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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종교

[북리뷰]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살림지식총서004)

by 체리그루브 2009.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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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하나님은 노예제도를 어떻게 보실까? 우문(愚問)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미국의 노예제도에 대한 찬·반론은 둘 다 성서로부터 근거를 얻어내고 있다. 이 책은 17세기 중반부터 발견되는 흑인노예의 시작과 19세기 후반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다.

 

 

 

 

 

인류 역사이래 노예제도가 부당하다는 의식은 고작 200년 전부터서야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노예들의 처우개선을 제기한 단체가 영국의 동물보호협회였다는 것은 노예의 인권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보여준다. 영국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이 먼저 일게 된 것도 사실은 어떤 박애주의적인 동기라기 보다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으로 영국의 사탕수수 수출길이 막히면서 노예를 먹여 살려야 할 경제적 부담이 농민들에게 가중되었기 때문이었다.

 

초기 미국 이민사회는 종신봉사형식의 노예제가 없었다(1619).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몰려오는 사람들 중 배삯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들어와 일정기간 계약직으로 노동하고, 봉사를 마치면 자유인이 되는 ‘계약 노동자’였다. 따라서 흑인들도 종신봉사와 신분세습이라는 노예 특유의 차별이 없었다. 하지만 영국의 크롬웰이 네델란드의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경제가 살아나고, 미국으로 유입 되어야 할 영국인들이 줄어들면서 노동시장은 17세기 중반부터 많은 흑인의 유입을 필요로 했다. 실제로 백인 계약노동자보다 흑인이 선호되었는 데, 주요한 이유들로는 ① 자유로운 백인 계약노동자들 보다 실질 재산가치인 흑인 노예가 더 좋았고, ② 도망가더라도 백인 계약노동자 보다 찾기가 쉬웠으며 ③ 찌는듯한 남부 더위에도 잘 견디는 체질 때문이었다. 종신노동에 대한 징후는 문헌적으로도 1640년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노예제에 대한 반대는 퀘이커 교도와 감리교도들이 시작했다. 이들의 성경적 근거는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마태복음의 황금률이었다. 반면 노예제 찬성의 입장은 성경의 ‘함의 저주’ 이야기로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후 100년 동안 미국은 축적된 부와 함께 세속화되어갔고(1740), 도시는 점점 번성해져 변방은 계속 확장되어갔다. 교회와 목회자는 모자랐고, 산간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했다. 훈련된 순회 전도자들은 각 지역으로 파견되어 초교파적으로 예배를 인도했다. 이 때 일어난 것이 대각성 운동이었는데, 한 퀘이커 전도자의 설교가 인디언 처우개선과 노예제 반대를 주장하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다. 대륙회의 연설에서도 홉킨스 목사가 ‘노예제도가 공화주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하여 노예제를 연방 전체의 의제로 제출했다. 마침내 1804년 북부의 모든 지역은 노예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반면, 남부는 노예를 근간으로 하는 농업에 심대한 차질을 주기 때문에 심적으로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노예제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점진적으로 노예제도가 자연 도태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830년 북부의 노예제 폐지 운동은 과격해지기 시작하고, 이것이 남부를 자극하여 역사는 동서의 갈등 양상에서 남북의 대결 구도로 재편된다. 마침내 1860년 링컨의 대통령 당선으로 남부는 연방을 탈퇴하면서 남북전쟁이 시작되고, 19세기 후반 북부의 승리와 함께 노예제도는 소멸된다.

 

미국에서의 노예제에 대한 역사 해석은 시대마다 다르게 변천해 왔다. 1세대 19세기 후반의 민족사가들은 북부를 폐지론자로 묘사하고 남부를 지각없는 옹호론자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뉴잉글랜드 퓨리턴을 중심으로한 사가들은 남북전쟁을 노예제를 둘러싼 도덕적 대결이 아니라 북부산업의 남부산업 지배로 보았다. 2차세계대전 후 미국의 탁월함을 예찬하는 합리주의 사가들은 용광로 이론을 펼치면서, 과거 노예제 옹호는 비도덕 타락한 군상이었다고 평가했다. 196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반문화, 신좌파의 영향을 받은 사가들은 북부가 실제적으로 노예제 폐지를 진심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며, 인종주의적 편견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성서는 많은 텍스트들에서 노예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이점은 찬성론자들에게 변론의 여지와 확고한 신앙적 근거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의 해석은 문자적 해석이기 때문에 ‘협의적 해석’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에 반해 폐지론자들은 성서를 ‘광의적으로 해석’하여 신앙적 근거를 찾아낸다. 황금률이 대표적인 예다. 노예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어도 인간에의 존중을 강조하는 예수의 정신을 상기시킨 것이다.

 

문제는 성서 해석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미국은 흑인 노예에 대한 보상이나 진정한 사과 없이 긴 세월을 자신의 백인 하나님을 앞세워 논쟁하고 있다는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우려하는 것은 미국은 '협의적 해석'이 여전히 우세한 사회라고 보는 것이다. 부시 부자(父子

) 행정부를 지지했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강한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문제로 제기하고 싶은 것은 노예제는 사라졌지만, 인종에 대한 편견과 불평등 사회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 편의 대로 해석되는 저 반성 없는 신앙인들에 의해서 폭력적으로 펼쳐지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사람이 사람을 종속시키는 사회로 만들지 않을까 싶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들의 '가부장적 온정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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