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복음주의와 은사주의의 간의 갈등이 있었다. 이들 갈등의 핵심은 사도행전 시대에 등장하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빚어진 치유와 방언, 예언의 사역들이 더 이상은 교회 내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견해를 갖는 복음주의 계열의 믿음이, 성령의 역사하심이 이 세상에 아직도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은사주의 계열의 믿음과 상충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성경 66권 말고는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더 이상 없다라고 하는 것이 복음주의자들의 견해이고, 무슨 말이냐 깊이 묵상하는 중에도 성령을 통해 계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은사주의자들의 견해이다.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성경이 오늘날의 66권으로 정해지기까지는 수많은 종교회의와 교부들의 의견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정경에서 제외된 위경과 외경 등은 오늘날에도 존재하나, 그 가치와 위상은 성경에 견줄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초대교회 이후의 시기에서 위협적인 요인들은 저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예언의 은사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교회를 골치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언의 은사를 배제함으로써 교회의 분열과 혼란을 막고자 하는 기류가 교회 내에 정립되면서, 은사주의는 외면 받아 왔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신학적으로 복음주의와 은사주의를 낳았고, 이들의 견해차이는 점점 심해져 현대에 이르러서는 교회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말씀이냐 성령이냐 인데, 이 책의 저자는 말씀과 성령이 함께 해야 능력이 있는 교회가 된다고 설명한다. 실제 각 진영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서로 화해하는 집회를 갖고, 복음주의에서는 성령사역을 보완하고, 은사주의에서는 말씀사역을 보완함으로써 서로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데, 힘쓰자는 것이다.
교회의 생동력을 불어넣는 핵심은 바로 말씀과 성령임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다만, 복음주의 기독교 내에서 예언의 은사를 용인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을 명시 해 두는 데, 그것은 한 개인의 예언이, 같은 믿음의 소그룹 공동체 모두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에는 잠잠하라고 충고한다. 현명한 제언이라 생각했다.
와닿았던 구절들.
그는 철저한 논리와 성경적 정확성에 입각해 참 신앙은 열정 어린 신앙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15)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가 <신앙감정론 The Religious Affections>에서 한 말)
우리는 단지 기도만 열심히 하는 데 그치지 말고, 가만히 기도를 멈추고 성령께 누구를 위해 기도하시기를 원하시느냐고 묻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령께서는 종종 은사를 허락하시고 상심한 영혼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116)
고전 찬송가는 하나님의 초월성에 초점을 맞추고, 은사주의 찬송가는 하나님의 근접성을 의식하도록 돕는다.(120)
바울이 가르친 사랑은 기독교 결혼식 설교 본문으로 종종 이용된다. … 하지만 바울이 처음에 어떤 의도로 이 말씀을 가르쳤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바울의 본래 의도는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과 방언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 있었다. .. 바울의 요점은 간단하다. 즉, 방언을 말하는 것보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159-16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경우 … 그런 응답은 대개는 사자使者를 통해 온다. 천사, 예술 작품, 선지자, 점심 식사를 함께했던 사람, 성경말씀, 찬송가, 환상, 꿈, 자연 풍광, 극장의 심야 공연 등이 사자의 역할을 한다. (187) (켄 가이어 인용)
말씀과 능력을 겸비한 교회는 예수님이 모든 원수를 물리치고 승리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서구 사회의 합리적인 세계관은 영적 열정을 사그라지게 만든다. (189)
야구 주심 세 사람이 경기가 끝난 뒤 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볼은 볼이고, 스트라이크는 스트라이크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은 “내가 볼로 보면 볼이고, 스트라이크로 보면 스트라이크지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볼이나 스트라이크라고 말하기 전에는 볼도 없고, 스트라이크도 없소이다.” (199) (월터 트루이트 앤더슨의 예화, 엑스세대 이후의 사람들의 시각은 세번째에 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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