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의 산업은 포디즘(Fordism)과 같은 새로운 테크닉에 의한 자동화로 생산과 효율의 극대화를 얻게 된다. 사람들을 대신하는 기계로 인해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은 가난해져 갔다. 이러한 현상은 상품이 넘쳐나는데 반해 팔리지 않는 만성적인 "공급과 수요"의 부조화 현상을 출현시켰다. 이름하여 세계사에 등장하는 "경제 대공황"이다. 역사책에서 보여지듯, 이러한 경제 대공황은 사회간접자본 즉, 댐공사나 도로, 항만 공사 등의 국책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해결됐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뉴딜정책이다.
하지만, 뉴딜정책은 실제로 아무런 구제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보고서는 전해온다. 미국이 대공황을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오직, 제2차 세계대전 때문이었다. 유럽으로 보내는 거대한 군수물자와 무기를 생산하면서 온 국민의 일자리가 한꺼번에 창출되었던 것이다. 경제는 다시 살아나고, 넘쳐나던 포드자동차는 실업에서 해방된 근로자들에게 적잖은 가격에 팔려나갔고, 미국은 이례 없는 자동차 왕국이 되어갔다. 하지만, 국민들은 국가가 군수물자를 주문하면서 가격통제에 실패하고, 회사들이 남긴 이익에 세금징수를 거의 하지 않은 것을 몰랐다. 공적부채의 부담이 고스란히 직접 및 간접세로 국민들의 어깨에 올려졌다.
그러는 사이, 국가가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빌린 곳은 바로 그들 자신 -사업가, 은행가, 보험회사, 그리고 그밖의 큰 투자가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미국의 재계는 저 유명한 전쟁채권을 사들여 생겨난 이익을 챙김으로써 다시 한번 전쟁에서 이득을 취한다. 국민들은 그들 눈앞의 풍요로움에, 자기들이 사먹는 식료품에 붙은 국가의 부채로 인한 세금이 붙어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전쟁 동안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부유층과 권력층은 이러한 사실을 줄곧 예리하게 의식해왔고, 밀려들어오는 재향군들로 인해 미국은 경제공황 이전보다 훨씬 더 극심한 실업공황과 경기침체를 맞을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여갔다.
그러던 미국은 이미 "군사적으로도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소련"을 미국정부의 최대 위협국으로 지목하고 나선다. 미국의 재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을 이용하여 다시 한 번 약진을 꾀한다. 바로 미국경제의 수레바퀴를 최고 속도로 굴리는 데 필요한 거대한 '국방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긴급히 새로운 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소련을 희생양으로.
모든 미국계 다국적기업 중 37%의 기업들, 그리고 모든 외국계 다국적기업 중 70% 이상의 기업들이 1991년 단 1달러도 세금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다국적기업들도 세금으로 자신들의 이익의 1% 미만의 돈을 사회에 환원시켰다. 냉전이 발생시킨 이익은 극단적으로 부유한 엘리트들에게 유리하게 '사유화'된 반면에, 그 비용은 모든 다른 미국인들에게 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가혹하게 '사회화'되어갔다.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낮아져왔던 것이다. 어떤 서방 국가에서도 부가 이보다 더 불균형하게 분배되어 있는 나라는 없었다.
1989-1990년. 풍요로운(?) 냉전은 지나가 버렸다. 냉전의 종식으로 미국인들은 지나친 국방비 수혈을 돌려 '평화 배당금'으로 국가가 나눠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 당시 '평화 배당금'은 미국의 부유한 엘리트들에겐 결코 이득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국가에 의한 사회복지의 공급은 기업가와 기업에게 이윤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국은 또다시 보잘 것 없는 "독재자 후세인"을 지목하여 전쟁의 명분과 국방비 지출의 정당화 발판을 마련한다. 조지 부시 1세는 이 걸프전을 일으킨 배역 책임자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해병대의 의기양양한 바그다드 입성계획은 도중에 폐기된다. 바로 미국이 계속해서 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권력을 유지하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무시무시한 존재로 부각시키면서 다른 곳에서 새로운 적과 새로운 위협을 찾아보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소말리아가 일시적으로 전망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적당한 때가 되자 미국은 발칸반도의 세르비아 지도자인 밀로세비치를 또다른 '제2의 히틀러'로 지목하였다. 그래서 90년대 상당기간 동안 구(舊) 유고연방의 갈등으로, 군사개입과 대규모의 폭격작전, 그리고 더 많은 신무기 구입에 필요한 구실을 미국이 제공하도록 했다.
조지 부시 1세 이후, 빌 클린턴은 기대에 못 미쳤고, 미국이라는 기업은 그의 원죄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이리하여 군국주의 강경파들로 구성된 한 팀이 백악관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이들은 체니, 럼스펠드, 라이스, 그리고 물론 걸프전에서 어떻게 전쟁이 수행되어야 되는지를 몸소 보여준 전직 대통령의 아들인 조지 부시와 같이 사실상 모두 예외없이 부유한 '기업미국'의 대변자들이었다.
부시 2세가 대통령으로 뛰어오른 뒤 한동안은 중국이 미국의 새로운 복수의 대상으로 선포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거인과의 갈등은 부시에겐 다소 위험해 보였나보다. 부시는, 군비지출 비용을 충분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고, 보다 덜 위험하면서 보다 더 확실한 새로운 위협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던 그에게 2001년 9·11 사태보다 더 편리한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방성과 사업을 벌이는 대기업을 위해 이 기회는 충분히 이용되었다. 부시는 한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테러리즘"이라고 하는, 누구도 실제로 상대해서 전쟁을 벌일 수 없고, 따라서 최종적인 승리도 결코 얻을 수 없는 모호한 개념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였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군비지출 증가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냉전종식이 가져온 "미국의 국방비 감소" 문제는 분명히 해결되었다.
두 명의 부시와 체니와 라이스같은 부시 패거리들과 긴밀히 연계된 미국의 석유 트러스트가 거대한 이라크의 유전(油田)들을 탐내고 있다는 점이 '이 특별한 전쟁'을 벌이는 중요한 한가지 이유이다.
부와 특권의 미국은 전쟁에 걸려있다. 감기처럼.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갈수록 강력한 전쟁이 아니고서는 그것은 더이상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즉, 바라는 이익을 낼 수가 없다. 이 전쟁에 대한 광적 집착이 사담 후세인의 머릿가죽이 탈레반의 터번과 함께 조지 부시의 트로피 진열장에 전시되면 멈출 것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또 다음의 적을 찾아 나서겠지.)
누가 나가서 이 전쟁을 치루는가? 모두 가급적이면 남미계나 흑인, 또는 평범한 미국인들이 적의 희생물이 되는 병사들이다. 이들은, 이미 걸프전에서 드러났듯이, 오발사고나 발암성 열화우라늄탄이나 국방성의 병기고에서 나온 보다 이국적인 무기들을 다루면서 생길 또다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반면 부자나 특권층의 자제들은 집에서 안전하게 지켜볼 뿐이다. 만약 이 세계에 평화가 개화한다면, 부시의 미국경제는 바로 대파국에 직면할 것이다.
처음 이 글을 접했을 때는 2005년이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이 가장 믿고 따르는 최우방국 미국에 대한 다른 면을 보여주는 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행보는 우리나라에 주둔한 그들의 태도나 치외법권적인 불평등 조약등을 보더라도 미국의 자국이기주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어떤 면에서 군사복합체 국가의 생계를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꼭 필요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미군과 매매춘의 관계는 필연적인 군사적 사회복지 였을 테니깐.
이 글은 미국의 음로론적 세계 패권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음모론으로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이 프레임으로 비추어 밝혀낸 미국 속에서,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적절한 시각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 글로 이해된 미국으로 오늘의 정세를 보면 어떤 결과를 알 수 있을까?
2009년, 오늘날 북한과 미국은 냉전 초긴장 상태이다. 미국은 PSI를 통해 북한의 반입/반출되는 모든 화물에 대한 검문이 가능하도록 회원국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얼마전 UN의 만장일치를 통해 그들은 북한을 경제적으로도 봉쇄한다고 선포했다. 이에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실시할 것이란 맞불을 놓았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충분히 전쟁도 불사할 것이다. 그 기간은 단기간이 아닌 미국의 최근 경제적 위기를 타파할 일단의 유익을 얻어낼 만큼의 기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충분한 기간 동안 무장을 유지면서, 한국과 북한의 질서와 국토가 초토화 되든 말든, 일단 미국의 경제적 위기가 해소될 만큼의 시기동안 미국은 충분히 전쟁을 유지할 듯 싶다.
물론 최대의 변수는 미국의 자본이다. 현재 한국에 유입된 미국의 자본이 얼마나 현금화되어 본국으로 송환될지에 대한 여부도 중요하다. 현재로선 한국에 진출한 미국의 여러 다국적 기업들에게 유익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얼마전 미국의 월마트가 철수했고, 프랑스의 까르푸가 철수했다. 하지만, 아직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상주해있다. 전쟁은 이들의 손실 감당분이 합당한 선에서 시작될 듯 싶다. 우울한 전망이다.
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의 유럽 정세는 대단했단다. 젊은이들이 전쟁을 추구했고, 세상이 망했으면 했다고 한다. 88만원 세대라는 책은 세대간의 갈등을 잘 보여준다. 즉, 기성세대가 20대의 사회 진출의 최대의 방해요인이 되어 버렸단다.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이 많을 수록, 사회가 전복되기를 바라기도 점점 많이 질 듯 하다. 이러저러한 여러 복합 요소들로 인해 오늘날 한반도는 전쟁의 뜨거운 감자 한 가운데 있다.
(이글은 녹색평론 통권 77호(녹색평론사,2004) <왜 미국은 전쟁을 필요로하는가> 라는 글을 읽고 쓴 요약 및 감상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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