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예술이란 사람들을 사상 정서적으로 교양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다. 북한에서는 사실상 비극 형식의 연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비극이 창조될 사회 제도의 모순, 비극적 현실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정말 다들 그렇게 동의할까?). 정극만이 존재할 뿐이며, 낡은 연극이 아닌 혁명연극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북한 극단과 연출가, 배우 등은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해 연극을 창작하고 공연할 수 없으며 국가의 이념 통제를 수락할 때에만 허용된다.
피바다식 혁명 가극
북한의 5대 혁명가극은 「피바다(1971)」와 「당의 참된 딸(1971)」 「밀림아 이야기 하라(1971)」 「꽃 파는 처녀(1972)」 「금강산의 노래(1973)」이다.
설한풍 스산한 원한의 피바다야
참혹한 주검이 묻노니 얼마냐
혁명에 피 흘린 자 그 얼마에 달하였나
죽은 자 가족의 비참한 그 모습과
기막힌 원통에 가슴이 터진다
사무친 이 원한을 천만 추에 못 잊으리
낙심을 말아라 전 세계 무산자야
혁명자 하나의 죽음의 피 값에
십육억 칠천만의 무신정권 수립된다
이 '피바다가'는 ‘일제 침략 때문에 고향을 버리고 죽어간 인민들이 가진 원한의 피바다를 잊지 말고 무신정권을 수립하자.’는 결의를 다진다. 현 북한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겠다.
「당의 참된 딸」은 1950년 8월경 낙동강 전투지구를 무대로 한 북한 간호사의 삶을 그리고 있다. 「밀림아 이야기하라」는 항일 혁명 무장투쟁 시기 김일성의 비밀 지령으로 일제 통치구역에 파견된 한 유격대원의 임무수행과정을 그리고 있다. 「꽃 파는 처녀」는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과 소작인으로 지주에게 당하는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농민혁명 봉기의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금강산의 노래」는 일본강점기 때 고향을 버리고 가족과도 헤어진 한 가장이 20년이 지난 뒤 가족들과 재회하여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성황당식 혁명연극
성황당(城隍堂)은 원래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을 모신 신당으로 서낭당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민간신앙을 의미하는 미신 타파를 극의 모티브로 삼았다. 이 작품에서 겉으로 드러난 사건진행은 미신 타파지만 그 이면의 근원적 사건진행은 계급갈등이다. 성황당을 파괴함으로 지배, 피지배 계급간의 갈등을 종식시킨다는 축제적 분위로 마감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민족가극의 재발견
민족가극의 첫 대본 「춘향전」은 성춘향과 이몽룡 두 남녀의 사랑을 피지배 계급과 지배 계급 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파노라마(Panorama)한 작품이다. 한동안 소홀하다 싶었는데, 1990년대 소련의 몰락이후 북한사회의 통제이데올로기로서 조선민족제일주의가 대두되고, 혁명가극에서 민족가극의 재조명 받는다. 이는 천리마 시기의 민족가극과 주체시기의 「피바다」식 혁명가극의 전통 및 양식을 그대로 계승한 것인데 그 실천적인 첫 작품이 1988년 「춘향전」이며 「박씨부인전(1993)」 「심청전(1994)」 등이 뒤를 이어 창작되었다.
경희극
경희극에서 희극적 주인공이 웃음을 자아내는 이유는 자기의 사고와 행동이 시대에 뒤떨어짐에도 그것이 정당하고 진보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청중을 교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산울림」은 어느 한 산간마을 협동농장에서 알곡 100만을 증산하라는 당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새 땅을 개간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런 극들은 자력갱생, 주체화, 기계화, 현대화, 과학화 등의 경제선동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같은 유형의 작품이다.
「하나로 잇닿은 마음」은 관민일치사상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작품이다. 텍스트는 광복거리 건설장을 배경으로 건설자들에게 60톤이나 되는 대형 트라스를 시급히 조립해야 하는 과업을, 홍선희 부부가 밤에 아무도 모르게 극적으로 해결한 뒤로, 광복거리 건설에 이바지한 숨은 영웅을 찾으려는 관의 태도와 그것을 숨기려 영웅들 간의 갈등 같지 않은 갈등을 다룬다. 이런 의미에서 텍스트는 숨은 영웅 찾기에 관련된 이야기이고, 숨은 영웅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모두 있는듯 없는듯 이 영웅처럼 열심을 잘 하라는 것.
영화
북한의 영화는 당의 지침에 따라 주제별로 작품을 창작하는데, 혁명전통과 한국전쟁, 사회주의건설, 조국통일이 각각 30%, 30%, 20%, 20%의 비율로 창작한다. 영화의 보급은 관객의 대중교양 사업을 수단화 한 것으로, 영화실효투쟁이라 한다. ‘영화실효투쟁’이란 대중들이 영화 학습을 통해 배운 지식과 사상을 자기 사업 및 생활과 결부하여 분석·총화한 후 그것을 통해 교훈을 찾게 하는 데 있다.
「아리랑」은 일제의 식민지적 억압과 지주계급의 경제적 폭력에 의해 전문대학을 중퇴하고 미쳐버린 주인공 최영진이 자기 가정을 수탈하는 지주계급의 일당을 살해하고 민요 아리랑을 부르면서 경찰에 잡혀간다는 내용이다.
다부작 영화는 2부 이상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창작의 핵심은 단순히 이야기의 연속적 결합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인물의 성장 과정과 생활의 발전을 폭넓게 보여주는 것이다. 10부작 영화 「조선의 별」은 노동계급의 수령형상문학 예술발전에서 위대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가족영화는 「우리 집 문제」로 시작하여 그 속편 영화들 「우리 누이 집 문제」 「우리 옆집 문제」 「우리 윗집 문제」 「우리 아랫집 문제」 「우리 사돈집 문제」 「우리 처가 문제」 「우리 큰 집 문제」 「우리 작은 집 문제」 「우리는 모두 한 가정」으로 1982년까지 총 10부작 시리즈로 제작된다. 북한에서 사회변화는 1953년 종전을 기준으로 사회주의건설시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는데, 이 갈등은 사회주의건설을 경험한 세대와 경험하지 못한 세대 간의 갈등을 양산했다. 이런 영화들의 해결방식은 신세대가 구세대가 겪었던 현실적인 삶의 경험을 수락하는 것으로 마쳐진다. 참 쉽고 훈훈하다.
영화에서도 구소련 몰락에 이은 조선민족제일주의를 대두시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민족과 운명」은 북한의 유명인사들(항일혁명투사, 노동계급, 농민계급 등 북한사회의 지배세력)을 조명함으로써 북한의 우월성과 남한, 미국, 일본 등 자본주의 사회의 열등성을 대비해 보여준다.
인민 대중 가요 「내 나라 제일로 좋아(1991)」이런 '조선민족제일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가사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이국의 들가에 피어난 꽃도 내 나라 꽃 보다 곱지 못했소
돌아보면 세상은 넓고 넓어도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랄라랄라 랄라라 랄라랄라라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벗들이 부어준 한 모금 물도 내 고향 샘처럼 달지 못했소
돌아보면 세상은 넓고 넓어도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랄라랄라 랄라라 랄라랄라라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중략)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식들이 홀로된 아버지와 역시 홀로된 여인과의 재혼을 이루게 한다는 것으로 가족영화 가운데 (우리에게 매우 흔한) 재혼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도시처녀 시집와요」는 고향을 사회주의 문화농촌으로 변화시키려는 농촌 청년과 이에 감동하여 일생을 같이할 것을 다짐하고 농촌에 뿌리내리는 도시처녀 간의 사랑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이러한 가족영화는 북한사회의 사회문제, 즉 도시와 농촌 간의 생활격차, 세대갈등, 직업의식의 변화, 신분구조의 변동과 이에 대한 인민들의 소외의식 등을 형상화한 사회문제 영화로 확산한다.
이 책을 보면서 깨달은 점은, 북한이 왜 그토록 내부로부터의 분열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인지를 알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의 영화와 연극은 받아들이는 수용자가 생각할 수 있는 폭을 극히 제한하는 일종의 체제순응 교화 목적 수단으로 활용된다. 북한은 전 세계의 OTT가 쏟아내는 자유분방한 삶의 형태들을 묵살하고 있으며, 높은 수위의 형벌로 제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탈북하신 분들 얘기를 듣자면, 우리 영화나 드라마를 소비했다잖는가? 겉으로는 체제 순응을 표현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북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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