극히 낭비적인’ 축제에는 관심조차 두지 못했다. 

95년 지방자치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각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적 특성을 강화하여 정체성을 확고히 드러내면서 지역주민의 화합을 도모하려는 축제들이 관 중심으로 조직되어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기도 하였다. 여러 축제를 주제별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마을굿으로서의 축제’가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강릉단오제, 하회별신굿탈놀이 등을 들 수 있다. 

둘째는, ‘지역정체성의 강화’라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는 축제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다시 종류별로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역의 전통을 중시하고자 하는 영암왕인문화축제, 산성백제문화제, 수원화성문화제, 남원춘향제, 전주풍남제 등이 있고, 지역의 자연적 특성을 강조하는 대관령눈축제, 유채꽃잔치, 진도영등제, 무안연꽃축제 등이 있으며, 지역의 특산물을 중심으로 연희되는 하동야생차축제, 강진청자문화제, 풍기와 금산의 인삼축제, 양양송이축제 등이 있다. 

셋째는, ‘관광과 여흥거리’로서의 축제를 들 수 있는데, 도자기축제, 김치축제, 음식축제, 문화예술제 등으로 불리는 축제들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넷째는, ‘도시적 성격’의 축제를 들 수 있는데, 명동거리축제, 신촌거리축제, 대학로청소년축제 등이 있다. 대부분의 축제들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연희되는 것에 반해서, 이 도시적 성격을 가지는 축제들은 유동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특정 세대나 계층 또는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한국 축제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현대 한국 축제가 가지는 문제점으로 가장 흔히 지적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관 주도형 축제의 남발로 인한 상부하달식 축제 거행의 문제가 있다.
둘째는, 일회성 이벤트성 행사로 인한 경제적・시간적 낭비를 들 수 있다.
셋째, 지역주민을 비롯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부족과 참여 방식에 대한 논의 부족을 들 수 있다.
넷째는, 과도한 관광상품화에 따라 진정한 축제정신의 결여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결점들이 첨예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축제가 가지는 기본적인 속성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신적 토대가 되는 신화나 역사적 전통에 바탕을 둔 공동체의식, 고유한 역사의식을 공유하는 집단 공동체로서의 참여 주체, 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적 고유성과 정체성 그리고 자부심의 확인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축제 참여자들 간에 지역적・문화적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축제는 공동체의식의 표현이지 수단이 될 수 없다. 축제는 공동체의식의 표현이거나 기존의 것의 강화이지, 존재하지도 않은 공동체의식이 몇 번의 축제행사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축제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식이라는 점이다
셋째, 관 주도적 이미지를 청산해야 한다. 시장이나 도지사가 제의를 주도하는 것은 관 주도적 이미지를 준다.
넷째, 마을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된다고 해서 마을 문화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섯째, 축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보다는 스스로의 자긍심과 자부심의 표현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축제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 기꺼이 즐겁게 즐기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지를 가졌느냐 하는 것이다. 

축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주민들은 지역의 고유한 종교적 특성이나 역사, 신화나 전설, 상징물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이것을 축제 속에 흡수시켜서 전통적인 삶의 양식이 현대적인 삶 속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축제에 대한 고찰은 놀고 즐기는 그 자체에 대한 고찰이라기보다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삶, 그것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은 축제의 인문학적 시선으로 다채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나의 주위를 환기시키고, 오늘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새로운 나를 재발견하게 하는 원동력으로써의 '축제'의 기능적 장점을 잘 부각시켜줬다는 것이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축제만 일까? 낯선 곳으로의 여행도 마찬가지 일지 싶고, 따지고 보면 종교행사도 그와 유사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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