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전신인 히브리인들의 야훼주의신앙은 이집트의 신화적 정통주의에 대한 개혁에 그 출발점을 둔다. 당시의 정통주의는 "왕은 언제나 왕이며, 노예는 언제나 노예"라는 사상이었다. 이들 정통주의자들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도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는 사상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를 빠져나와 가나안에 지파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들의 법 제정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빚으로 노예가 되어 되팔려가지 못하도록 하는 토지법을 제정했다. 즉, 모든 토지는 50년이 지나면 다시 그 원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법이었다. 점차로 그 법의 발전은 남자에서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도록 수정되었다.
그러나 한 세기가 흐르면서 외부 침략자들에 의해 이들 지파 공동체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들은 왕을 필요로 했고, 왕을 위시한 체계적인 통치체계와 방위력를 갖고자 했다. 히브리성서에 나타난 이들의 선택은 하나님을 덜 미더워한 듯이 보인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왕을 허락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예언자를 세워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였다. 왕정에 대한 견제로서 예언자들의 역할은 힘없고 나약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를 대변했다. 체제 유지를 위한 왕정이라는 '형식'과 체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개혁'에는 왕과 예언자의 대립각이 형성되었다.
예언자들의 이상은 '정의와 평화의 왕이 출현하는 것'이었다. 예언자들은 왕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의 길에 설 때 마다 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했다. 이것은 예언자들의 실용지향적 태도를 보여준다. 이후 실용지향적 태도는 비전지향적 태도로 바뀌게 되는데 왕국이 멸망하는 시점을 기해서다. 왕국은 멸망하고, 성전파괴로 혼란에 휩싸인 민족에게 배교와 타협과 절충주의적 신앙의 모습들이 출현했다. 그 중에서 사독계열의 사제들이 페르시아의 신임을 얻어 이방재정으로 성전을 건축하고, 성직자 중심의 정권으로 교체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들과 구별된 사람들로 묵시문학을 꽃피운 '환상가' 집단이 있었다. 이들에게 있어 당시의 정권은 이스라엘의 사명을 거역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비주류 집단에 속했기 때문에 이전의 예언자들처럼 대변할 수가 없었다. 현실 도피적인 이들의 삶과 노래는 비전지향적이었을 뿐이다.
이상적 왕에 대한 야훼주의자들의 열망은 구체적 삶에서 거부당하자 먼 미래로 투사되었고, 메시야에 대한 이미지 또한 변해갔다. 자기 백성을 위한 현란한 정복자로서의 메시야는 요시아 왕 때에 비로소 이루어 진 듯 했으나, 이집트와 전쟁에서 그가 전사하자, 메시야의 희망은 수정되었다. B.C.587년 바벨론에 점령당한 이후 제2의 이사야에 의해 발전된 메시야 사상은 '고난의 종'으로 변형되었다. 수세기 후에야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메시야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예수의 탄생과 그의 메시야적 삶은 히브리성서를 통해 오랫동안 예비되어 왔다. 왕과 예언자의 갈등이 그의 삶과 사명에서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성서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이미지와 메시야 사상은 시대를 따라 변했고, 하나님의 역사 속 개입은 매우 세속적이라 할 만큼 간섭적이었다. 이러한 특성을 성서의 역동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활동하시는 하나님임을 일컫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성서 속의 하나님을 신화화시켜 성서 안에 가두고,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를 버리고 단일화된 전통적 상징체계들로 이해하게끔 만들어 놓았다. 하나님을 빛으로, 아버지로(가부장적), 백인 예수로, 그리고 미국을 후원하는 하나님으로 인식케 한 것이다. 마치 국제관계의 우월성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가난한 자들의 하나님의 이미지는 밀려났다. "우리가 성서를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편협한 자기 이해를 넘어선 목적들로 부르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이해한다면, 성서의 상징들은 오늘날 공동체들 안에서 창조와 구원을 위한 힘을 다시금 발휘할 수 있다."(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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