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지금까지 기독교의 가장 적대적인 종교로 이슬람교를 지목할까? 기독교와는 도저히 한 하늘 아래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릇된 이미지로 인식하는 건 왜 일까? 우리가 세계사를 통해 배운 이슬람은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이슬람의 호전성과 종교의 강압적 포교의 이미지로 각인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과 이슬람 세력이 확산될까 두려워서 만들어낸 용어에 불과하다.
이슬람(Islam)의 어원은 ‘평화’이고, 신학적인 의미는 ‘복종’이다. 기독교에서의 '샬롬'과 같다. 이슬람이 지금까지 서구에서 테러집단 처럼 굳혀진 데에는 지난 50년간 미국과 유대 중심의 언론과 영화 등을 통해서만 이슬람과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도록 만든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 할 것이다.
이슬람교는 무함마드를 아담, 아브라함, 모세, 예수에 이은 마지막 예언자로 보며, 유일신인 알라(하느님)에게 절대복종하고 우상숭배를 금지할 것을 강조한다. 역사를 통해 다양한 예언자들이 새로운 계시를 가지고 나왔으며, 마침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완전한 마지막 계시가 무함마드를 통해서 내려졌다고 믿는 것이다. 마치 기독교에서 '신유와 기적의 시대는 사도행전 때까지만'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에서처럼 십자가 대속(代贖)이나 중재자를 두지 않기 때문에 인간과 신의 직접 교통을 통한 현세의 삶과 내세의 구원을 강조한다. 신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선행을 쌓아가는 과정이 중요한 신앙생활이다. 현세에서의 모든 선행은 천사에 의해 낱낱이 기록되어 최후의 심판일, 즉 하느님 앞에 불려갔을 때 판단의 자료가 된다. 선과 악의 경중에 따라 심판을 받은 후 선을 행한 자는 천국에 들어감으로써 구원을 받고, 악을 행한 자는 지옥에 떨어짐으로써 영원한 응징을 당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기본적인 구원관이다.
그런데 왜 오늘날 아랍과 유대, 두 민족이 화합할 수 없는 적대관계로 변모하고,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교와 유대교가 상호 배타적으로 이단시하게 되었을까? 이는 결론적으로 제1차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세계대전 중에 영국은 독일에 대항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 식민치하의 아랍인들을 끌어 들였다. 영국과 함께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워주는 대가로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지역에 독립을 보장해 준 것이다.
그러면서 1917년 영국의 은행재벌 로드 차일드 공(公)과 비밀리에 회동, 소위 ‘발포오 선언’이라는 비밀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서 영국은 유대인의 전쟁참여 대가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국가 창설을 약속해 주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1916년 5월 16일, 정확하게 아랍과 유대인과 맺은 두 비밀조약의 중간에 또 다른 비밀조약을 체결했다. 영국 대표 사이크스와 프랑스 대표 피코 사이에 비밀리에 체결된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골자는 전후 중동지역의 분할에 관한 것이었다. 상호 모순적인 3개의 비밀조약과 강대국의 비도덕적인 정치음모가 바로 오늘날 중동분쟁의 불씨를 가져온 본질적인 핵심이다.
영국에 배반당한 것을 안 아랍인들은 끈질긴 국가독립 운동과 격렬한 반영(反英)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그리고 두 민족 간의 대결양상은 점차 복수전의 성격을 띠면서 처절한 피의 악순환을 되풀이하였다.
영국 당국은 민족분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방관자적 입장을 취했다. 유엔으로부터 국가창설을 인정받은 유대인들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으로 구체적인 건국 작업에 착수했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총회장.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운명이 결정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날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리하여 아랍과 유대, 두 개의 독립 국가로 분할하자는 안이 통과됐다. 미국의 집요한 제3세계 회유 작전으로 결국 연방안 대신 분할안이 통과되었다.
아랍인의 1/3, 전체 면적의 7%만을 소유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전역의 56%를 분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경작 가능한 대부분의 금싸라기 땅은 유대인 차지가 되어 있었다. 아랍인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과 좌절을 맛보았다. 지난 2천 년간 조상의 피와 땀이 맺힌 불모의 땅을 겨우 경작지로 바꾸어 놓았는데 말이다.
아랍인들 사이에 반미 정서가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1947년 그날, 아랍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유엔 표결의 현장에 영국은 없었다. 이 표결에서 영국은 기권을 택했다.
아랍인의 저항이 거세지자, 유명한 유대 테러조직이 맹활약하면서 치욕적인 데일 야신촌 학살사건을 일으켰다. 1948년 4월 9일, 예루살렘 서쪽의 조그만 마을인 데일 야신촌을 야밤에 습격하여 254명의 주민을 잔인하게 무차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자 불과 1달여 만에 100만 명에 가까운 아랍인들이 서둘러 인근 국가로 도피해 감으로써 소위 팔레스타인 난민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로부터 한 달쯤 지난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아랍인을 몰아낸 곳에서 위대한 이스라엘 국가를 세웠다.
세계는 2천 년의 유랑생활을 마무리하고, 역경을 딛고 일어선 유대인들의 승리에 동정과 축하의 눈길을 보냈다. 유대인 박해와 나치학살로 이어지는 유대인 말살정책은 유럽인들의 죄과인데, 꼭 그 보상을 아랍인들이 짊어져야 한 것일까?
유엔은 안보리 결의를 통해 점령지의 즉각적인 반환을 촉구했지만, 그 결의안은 지금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미국이 거부권 행사를 남발하면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비호해 왔기 때문이다. 1973년에는 석유무기화 조치로 석유파동을 유발했던 4차 중동전, 1980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사건, 최근의 걸프전쟁과 팔레스타인에서의 비무장 봉기인 인티파다에 이르기까지 빼앗긴 보금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아랍인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50년간 조국 되찾기에 헌신했던 많은 강경세력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걸프전 후 미국 주도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현실로 인정하고, 중동분쟁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평화회담을 수용했다. 현실정치를 받아들인 대다수 온건 아랍인들이 선택한 길은 옳았다. 그 길은 전쟁에 지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양보이고, 생존게임이었다. 그것이 바로 1993년의 오슬로 평화협정이며, 땅과 평화의 교환이었다
그러나 평화협정 이행과정에서 일부 팔레스타인 반대세력들의 테러가 일어나자, 이스라엘 강경 정권은 자국안보를 이유로 평화협정 자체를 무력화시켜 버렸다. 군대를 동원한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로 팔레스타인의 마지막 꿈을 무산시켜 버렸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부시 정권은 미사일과 팬텀기를 동원한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을 지원하거나 수수방관했다.
미국은 겉으로는 세계 평화와 인권을 내세우면서 일방적 가치를 강요한다. 이중 잣대로 이슬람 세계를 유린하는 미국에게 아랍의 강경파들은 더 이상의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다가 9.11이 터졌다. 올 게 오고 만 것이다. 리비아, 이란 같은 반미국가는 물론 지하드, 하마스, 헤즈볼라 같은 과격 이슬람 단체들도 한결같이 미국에 대한 이번 테러를 비난했다. 미국이 더 강경하게 나오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미국은 이를 계기로 하여 적대관계에 있는 인근 아랍국가들의 자위 개념의 핵 시설은 물론 사소한 화학무기 프로젝트까지 철저히 파괴했다. 미국이 말하는 평화는 이중적일 수 밖에 없었고, 아랍인들은 좌절하고 분노했다.
서구는 틈만 나면, 자유와 정의라는 무기로 이슬람권을 위협하지만, 과연 정의와 자유가 생존보다 더 중요한 인류의 보편가치가 될 수 있을까?
예전에도 이 책을 읽었었다. 이 블로그에 관련 글을 남기는 게 두 번째인 셈이다. 물론 이 책에는 이슬람의 가부장적인 모습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부분은 독서단상을 통해 별도로 다룰 생각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최우방 미국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느낌은 비슷했다. 국제관계는 '정의를 찾아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던 것 같다. 제나라 잇속만 따지며, 깡패처럼 굴림하는 그런 건 예나지금이나 여전하다 싶다. 사과하지 않는 서구에 대한 이슬람의 응어리는, 일본과 우리의 관점에서만 봐도 깊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READING > 역사·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리뷰] 애니메이션의 장르와 역사 (살림지식총서 019) (4) | 2022.12.03 |
---|---|
[북리뷰] 살롱문화 (살림지식총서 017) (10) | 2022.12.01 |
[북리뷰] 연극과 영화를 통해 본 북한 사회 (살림지식총서 408) (8) | 2022.11.19 |
[북리뷰] 관상, 인간 이해의 첫걸음 (살림지식총서 483) (14) | 2022.11.17 |
[북리뷰] 한국현대사 산책 전집 (4) | 2022.11.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