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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소설·만화

[북리뷰] 환영

by 체리그루브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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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고시원 생활을 했던 때부터 일까? 왜 윤영은 자기 처지의 사람을 만나야만 했던 걸까? 좀더 자기치장을 해서라도 자기를 구해줄 사람을 만나볼 수는 없었던 걸까?

살면서 내 뜻대로 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이뤄진 것은 남편과 살게 된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뿐이었다. 고작 쓸모없는 남자와 사는 게 내가 바란 것이었다니.


서윤영은 만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남편의 뒷바라지와 피붙이를 위해 몸을 팔아 일한다. 처음이야 어려웠지, 뭐든지 익숙해지지 못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남편의 책장은 넘어갈 줄 몰랐다.

남편에게 걸었던 희망이 사라진 것보다, 그런 남편을 믿었던 내가 더 측은했다. 부질없는 희망은 빨리 버려야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소리친다. 자기도 자신이 왜 그렇게 화를 조절 못하는 지 알지 못한다.

"이제부터 정말 공부하겠다는 말도 하지 마. 얼굴색 하나 안 바꾸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 보면 정 떨어져! 나랑 헤어지는 거 싫으면, 내일부터 당장 나가. 할 거 없으면 구걸이라도 해. 그렇게라도 벌어. 십 원 한 장이라도 벌어. 가장으로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해. 지금 당장 저 껍데기만 남은 책들 갖다 버리고……"


그렇게 남편은 책을 버리고 일을했다. 남편의 김치공장 알선을 위해 또다시 직업소개소 소장에 몸을 바쳤다. 그러나 3일째 되는 날, 남편은 공장에서 사고를 당한다. 몸에 철심을 박았다.

돈도 없는 주제에 아프기까지 하다니. 그게 가장의 도리니? 아버지를 몰아세우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도 간암에 걸린 아버지를 똑같이 취급했었다. 인생이 어쩌면이렇게 똑같은지.. 탈출구가 없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언제나 수중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윤영은 다시 몸을 팔러 왕백숙집으로 나가야했다. 이렇게 희망없이 글은 마무리된다.

김이설 작가의 작품엔 "불편함이 만들어내는 몰입"이라는 말이 붙는다. 아마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그런게 아닐까 싶다. 이 소설도 그런 결 중의 하나다. 판타지는 없었다. 등장하는 왕사장, 경찰, 선생님, 왕사장 아들(태민) 모두 윤영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윤영은 그 속에서 길을 찾는다.

윤영은 방 한칸 늘려 가는데, 안간힘을 쓰지만 상황은 소설 막바지에 이르도록 나아지지 않고 도리어 악화될 뿐이다. 윤영에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치적 선택의 공간은 있는 것일까? 투표는 할까? 그건 너무 먼 세상의 일이다. 정치성을 떠나서 사장, 경찰, 선생님은 모두 돈있는 숫컷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야만사회다. 들어올 돈보다 나갈 돈이 더 많다.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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