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작가,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에 대한 에세이다. 그만한 세대의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가졌음직한, 그러나 치매로 어머니를 잃게된 사연이 남다르게 차분히 담긴 기록물이다. 읽노라니 공감되고, 다른 문화지만 80년대 치고는 좀 세련됐달까, 그러나 지금 한국현실에서도 찾아봄직한 내용이라 잔잔한 감동과 공감을 불러온다.
딸이 바라본 엄마에 대한 미세하게 도드라지는 표현들이 자잘하게 드러나 있다.
그녀는 나를 통해 배움에 대한 열망을 추구했다. 저녁이면 식탁에서, 학교에 대한, 그리고 학교에서 교사들이 뭘 가르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켰다.
이 이야기는 시사점이 있다. 이 어머니는 자신의 학력이 짧음을 감수 하면서도 기꺼이 자녀가 학교에서 배워 온 것에 대해 식탁에서 앉혀 물어보는 지혜로운 엄마다. 우리는 어떤가. 부모라고 해서 기껏해야 다 아는척 하기나 하고, 자녀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입으로 되새김(복습)하도록 하는 행위를, 그 엄청난 기회를 막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본다. 자녀가 배움에서 얻어 온 것에 경탄해하며 자녀가 말하도록 해야한다. 가령 "엄마, 엄마, 이런 거 알았어?"하는 그런 새로움을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들이 수학을 잘하는 아이이길 바란다면, 그 새로움을 얻게 된 아들 보다 더 먼저, 경탄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켜야 하겠다. 사실 책속의 어머니는 무학이었다. 그래서 늘 자녀가 학교에서 배워 온 것에 호기심 가득한 어머니였다. 그래서 에르노는 엄마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라도 열정적으로 배움을 익혔는지 모른다.
부모는 작가(딸, 에르노)가 사춘기를 지나며 자유분방해 질까봐 잔뜩 긴장했다. 그시절 작가는 엄마가 어떻게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식료품점을 하며 가계를 이끌고 작가의 학비를 댔고, 장성하여 성공한 딸을 자랑스러워했고, 딸의 결혼과 두 자녀를 키우는 동안에도 먼 발치서 응원했다. 식료품점을 접고서는 얼마간 있다가 딸래미 집에 와서 일을 거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독립을 희망했고, 그러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회복 중에 알츠하이머가 왔다.
알츠하이머에 대한 그녀의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로 중증으로 변모해 가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은 두서 없이 밑 줄 친 내용인데, 연이어 읽어도 당시 치매로 인한 진전이 한 눈에 보일 만큼 선하다.
그것은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불린다. 의사들은 일종의 노망에 그런 이름을 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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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바느질거리, 다림질거리, 다듬을 채소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일을 시작하자마자 곧 짜증을 냈다. 끊임없이 안달복달하면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을 보겠다, 점심을 들겠다, 정원에 나가겠다, 하나의 욕구에 곧바로 다른 욕구가 뒤따랐고, 그 어느 욕구도 만족을 안겨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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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어머니는 사물들의 순서와 기능을 잊어버렸다. 테이블 위에 잔과 접시들을 어떻게 배열해야 하는지, 어떻게 방의 불을 꺼야 하는지를 더 이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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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넌 이제 부자다 이거지. 죄다 내다 버리는구나.」 그녀는 분노와 의심 말고는 다른 감정들을 느끼지 못했다.
치매 증세를 앓으시는 분들의 양상은 대게 비슷한가 보다. "죄다 갖다 버리는구나"하며 역성을 내는 것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장면이다.
어머니는 이름들을 잃어버렸다. 어머니는 사교적이고 예의바른 어투로 나를 <부인>이라고 불렀다. 손자들의 얼굴도 그녀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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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일이 처음 발생했을 때는 내가 학생들의 과제물을 고쳐 주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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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침이 되어도 더 이상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유제품들과 단 사탕이나 과자만을 먹었고 나머지는 토해 버렸다.
그녀는 딸로서 최선을 다했다. 이런 작품 활동을 통해 어머니의 일생을 잔잔하게 표현했지만, 많은 어머니들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특히 치매로 앓다가 돌아가신 부분에 대한 기록에서는 더더욱 많은 공감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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