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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ING/드라마

[드라마리뷰] 바람과 구름과 비

by 체리그루브 2022.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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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에서 2020년 5월에 21부작으로 방영한 드라마다. 이병주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흥선대원군(이하응)이 호령하던 조선 말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미 1989년에도 KBS에서 제작했던 작품으로 봉련역에는 김청이 열연했었다. 이번에 봉련역을 맡은 고성희는 청순하고 아련한 모습을 더해줘서 극의 몰입감을 한껏 올려줬다. TVING을 통해 정주행을 했고, 조선 후기 전경을 다룬 내용을 이렇게 깊이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로는 수작이지 않을까 싶다. (다른 추천 작품이 있다면 추천해 주시길)


내용은 조선의 신묘한 역술가가 나타나 다음 왕위를 점치고 장동김씨(실제는 안동김씨)를 몰아낸다는 이야기다. 그 이후로 유약한 고종을 앞세워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고, 백성은 또다시 도탄에 빠져 이를 다시 바로잡는다는 후반부 이야기. 그러나 역시 흥선대원군 암살이 실패하자 연해주로 달아나 조선인 마을을 만드는 것으로 끝난다. 뭔가 끝을 좋게 내어보려 해도 조선 후기가 쇄국정책(鎖國政策)으로 문호개방에 실패한 꼴이니 결말은 뻔한 것. 그러나 주인공 일행은 헬조선을 떠나 자기들만의 자치령을 만든다.

중반까지 나오는 철종은, 얼마나 외척세력에 눌려 지내왔고 세도가들의 정치가 얼마만큼 선을 넘은 것이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철종 뒤에서 장동김문이 겁박주는 모습이 한 예였다. 실제로 그랬을까? 세삼 궁금해진다. 불세출의 영웅 점바치, 최천중이 특유의 기지와 예언 능력을 발휘해 극을 몰아간 것은 더 암울했던 역사에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겠거니 하지만 사실상 당시의 민중은 더 고통스러운 나날이 아니었었겠니 싶다.

이 드라마를 보며 느낀점을 정리하자면, 첫째로는 조선의 세도정치다. 특정 가문이 법 위에 서서 쥐락펴락 하는 모습을 보니, 왜 태종(이방원)이 그토록 외가들을 경계했는 지 알법도 하다. <임꺽정>에서도 명종에게 수렴청정을 한 문정왕후의 오라비 윤원형 집앞에 각종 청탁을 하기 위한 사람과 수레로 문정성시를 이뤘다는 대목이 나온다.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도 마찮가지다. 뭐든 청탁으로 가능한, 돈있는 자들이 법 위에서 놀 수 있는 판은 그제나 이제나 마찮가지인 건가 싶어 씁쓸할 뿐이다.

둘째로는 흥선대원군의 정치다. 세도정치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념으로 속절없이 긴 나날을 참고 기다려왔던 것일텐데, 아들을 왕위에 앉히고 나니, 자기세상을 만들어 버린 셈이다. 드라마에서도 나오지만, 그의 심경을 거스리기만 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으리만큼 무지막지한 자였던 게다. 극의 주인공 최천중과는 마치 하늘 위에  두 개의 해가 없는 것처럼 철저히 짚밟으려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런 모습에서 작가가 그리려던 대원군의 성정은 '자격지심'에 기반 것이 아닐까 한다. 자격지심을 가진 정치가는 위험하다.

셋째는 점성가의 위상이다. 워낙 혹세무민하던 때라, 점성가의 예언이 한편의 언론과 같은 역할을 하며 백성들 사이에 떠돌지 않았겠나 싶다. 예전에 한 '소리학' 박사라는 사람이 온갖 자문방송을 해대서, 우리는 그것이 진실일 꺼라 믿었었다. 그의 의견은 실로 법정에서도 많이 채택된 바가 있었는데, 그가 사이비라는 게 들통나고 난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알려진바가 없다. 이번 정부들어 점성가의 목소리가 정치적 결정에까지 미칠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대다수의 국민정서에 녹여있다. 그럼에도 아직 높으신 분들은 여전히 점성술과 종교에 참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으니 이 또한 인간의 나약함을 탓해야 하는 것일가? 며칠 전 이태원 참사가 났더랬는데, 이 중대한 참사를 점성가 그 누구도 예언하지 못했던 것을 두고 보면, 참 믿을 것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넷째는 시대상을 반영한 역병 장면이 나온다. 왠지 코로나를 의식한 장면 같아, 후일에 두고 보면 웃을일이 되겠지만, 새삼스럽게 곱씹자면 코로나 위기가 한창 고조됐었던 20년 여름의 방송이다 보니, 극중 최천중의 의견은 역병이 찬기운에서 발의 되어 곧 봄이오면, 수그러들 거라고 안심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드라마를 보면 계절 영향을 받겠지 싶어 위로 받을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 실상은 몇년째 이어나가 아직도 확진자 만 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게 현실. 현실은 그렇게 드라마틱 하지 않다.

다섯째는 민자영과 대원군의 대립 에피소드 부분이다. 대원군은 민자영의 오라비를 형벌로 다스리라 다짐하며, 오라비 앞에서 민자영을 심하게 꾸짓는다. 민자영은 수치심을 되깊기 위해 마음 속에 칼을 간다. 복령에게 자신을 도와 달라 얘기하며, 흥선대원군에 대한 복수의 칼을 장착하는데, 이게 결말을 못보고 극이 끝난다. 드라마를 황급히 정리한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쨌든 역사로 알다시피 명성왕후와 흥선 대원군은 서로 견제가 있어왔다. 그것을 마치 최천중이 운명적으로 그렇게 기획했다는 게 이 드라마의 설명이다.


여러 역사적 정황이들이 주인공 최천중의 손길에 가닿지 않은 구석이 없는, 역사 판타지물 임에도 당시의 시대상이나 서민들의 고통, 정치 알력, 그리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뒤섞여 놔서 재밌게 본 것 같다. 결론은, "빌런은 냅둬라, 알아서 죽게!" 다. 채인규가 사이코패스 빌런으로 등장하지만, 천중은 그를 죽이지 않는다. 그의 죽음을 내다봤던 것일까?

이 드라마가 시사하는 바는, 강력한 예지력을 갖고 있고, 세상을 뒤바꿔야 한다지마는, 살생은 안된다는 것. 누군가를 죽이면서까지 밟고 올라서는 것을 극도로 피하는 주인공의 태도를 보게된다. 그것이 악이 연장되고, 끊임없이 공격을 허용하는 실마리가 되지만, 항상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뿐, 살생으로 전진하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그걸 답답해 하는 우리는 모두 조금의 죄의식을 갖고, 한없이 성인군자 같은 최천중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표어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라고 해야할까보다.


이 드라마의 여주는 은은히 빛을 냈다. 그동안 코믹한 연기에서 자주 봐왔던 터라, 이토록 진지한 사극에서 볼 줄은 몰랐다. 여주의 재발견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이참에 고성희가 나왔던 <롤러코스터>를 봐야할 것 같다.

쉬바르년이라면 욕 아니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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