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서강대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의 문학 에세이다. 이미 오래 전에 고전의 숲이라는 필제로 조선일보에 실어졌던 것들을 편집하여 한 권의 단행본으로 나온 것이다. 가끔 조선일보 Book 섹션을 보다가 내가 일찍이 접하지 못한 고전 문학 작품에 대한 기사를 흥미롭게 보아왔던 터였는데, 우연찮게 직장 동료로부터 이 책을 권유 받고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문학의 사회 윤리적 순기능이 발효되어 나온 결과물이다. 문학을 읽노라면 비윤리적 행위와 옳지 않은 방법을 통해 일신의 안위만을 찾고자 하는 속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작품은 종교가 일깨우지 못했던 많은 설교를 대신하여 미드라쉬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며,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고 하겠다.
저자가 속삭이는 작은 에세이들에는 바로 그 문학이 독자를 통해 체화되고 난 결과물로써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의 희망을 보고자 하는 마음들이 담겨 있다. 비록 문학작품들에 대한 세세한 줄거리를 다루고 있진 않았지만, 핵심은 그 이야기의 옅은 기억들이 저자의 삶 속에 녹아났다는 것 아닐까? 요사이 종교 서적을 가까이 해 온 터라 '궁극적 실제'에 대한 물음과 나의 삶에 대한 반성에 유독 예민해져 있기에 이런 책은 내게 문학작품에 대한 도전은 종교서적의 연장으로 다가가야 하는 것 아닌가로 귀결된다.
물론 단순히 문학의 윤리적 순화를 채득하기 위해 문학에 접근한다는 것은 문학을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는 편향적 접근이란 소리를 들을 만하겠다. 어쩌면 윤리교과서를 직접적으로 파고들거나 종교서적에 몰입하는 것이 나으리라. 그럼에도 문학작품 속에는 윤리교과서가 갖고 있지 않은 찐한 인간미가 있고 전개되는 인물들에 대한 인격적 관심이 쏟아지고, 닮아가고 싶은 마음의 끌림이 있기에 나는 이러한 접근도 큰 유익이 되리라 생각한다.
감명깊은 구절
"산은 아스팔트의 이름으로 죽어 그대로 거대한 무덤이 되고, 강물은 댐의 이름으로 썩어 수장이 되고, 갯벌은 매립의 이름으로 죽어 뭇 생명들의 거대한 공동묘지가 됩니다. 도대체 이 땅에 누가 있어 상극과 공멸의 광풍을 잠재우고 상생과 생명 평화의 장을 만들겠습니까.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경>의 진리는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며 '너는 나의 뿌리이며, 나 또한 너의 뿌리'인 <화엄경>의 연기론은 또 지금 바로 여기가 아닌 그 어느 곳에 있어야 하겠습니까." '발로 참회를 시작하며' 중에서.(195)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넘고 이젠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가 신체장애이든, 인간 관계 장애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많은 장이든 (정부 요직에 오르기 위해 많은 돈을 이리저리 감추거나 먹은 돈을 안 먹었다고 오리발 내밀어야 하는 것도 분명 장애이다) - 아무리 권력 있고 부를 누리는 사람이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 왜 유독 신체장애에만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228)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냐구요?
방법을 꼽아 볼게요.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만큼, 넓이만큼, 그 높이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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