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터의 눈물
키토아야 지음, 한성례 옮김
이덴슬리벨, 2006
중학생때 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병에 걸린 키토아야는 퇴행성 근육 수축으로 인해 나날이 반경이 좁아지는 자신을 흐느끼며 일기를 써간다.
행동반경이 좁아진 탓인지 자신이 무슨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래도 뭔가 해보고싶다. 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나, 남들이친절을 베풀면 받으면서도 내 자신이 싫어서 견딜 수가 없다. (66)
이책은 키토아야가 재활의 목적으로 시작한 일기 글을 모아 그의 어머니가 펴낸 책으로 우리에겐 일본 드라마 <1리터의 눈물>로 더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됐다. 아무 정보 없이 책을 집었기에, 사실 소설일거라는 기대에, 이렇게 무겁고 슬픈 수필일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럼에도 쉽게 덮어버릴 수 없었던 것은, 병마와 함께 싸워나가는 이웃에 대한 마음의 연대를 위함이라고 다져먹었다. (사실, 글은 그렇게 재밌진 않다.)
처음 병원을 들려 돌아오던 날의 기억과 눈물은 다음과 같다.
엄마가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눈물이 쏟아졌다. "어떻게 해서든 낫게 할 거야. 나고야대학병원에서 안 된다고 하면 도쿄라도 미국이라도 어디라도 가서 아야의 병을 낫게 할 곳을 찾아내겠어" (40)
딸의 글을 정리하며 엄마는 이 글을 발견했겠지 싶다. 그래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꼭 낫는다고 믿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로서 어떻게 간호해 나가면 좋을지, 그 애와 함께 할 앞으로의 인생을 똑똑히 바라보면서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 되어 아이를 지탱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마음의 정리를 쉽게 할 수 없었다.(270)
엄마는 분명히 기둥이 되어줬다. 너무 기둥이 되어준 걸까? 4살 여동생은 급기야 언니를 부러워하며, 자신도 언니처럼 아프고 싶다고 고백한다. 듣는 언니나 동생의 처지가 둘다 안됐어서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아야는 가족들에게 아래와 같이 말한다.
엄마, 걱정만 끼쳐드리고 아무런 효도도 못해드려 죄송해요. 동생들아. 언니, 누나답게 대해주지 못하고 게다가 엄마까지 차지해버린 것을 용서해라." (193)
키토아야는 자신의 걸음걸이가 점점 오리걸음 걸이가 되는 것이 수치스러워했다. 놀리는 학생들도 있었고, 전염병 취급하는어른들도 있었다. 친구들과 체육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도 속상해 했다. 그런 속도 모르고 아야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나마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나았다. 평범한 고등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어 결국은 장애인 학교를 가게 되고, 끝내는 요양원으로 향한다.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지고, 발음이 부정확해 지다가 끝내는 소리까지 안나온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스스로에게 매일매일 낮선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좌절된 일상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살아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없어진다 해도 이 세상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랑, 그것에만 의지하고 살아 있는 자신이 얼마나 슬픈 존재인가. 엄마, 나 같은 추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어도 되는 걸까요? 내 안의 반짝거리는 것을 엄마라면 분명 발견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200)
자식의 이런 글을 발견한 부모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억장이 무너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결국 엄마는 딸아이의 일기장을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한다. 이 책을 바탕으로 드라마 <1리터의 눈물>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키토 아야를 알게된다. 생전 방구석 밖에 없었고, 존재의 의미를 밝혀내지 못했더랬다지만, 엄마는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어 줄 수 있음을 알게 해줬다. 결국 일기의 마지막 장은 엄마가 작성해야 했다. 임종을 지켜보며..
"아야, 엄마의 얼굴을 좀 봐. 엄마 손의 온기가 느껴져?" 증상으로 상태를 판단해보면 아무리 매달려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여러 번 고비를 넘기고 고난을 극복해왔지 않니, 이대로는 너무 잔혹해. 안쓰러워 견딜수가 없어. 너무 슬프잖니! 만약 이별이 가까워졌다면 아야, 우리 서로 인사해야 하잖아. 그런데 아야, 지금 엄마가 말하는 거 알고 있어? (248)
내겐 이미 루게릭 판정을 받고 수년째 지내고 있는 어렸을 적 친구가 있다. 서서히 진행된다고 하던데, 그 시간도 많이 흐른 것인지 이젠 집 밖 생활은 많이 못한다고 들었다. 그의 가족과 아내도 함께 힘겹겠지만, 본인 마음의 수축이 더욱 걱정되어 온다. 얼마전 생일을 맞았고, 나는 그것을 매년 거의 잊어본 적이 없다(누님의 결혼기념일과 동일). 그런데 어쩐 일인지 연락이나 안부를 스스로 해본 적이 없는 것이 참으로 미안한 일인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 심정을 이제야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친구가 맞는가 싶은 탄식이 나온다. 키토아야도 그렇고, 자신의 몸이 말을 점점 듣지 않는 이웃의 상실감은 더욱 커지기만 할 것인데.. 그런 배려와 감성이 내게 있기나 한 것인지, 공감능력결여자는 또 한 번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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