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란은 예수를 실제로 상당히 우호적으로 묘사해 주며, 전체 6,226절 중 93절에서 예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슬람의 언어학적인 어원은 ‘평화’이고, 신학적인 의미는 ‘복종’이다. ‘이슬람’은 히브리어의 ‘살롬’과 같은 어근으로 ‘평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슬람 사상의 요체는 알라에게 절대복종함으로써 내면의 평화와 지상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5)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슬람은 평화와 거리가 먼 폭력적이고 호전적인 종교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슬람의 본질과 이슬람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충돌이라는 외피 사이를 잘못 이해하고 혼동한 결과이다. 또한 지난 50년간 이슬람에 가장 적대적인 미국과 유대 중심의 언론과 자료를 통해서만 이슬람과 이슬람 세계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극심한 지적 편중이 가져다주는 후유증이기도 하다.(6)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에서처럼 십자가 대속이나 중재자를 두지 않기 때문에 인간과 신의 직접 교통을 통한 현세의 삶과 내세의 구원을 강조한다. 즉, 신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선행을 쌓아가는 과정이 중요한 신앙생활이 된다. 하루 다섯 번의 예배(사라트), 라마단 한 달간의 단식(라마단), 자기 순수입의 2.5%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기(자카트) 그리고 평생에 한 번 재정과 건강이 허락할 때 ‘하느님의 집’이 있는 성지 메카를 순례하는 기본 의무(하즈)는 물론 꾸란과 하디스, 이슬람법으로 정해놓은 하느님의 길을 위해 자신과의 투쟁을 다지는 것이다.(7)
탈레반이 폭압적인 이슬람 독재를 하고 있을 때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메가와티 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종교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면, 어떻게 독실한 무슬림들인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여성을 국가 최고원수로 뽑을 수 있겠는가. 바로 이웃의 파키스탄에서도 베나지르 부토 여사가 두 번씩이나 선거를 통해 수상에 당선되었고, 방글라데시에서도 칼레다 지아 여사가 선거로 집권하면서 최근까지 수상을 역임했다. (11)
‘무력에 의한 이슬람 전파’에 대한 지시는 꾸란의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꾸란에는 “종교에는 어떠한 강요도 있을 수 없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13)
여아의 할례는 이슬람의 가르침에 근거한 계율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일부다처 사회에서 성행된 악습이 이슬람 이후 절충된 형태로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특히 수단과 이집트에서는 아직도 여아 할례가 매우 보편적인 데 반해, 메카와 메디나를 중심으로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북아프리카, 터키, 이란, 파키스탄 등지에서는 거의 소멸되어 가는 추세이다. 할례의 방식도 수단에서는 소음순과 클리토리스의 돌출 부분을 포함한 광범위한 부위를 제거하는 데 반해,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클리토리스의 일부(1mm~3mm)를 예리한 칼로 제거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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