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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독서 단상

테오도어 아도르노

by 체리그루브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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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는 1903년 9월 11일에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포도주를 취급하는 부유한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성악가였다. 그는 직업적 가수였던 어머니와 피아니스트였던 이모로부터 어릴 적부터 음악적 소양을 물려 받아서 유년기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친척으로부터 15세의 어린 나이에서부터 칸트철학과 같은 독일 고전철학을 접한 뒤로 철학에 빠져들었고, 결국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후설의 현상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기서 이후 평생 동안 학문의 동료가 되는 호르크하이머를 만난다. 아도르노는 한때 작곡가를 꿈꿔 오스트리아로 넘어가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자, 다시 다시 프랑크푸르트에 돌아와서 호르크하이머를 통하여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의 사회조사연구소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는 키에르케고르에 관한 논문으로 동 대학의 교수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교수가 된 해에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게 됨에 따라 유대인인 아도르노는 유대인 탄압을 피해서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의 옥스퍼드 머튼 칼리지에 박사과정 학생으로 등록하여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1938년 호르크하이머의 초청으로 미국 뉴욕에 건너가 그곳으로 옮긴 사회조사연구소의 활동을 계속해 나가면서 파시즘과 자본주의의 연관성에 관련한 연구와 비판을 진행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메카시즘이 유행하고 있었고, 자본주의에 관해서 조금의 비판도 용납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반하는 철학을 주장한 아도르노는 미국 내에서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었다.

1941년에 그는 유산을 물려받아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저술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권위주의적 성격』(The authoritarian personality, 1947)과 호르크하이머와의 공저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arung, 1947)을 발표하여 학계에 주목을 받았고, 나치가 패망한 후 1949년 독일로 귀환하여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사회조사연구소를 재건하였다. 또한 마침내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활약하면서 비판 이론을 발전시키고 『부정의 변증법』을 저술하였으며, 사회, 문화, 과학 연구의 인간 소외 및 물상화 등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철학을 펼쳤다. 

후기에는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학을 이용하여 독일 사회의 파시즘적 경향의 원인을 분석하는 한편, 칼 포퍼와 논쟁, 그리고 실존주의 비판 등을 전개하였다. 말년에는 대학가를 뒤덮은 68 혁명의 물결 속에서 학생들에게 비판을 당하기도 했으며 그로 인해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그는 기분전환을 위해서 스위스로 가서 등산을 했으나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이상을 느껴 병원에 입원했으나 결국 1969년 8월 6일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계몽의 변증법

계몽이란, 신화와 무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밝힌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성'은 사고의 방향을 고정시켜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과학적', '수학적'인 사고방식만을 통해 이성이 합리적인 도구로 사용될수록, 우리의 '기분'이나 세계의 '분위기' 등의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은 '이성적'이지 않은 것으로 제외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이성'은 '합리성에서 벗어난 다른 생각'들을 막음으로써, 계몽의 체계에서 '동일한 생각'을 교육받게 한다.

즉, 계몽은 동일한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며, 동일한 생각의 사회는 '비판'의 능력이 사라져 버린 사회이다. 비판이 사라진 사회란, 나치와 같은 파시즘의 사회와 다를 바 없다. 나치가 합리성을 주장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계몽'은 또다른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신화'를 분석해보면, 그것은 계몽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주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계몽과 신화는 변증법의 형태로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것에 불과하며, 이것의 배후에는 '이성'의 힘을 과신하는 우리의 '사고체계'가 있음을 밝혀낸 것이 《계몽의 변증법》이 된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68혁명의 학생들이 '이성적'으로 비판하고 행동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보기에 학생들은 '비이성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에따라 학생들은 행동의 정당성을 '비판이론가'에게 찾지 않고, '비이성'을 통해 '이성 그 자체'를 비판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에게 그 정당성을 찾게 된다. 이런 작업이 70~80년도에 이뤄지면서 푸코, 데리다, 들뢰즈 같은 철학자들이 주류로 떠오르게 된다.

부정변증법

스피노자가 "(개념의) 규정은 부정이다"라고 주장했듯이 사유체계가 형성되면 그 사유체계 밖의 부정성이 형성된다. 헤겔은 여기서부터 부정을 다시 부정하여 '부정하면서 (원래 개념의 일부를) 보존하여 새로운 개념으로 고양시킨다'(지양)는, 독창적인 변증법 체계를 만들어 내었다. 아도르노는 여기서 시작한다. 헤겔은 이중부정을 통해서 하나로 동일화시키기 때문에 '전체성'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부정은 하되 하나의 개념으로까지는 동일화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도르노가 주장하는 '부정 변증법'이다.

우선 아도르노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대상의 수많은 면을 하나의 개념으로 표현하려는 헤겔식 '이성' 개념을 비판한다. '개념 아닌 것'(고정되지 않는 운동성)을 '개념'(고정)화 하려고 하는데서, 대상의 여러가지면을 동일화하여 하나의 모습으로만 보여주게 되는 '동일화의 폭력'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원래 시간에 따라 '대상'은 무수히 많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를 개념화할 때는 오직 하나의 모습만을 고정하여 나머지는 그 하나에 다 맞추어버리게 된다. 마치 개인은 제각각 다른 모습을 지니지만 국가가 질서라는 명목으로 하나의 기준을 요구할 때 나타나는 폭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념'은 어떻게 '폭력'을 저지르지 않고서, '대상의 변화하는 모습'(개념 아닌 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은 '개념으로 대상을 표현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반성)'를 통해 가능하다고 아도르노는 말한다. 즉, 주체의 수많은 '반성'은 '개념의 운동'을 만들어내며 이러한 '개념의 운동'을 통해, '대상의 변화하는 모습'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예를 들면, A가 맞을까? B가 맞을까? C가 맞을까? D가 맞을까? .... 등등 '개념'의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 하나의 '고정'된 개념은, 수많은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통한 '운동'으로 바뀌게 되며, 우리는 이 '개념의 운동'을 가지고 '대상의 변화하는 수많은 면'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이러한 '개념의 운동'을 두고, 더이상 하나의 '고정'된 개념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의 우리는 이런 시도들을 하지 못하고, '기존 동일화된 개념의 사고체계'에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어떤 '계기'를 통해 '충격'을 받고 '현기증'을 느끼게 될 때에야, 우리는 '반성'적 사고를 통해 변화하는 대상의 다른 면을 파악하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반성으로 동작하는 '개념의 운동'과 '변화하는 대상'의 순간적인 일치가 '섬광'처럼 스쳐지나가고,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깨달음('짜임; 성좌')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잠깐 동안의 '섬광'에도 불구하고 대상이란 '무한'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완전한 이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유토피아')이다. 즉, '완전한 이해'를 한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또다른 '동일성'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상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이상향(수만가지로 변화하는 대상)에 끊임없이 다가가지 않으면 그 대상은 반대로 '개념'에 의해 '동일화'되게 되므로, 우리는 '거리두기'와 '다가감'의 끊임없는 변증법을 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정 변증법'이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 전체에서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접근(이해)을, 아도르노는 '미메시스'라고 부른다. 즉, 부정변증법의 다른 말이 '미메시스'인 것.

따라서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개념과 개념 아닌 것은, 헤겔의 이론에서처럼 변증법적인 전복 운동을 통해서 모순이 해소되버리는 것(개념의 동일화)이 아니라, 변증법을 통한 수많은 부정(반성)의 시도로 긴장 관계가 끊임없이 유지(개념의 운동)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부정)을 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만하는 '타율성'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들이 각자 스스로의 생각을 지니며 비판할 수 있는 '자율성'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부정변증법의 사고체계'로 생각해보자고 아도르노는 권장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객체(대상)는 '나'라는 주체(개념화하려는 의식)에 종속되지 않고, 반대로 '타자'의 주체(개념화하려는 의식)에 '나'라는 객체(대상) 역시 종속되지 않아, 각각의 개개인이 '사물화'되는 것을 피하고, 이를 통해 나치로 대표되는 '전체성'을 경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주도적으로 전개한 비판 이론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통해 학계의 주류로 우뚝섰고, 이는 현재 철학적 비판 담론의 모태가 되었다. 그렇기에 현대 대륙철학을 이해하려면 『부정의 변증법』을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 책을 이해하려면 우선 철학계에서 최고 난이도로 손꼽히는 헤겔을 먼저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책의 난이도는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아도르노 조차 다른 철학자에게 '너는 헤겔을 잘못 이해했다' 면서 비판받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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