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세력들은 세계화에 호의적인 반면, 진보세력들은 세계화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우리 나라와 같이 수출주도형 국가의 경우에는 세계화가 불가피한듯 보인다. 이게 현실이다. 물론 나는 세계화보다는 탈세계화가 더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세계화를 진행했던 개도국들은 대부분 강대국에게 충성스럽게 좋은 일만 한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참여정부는 보수와 진보 세력 간의 이념 대립 속에서 통합의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많은 고민 끝에 국외적으로는 "선진통상국가론"에 기초한 세계화를 추진하기로 하고, 국내적으로는 "사회투자국가론"에 기초한 양극화 해소에 주력하기로 정책의 방향을 설정한다. 이것은 국외적으로는 보수를 껴안고, 국내적으로는 진보를 껴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보수는 사회투자국가론을 빌미로 좌파적 망국론이라고 청와대를 공격하였고, 진보 또한 양극화를 심화시켜 서민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정부를 비난하였다. 이런 형국이니 참여정부는 그 어떤 세부 정책을 내어놓아도 이들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담긴 언론의 왜곡 보도로 인해, 국민의 지지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속사정인들 어찌 알 수 있었으랴? 이 책을 읽고서야, 그동안 가슴 앓이를 했을 참여정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유시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는 전략의 목표는 진보적이지만, 방법은 보수적·자유주의적입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정부 지지도가 낮은 탓인지, 좌우 모두에서 이런 정책 기조를 비판합니다. 보수파는 진보적 목표만을 보면서 좌측통행한다고 비난합니다. 보수파는 보수적 방법만을 보면서 좌측통행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속이 터진 노무현 대통령이 '썰렁개그'를 하나 했지요.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좌파신자유주의다." 그들 말이 둘 다, 또는 한쪽은 옳지 않다는 걸 꼬집은 반어법적 조크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심각한 얼굴로 이 조크에서 애써 '깊은 의미'를 찾아내 '정체성 혼란'이라고 또 공격합니다. 진짜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기분입니다."
(118)
그동안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를 통해 참여정부의 정책을 바라봐야 했던 필자를 포함한 모든 서민들은 보수 언론이 현 정부에 대해 "잃어버린 10년"(국민/참여정부)이라고 야유를 퍼부어도 왜 그런 것인지 의아해만 할 뿐, 한 번도 '정말 그런가'하고 의문을 좇아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청와대 홈페이지가 마치 우리에게서 물리적으로 멀어져 보였기 때문이라는 구차한 국민의 변을 달을 수도 있겠지만, 주류 언론이 언로를 막은 탓이 더 크다 할 것이다. 그래서 유시민은 국민에게 호소한다.
"국민들도 신문·방송·뉴스 제목만 보시지 말고 '국정 브리핑'에 올라 있는 정책 관련 기사를 함께 참고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기를 앙망합니다."
(191) 여기서 대부분 언론의 일정 패턴을 살펴 보자.
"정부가 어떤 새로운 정책을 발표할 때는 제일 먼저 완벽한 재원대책이 있는지를 따져서, 없으면 '장밋빛 약속' 또는 '선심 정책'이라고 비판합니다. 정책에 따라서는 국민의 공감대부터 형성해야 재원대책이 서는 것도 있는 법이고, 건강투자전략도 그런 것인데, 재원대책이 없다고 언론이 처음부터 눌러버리면 여론이 나빠져서 재원대책을 세우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190) 재원대책까지 완벽하게 세워서 발표한 경우에도 쉽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들어보자.
"어딘가 세부적인 허점이 있거나 누군가가 세게 반대하는 사태가 생기면,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밀실행정' 또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합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밀고가면 '독선적 행동' 또는 '귀막은 정부'라고 지적하죠."
(190) 여기서 더 압권은 반대에 부딪혀, 수정하게 되면 '압력에 굴복하는 무소신 행정'이라고 결정타를 날리 것이 요즘 참여정부를 향한 언론의 행태이다. 이정도 되면, 어느 국민이라도 참여정부에 대해서든 언론에 대해서든 정치 혐오증이란 것이 생기게 마련이고, 심지어 더 알고 싶이지도 않은 마음에 눈길 조차 주지 않는다. 국민이 외면한 청와대의 외롭고 긴 싸움은 그렇게 이어져 왔던 것이다. 하지만, 본서를 통해 접하는 여러 정책의 입안과 취지를 깨달아 갈 때면, 그런 정부에 격려해 주지 못했던 자신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까지도 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수 언론이 지적하는 대로, 결코 "잃어버린 10년"이 아닌, "되찾은 10년"이란 것을 알 수 있으리라.
필자는 그동안 의료급여제도니, 약제비 적정화니, 공적원조니 하는 사회적 이슈에 무지했다. 국민이 무지하기를 애써 바라마지 않는 보수 기득권들에게 칭찬들을 일이 무에 있겠는가? 적극적으로 국정 브리핑에 귀기울이고 우리의 권리를 마음껏 주장할 수 있는 이 시대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우리가 바로 왕일진대 말이다(유시민은 국민이 왕인 나라라고 말한다). 필자와 같이 그간 정부의 정책에 의아함이 들었던 분들에게는 의문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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