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은 참으로 난 사람이다. 그가 천재적 감독임을 영화로써 증명했다. 비록 자막없이 보기가 상당히 불편함이 있어 배우들의 딕션에 살짝 아쉬움이 있었을 지언정, 극의 미장센과 은유는 화려했다. 깊게 곱씹어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머릿 속에서 깨달아져 나올 것만 같다.
우선 기억을 더듦어 1차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해준은 나름 업력이 뛰어난 베태랑 형사다. 직업적 자부심이 뛰어나고 매사에 준비성이 철저하다. 그런 그가 한 용의자를 만나고, 그녀를 남편 살해의 가해자로 의심하지만,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다고 여긴 지점부터는 그감정에 연민을 담는다. 그러다 결정적인 단서를 만난 이후에는 그 찾아낸 증거를 내어주면서 그녀, 서래에게 갖다 버리라고, 자신은 이것으로 직업적 자부심이 '붕괴'되었노라고 고백한다. 그가 헤어질 결심을 하기로 한 자리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보살펴준 남자에 대한 사랑이 피어난 것일까?
13개월 후 서래는 유명 증권 애널리스트를 만나 해준이 새롭게 활동하는 이포(그녀가 좋아하는 바닷가 근처)로 이사온다. 그리고 이들은 남편 살해 현장에서 또다시 만나게 된다. 확실히 이번엔 남편을 그녀가 죽인 것은 아니라지만, 애널리스트의 투자권유를 받고 상당한 금액의 손실을 입은 조폭 두목의 살해 동기애 그녀가 충분히 관해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마지막 부분이 살짝 미지의 영역이긴 한데, 어쨌든 이제 서래는 그에게 들었던 반듯하고 꼿꼿한 자세로 죽기를 희망한다. 이제 그녀가 그를 놓아주기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왜 갑자기 해준의 와이프가 난데없이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 것인지 그또한 생뚱맞게 떠오른다. 아마도 오랜 주말부부로 지내온 동안 다른 연정이 피어났더랬는데, 그러다가 이번 살인이 계기가 되어 서래와 해준을 의심하고는 결정적으로 헤어질 결심을 한 게 아닐까 싶은데,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런 것 치고는 직장동료가 너무 해맑게 인사한다. 그럼에도 내 스스로 의심이 가시지 않는 것은 용봉당 재료인 자라를 그녀가 들고 나간다는 것이다. 누굴 주려고 ...
이 영화는 <헤어질 결심>이라는 독특한 주제가 곳곳에서 생생하게 다가 오게 만드는 멜로, 서스펜스물이다. 감독이 기괴하고, 강렬하게 표한 부분들 중에서 유독 서래의 거실 벽지가 눈에 띄었다. 산이 아닌 바다를 좋아하고, 바다 파도를 닮은, 평소 그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는, 일식집에서나 어울릴 법한 그런 벽지였다. 수많은 메타포를 생명력 있게 만들어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 감독의 자부심을 보여줬다. 이런 게 영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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