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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정치·사회

[북리뷰] 대중문화의 겉과 속

by 체리그루브 2007.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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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중문화의 시대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대중문화는 대체적으로 국민의 '정치로부터의 도피'를 부추기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40)

 

2. 청소년과 대중문화

 

부모들은 자주 집을 비워 상품 정보도 아이들이 더 밝으며, 아이들의 직접 구매도 늘어나고 있다. ... 틴에이저(teenager)라는 말도 소비 사회가 본격적으로 정착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 말이다.(46)

 

미국의 학자 다니엘 벨은 60년대의 미국에서 연령구조의 변화로 인한 젊은 층의 증가는 그들 사이의 경쟁을 치열하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 기존 사회 체제에 저항하는 운동이 싹트게 되었다고 말한다.(54)

 

캐나다의 학자 마샬 맥루한은 아프리카에 처음 영화가 소개되었을 때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영화를 즐길 수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59)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인간들을 움직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논리적 사상체계가 아니라 단지 일련의 이미지와 암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라는 말 대신에 '이마골로기'(imagology)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데, 이 표현을 TV 세대의 이데올기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64)


3. 스타와 대중문화

 

극의 내용과 연출의 장점으로 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기엔 어려운 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극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홍보를 해야 하는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해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스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81)

 

청소년의 지나친 스타 숭배를 포함한 모든 연예인이 실제로 어떤 직업인가에 대해 정확히 알면 쉽게 치유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최근 들어 연예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연예인이라고 하는 직업의 실체를 모든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88)

 

94.8%의 연예인들이 퇴직금이나 국민연금 등 노후를 위한 대책이 없는 연예인이란 직업의 특성상 노후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으며, 65.1%의 연예인들이 불규칙적인 수입 때문에 저축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89)

 

4. TV를 움직이는 것들

 

TV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지나칠 정도로 스타를 숭배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110)

 

이 토론회(문화적 민주주의에 관한 대토론)의 참석자들은 대체적으로 문화적 민주주의가 대단히 교묘한 기만이라는 데에 동의하였다. 그들은 시청률이 기존의 프로그램들 가운데에서의 선택을 나타내는 것일 뿐 시청자의 의사를 반영할 수는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또 TV라고 하는 매체 자체에 대한 소비성향으로 인해 수동화된 시청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하길 싫어한다는 걸 강조했다. 또 시청률 조사는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 불호'(like, dislike)를 뭍는 것이지, 수용자들의 기준에 따라 '유익, 유해'(good, bad)를 묻는 건 아니라는 걸 문제삼았다.(115)광고는 청춘예찬을 통해 성인들로 하여금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주입시킨 후, 젊은 이들이 즐겨 쓰는 상품을 똑같이 소비하면 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암시한다.(121)

 

5. TV의 힘

 

오락적인 속성을 지닌 TV는 그 속성을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상업방송의 운영 방식으로 인해 선거를 오락화한다. 즉, 선거를 시각적 소비의 대상인 '구경거리'로 전락시켜 그저 즐기기만 하는 대중문화의 일부로 만든다는 것이다.(143)

 

보수적인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은 TV를 비롯한 언론은 "국가권력의 가장 현저한 새로운 원천"이 되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민주주의적 불안'을 파급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144)

 

이에 반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학자들은 텔레비전이 지배 권력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데에 모든 문제가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즉, 언론의 자유가 무한대로 허용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언론의 자유가 권력과 자본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145)

 

"여성은 대중매체에 의해 그들 자신을 부족하다고 생각하도록 주의 깊게 훈련되고 있다."(147)

 

과거 '여성스러움'을 강요했던 조건은 무엇보다도 여성의 정보로부터의 고립이었다. 바깥 세상은 남자들만의 것이었고, 여자는 외부 세계에 대한 무식과 공포 속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여성적 특성은 사회와 절연된 가운데 철저히 가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 (하지만 이제는 TV를 통해 세상을 본다. 이것은 축복이다.) ...
그러나 그런 원론적인 가능성이 가져다주는 '축복'보다는 텔레비전이 기존의 남녀 불평등 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쪽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재앙'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곧 분명하게 되었다. 텔레비전은 하루도 빠짐없이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열심히 가르쳐준다.(148)

 

텔레비전은 사회적 남녀 불평등 구조를 바로 잡기 위한 당위의 차원에서 남녀 관계를 묘사하기보다는 기존의 잘못된 남녀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거니와 흥미성을 높이기 위해 과장과 왜곡을 더하여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150)

 

그런 구도 속에서 여성은 소비행위를 통해 자존심과 삶의 의미를 찾는 '소비동물'이 되게끔 유혹을 받고 있다.(151)

 

방송사의 입장에선 중계권료가 문제가 되긴 하지만 스포츠 중계에는 결코 시청자들을 질리게 하지 않으며 소재 고갈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는 장점이 있어서 스포츠 중계를 계속 선호할 것이 분명하다.(157)

 

미디어가 인간이 이용하는 도구의 차원을 넘어 인간을 아예 온통 흡수해 버리는 '소우주'로 군림하는 경향이 대두된 것이다. '자아 매몰'의 대표적인 미디어로는 '워크맨'과 비디오(VCR)을 들수 있다. 이 미디어들은 기존의 매스 미디어가 충족시켜 줄 수 없는 '자기 혼자만의 세계'라고 하는 환상을 수용자에게 듬뿍 안겨 준다.(164-165)

 

현대 도시인에게 자신만의 특수한 세계를 갖고 싶어하는 '자아 매몰'의 성향이 있거니와 범죄를 우려한 부모들의 배려로 자아 매몰이 부추겨지고 있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걸 발전시키고 확산시키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은 전자통신산업이다.(168)

 

과거 공중파방송의 경우엔 모든 채널들이 일정 시간에 뉴스를 내보냄으로써 시청자들의 선택에 다소의 제약을 부과하였다. 그러나 케이블 TV는 그런 제약을 해체시킴으로써 시청자들간의 정보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171)

 

케이블 TV가 점유하게 될 대중의 시간, 그것도 파편화된 관심사를 갖고 있는 대중의 사간이라고 하는 '기회비용을'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여론'과 '국론(國論)'의 성격과 가치에 새로운 의문을 제기할 것이 분명하다.(174)

 

6. 광고와 대중문화

 

광고대행사들에게 경제적 윤리뿐만 아니라 문화적 책임까지 묻는 발상의 전환이 없고선 대중문화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광고는 곧 대중문화의 환경을 조성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186-187)

 

7. 활자매체와 대중문화

 

'심각한 저널리즘'이란 이념지향성의 좌우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의 공공 이슈들에 대해 진진한 관심을 쏟는 저널리즘을 의미한다. 벨은 그런 저널리즘이 위기에 처하게 된 이유를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일반적 공중의 소멸이다. ... 게다가 지식인들마저도 폭넓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전문 영역을 더욱 깊게 파고 들어가 동료들의 인정을 받아 직업적 안정을 꾀하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선 '심각한 저널리즘'이 설 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뉴스와 이슈의 다원성이다. ...
셋째, 다른 매체들로부터의 경쟁이다. TV, Cable TV, VCR, CD-ROM등의 매체들은 활자매체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고 있다. (204)
센세이셔널리즘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건 신문을 보다 많은 독자에게 팔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시도하는 형식과 내용상의 기교, 노력, 과장 등을 의미한다.(212)

 

언론은 사실상 대중문화의 일부이다. 언론을 대중문화로 보지 않는 시각은 언론에 지나친 신뢰를 부여하는 잘못을 범하게 만든다.(213)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사이에 입시용 논리학 서적과 입시용 문학 서적이 폭발적 인기를 얻은 것도 대학입시가 출판 시장을 왜곡시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입시지옥'으로 인한 국민의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은 결국 출판 시장 자체를 위협하는 주범이다. 자식 과외비 대기 바쁜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서점에 들러 책을 사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요컨대, '입시지옥'이 존재하는 그 자체로 우리의 출판문화는 왜곡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이 우리 독자들로 하여금 베스트 셀러에 집착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226)

 

유통되는 책은 10만 종이 넘는데, 서점당 평균 책 진열 능력은 1만 권이 채 되지 못한다.(230)

 

8. 테크놀로지와 대중문화

 

텔레비전은 전 세계 구석 구석까지 즉각적으로 그러한 '터치'를 가능하게 만들어 인간 생활의 '재부족화'(retribalization)를 낳는 데에 가장 중요한 매체라는 것이다. 맥루한은 텔레비전에 의해 재부족화된 세계를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고 했다. 물론 다른 관점에 보자면 지구촌은 다국적 기업의 이익에 봉사하는 전자 식민지를 체제를 의미할 뿐이다.(241)

 

그(맥루한)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시각의 연장인 책과 같은 인쇄물은 개인주의와 전문화를 부추겼다. '구어(oral) 문화'에서는 남과의 접촉을 통해서 지식을 얻지만, 책은 홀로 심사숙고하고 골몰할 것을 요구한다. 책은 고립된 상황에서 생각하는 걸 가능하게 함으로써 개인적 계시를 촉진했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티즘이 가능하게 되었다.(244)

 

"E-메일을 통해 교제한 사람들은 급속하게 형성된 친밀감의 대가로 '만나면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는' 후회를 떠안게 됐다"(255)그(백남준)는 "21세기는 전자 문명의 시대가 될 것이며 이 고독한 세기에서 사람들은 행복해서가 아니라 고독하기 때문에 일종의 치료제로서 TV를 볼 것"이라고 말한다.(264)

 

9. 지구촌 시대의 대중문화

 

어떤 산업이든 그 성장은 시장 규모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지만 거의 동일한 제조 원가로 거의 무한대의 재생산이 가능한 대중문화 상품의 경우에 시장 규모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273)

 

미국은 이민의 국가이다. 대중문화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통합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적극 장려되었으며, 역으로 이민 사회는 미국 대중문화가 인종과 언어를 초월해 먹혀 들어갈 수 있는 일종의 '시장성 테스트'의 기회를 제공했다.(274)

 

넒은 의미에서 보자면 미국의 스타는 곧 미국 대중문화 상품의 '캐릭터'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도 미국의 스타는 우리 나라의 스타와 다르다.(288)

 

10. 소비 사회의 대중

 

화면의 변화가 잦으면 어린이들이 매 장면을 피상적으로 보게 되거니와 자기도 모르게 화면에 정신이 팔려 텔레비전의 메시지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어린이들은 소극적이고 고립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텔레비전 중독증에 빠져들어 사물에 대한 깊은 사고를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317)

 

지난 94년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거짓말 연구가인 사회학자 페터 슈티그니츠는 한 가지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여성의 경우 66%가 나이를 속여 말하고 73%가 성적 욕구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으며 80%가 체중을 속여 말한다는 것이다. 여성에겐 체중을 속이는 것이 나아가 성적 욕구를 속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흥미롭다.(333)

 

11. 대중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여의도에 수십만의 인파가 운집해서 몸을 부딛혀 가며 정치 연설이나 종교적 설교를 듣다고 해서 그게 공동체 문화가 되는 게 아니다. ... 맹목적인 편의를 숭배하는 소비 문화에 이미 길들여진 우리 모두가 공동체 문화에 반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없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 문화의 형성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갈등에 대해 무조건 공동체를 앞세우는 것만이 공동체 문화는 결코 아니다 그런 갈등을 공동 참여를 전제로 한 열려진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에서 해소할 수 있을 때에 바로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369-370)

 

대중문화를 사회적 '비용'으로 간주하는 한 대중문화의 바람직한 발전은 영원히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 대중문화의 소비는 그 자체로선 바람직하지 않을망정 눈감아 주자는 식의 발상으로 대중문화를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모든 매체에서 흘러넘쳐 대중의 일상적 삶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대중문화를 그런 식으로 보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결국 사람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하므로 대중문화 교육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376)

 

대중문화를 온갖 사회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는 희생양으로 삼지 말자. 그건 구조의 문제를 은폐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오히려 대중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살려 어떻게 사회를 개선시킬 것인가에 보다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379)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독자적으로 떠들어대는 교육 개혁은 불가능하다. 그 어떤 교육 개혁도 청소년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잠재울 수는 없다. 대중문화를 교육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교육적인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학부모를 포함한 교육 담당자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절실히 요청된다 아니할 수 없다.(392-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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