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본 <나의 해방일지>에 대한 느낌을 기록하려 한다. 드라마의 절반이 ASMR이 아니었나 싶다. 잔잔한 일상 관찰기 처럼 보였다. 내성적인 우리네 이웃들이 갖는 저마다의 사연이 대사를 뚫고 나왔다. 생생했다. 그러고 보니 가벼운 이웃, 무시해도 되는 사람은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사람에 대한 깊은 존중이 뭍어나는 드라마였다.
비정규직 디자이너의 완생이 되지 못한 설움과 오랜 대중교통 이용에 따른 고단함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식사 장면이 그렇게 많이 나왔다. 먹방 ASMR인 줄 알았다. <한국인의 밥상> 코너인 줄. 시시콜콜한 이야기 속에 엄격한 아버지와 자식들의 무뚝뚝한 대화가 오갔다. 저마다의 집마다 있을 법한 풍경이었다. 그 소박한 식사가 그리웠을 현대인의 헛헛함이 밥상머리를 추억하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그런 한적한 가정에 한 남자가 들어온다. 말수도 없다. 그저 묵묵히 일만한다. 일머리가 재법 있어, 아빠도 마음에 들어한다. 그렇게 한참을 같이 지내며 그가 구씨라는 것을 안다. 이름도 모른다. 어디서 뭘하다 여기까지 왔는지 묻는 것은 드라마 내 정서상 금물인 듯 하다.
그러나 서서히 베일이 벗겨지고 그가 잘나가던 2인자였다는 것과 느낌이 약간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과 겹쳐 보인다는 점이 다소 아쉬움을 주긴하지만, 이런 판타지라도 없으면 너무 밋밋해서 돌아버릴 것 같던 참이었다.
서로 무심한 듯 한데,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싶고, 마음에 온정의 불씨가 피어나게 하는 것 같은 그런 드라마가 되었다.
미정: “왜 맨날 술 마셔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내가 만난 놈들은 다 개XX.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일 거예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날 추앙해요.”(2화)
결론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냐는 것인데, 염가네 가족, 구씨 등 각자의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는 것에서 해방에 도달한다고 봐야 할 듯 하다. 구씨는 선배를 용서하는 것으로, 미정은 전 남친을 용서하는 것으로써 말이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오늘을 살지 않기로 해방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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