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떤 대화의 자리에서 아내가 예전에 읽은 <아직도 가야할 길>에 대한 인상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소시적 내가 그 책을 읽다가 지하철에서 값비싼 장비를 두고 내리는 바람에 엄청나게 고생하게 했던 그 책 말이다. 나도 몇번을 읽으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던 그 책에서 아내는 그보다 더 유의미한 인생의 물음표를 해결했다고 하니, 다시 슬쩍 당시의 문구들을 상기하고 싶었다.

훈육은 괴로움을 감당하게 하며 문제로 인한 고통을 건설적으로 겪게 한다. 그렇다면 훈육이라는 이 도구는 과연 무엇인까? 훈육에는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에 대한 헌신, 균형 잡기 이렇게 4가지가 있다.(23)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은 삶이 주는 고통와 즐거움을 맛보는 순서를 정한다는 것이며 이렇게 먼저 고통을 맞고 겪고 극복함으로써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것이 품위 있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25)
왜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능력을 갖춘 대다수의 사람들에 비해 상당수는 종종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이러한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절대적이고 과학적인 대답은 알려져 있지 않다. 유전적인 요소가 작용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과학적인 증거를 얻기 위해 변수를 충분히 통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증거를 종합해보면 부모의 양육 방식이 결정적인 요인임을 거의 확실하다.(27)
진정으로 사랑빋는 아이들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무시당했다 주장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차린다. 이러한 인식은 황금보다도 가치가 있다. 자신이 소중히 여겨진다는 것. 다시 말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느낀다면, 스스로 소중하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며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그것은 부모가 주는 사라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이러한 믿음은 어린 시절에 획득해야만 하낟. 성인이 돼서 그것을 얻기란 참으로 어렵다. 역으로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은 어른이 되어 시련을 겪더라도 그러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32)
사실 버림받지 않은 아이들도 부모에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은 받지 못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어떤 부모는 가능한 쉽고 빠르게 훈육하고 싶어서 노골적으로 은근하게든 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부모가 아이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거야. 그게 무얼 말하는지 알겠지?”
물론 그것은 버림받음이고 죽음이다. 이러한 부모는 아이를 조정하고 지배할 필요 때문에 사랑을 희생하나. 그 대가로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아이들은 심리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버림받은 채, 세상은 안전하고 보호 받을 수 있는 장소라는 뿌리 깊은 의식없이 성인에 이른다. 그들은 반대로 세상을 위험하고 무서운 것으로 인식하고 미래에 더 큰 즐거움이나 안전을 보장받는다 해도 현재의 어떤 즐거움이나 안전을 포기하려 하지 않느다. 그들에게 미래는 참으로 미심쩍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즐거운을 나중으로 미루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아이들은 스스로 훈육할 줄 아는 모델과 자기 존중감이 있어야 하고 존재의 안전함을 신뢰해야 한다. 이러한 ‘자산들’은 부모의 자기 절제와 순수하고 일관된 보살핌을 통해서 획득된다. 이것이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물려 줄 수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부모에게서 이러한 선물을 받지 못할 경우 다른 곳에서 획득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 그 획득 과정은 힘든 투쟁이 된다. 때에 따라서는 평생 걸릴 수도 있고 그나마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34)
문제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부딪혀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영원히 장애가 된다.(41)
군대 사령관인 한 장군이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군대나 어떤 조직에 있어서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부분의 지휘관들이 부대에 앉아서 문제를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거기에 앉아 있으면 문제들이 사라질 것처럼, 문제를 똑바로 바라만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장군은 정신적으로 나약하거나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훈련이 잘돼 있꼬 능력을 인정받은 장군과 대령들을 지칭했던 것이다. 부모도 지휘관과 같다. 대체로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임무는 어느 모로 보나 회사나 기업을 지휘하는 것만큼 복잡할 수 있다. 군대의 지휘관처럼 대부분의 보모는 간혹 어떤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때에도 러기 전에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아이들의 문제난 아이와의 관계에 존재하는 문제를 알고 있기만 한다. 5년이나 끌어온 문제를 갖고 소아정신과 의사에게 와서 부모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가 자라면 문제가 저절로 없어질 줄 알았어요.”
부모노릇이 복잡한 일임을 감안할 때 부모로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란 힘들다. 또한 사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문제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성장을 돕고 더 가까이에서 문제점을 살펴본다고 해서 다치는 부모는 없다. 아이들이 자라서 문제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많은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더 오랫동안 아이들의 문제를 무시해버리면 그것은 더 커지고 더 해결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워진다.(42)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마치 바보처럼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거나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 처럼 들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기 전, 먼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 문제 해결을 해주기를 바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많은, 아주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문제로 인한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이 문제는 다른 사람 때문에, 아니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 때문에 생겼어. 그러니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내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해. 이건 정말로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개인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항상 슬프면서도 때로 우스꽝스러울 지경이다.(44)
‘신경증 환자들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성격 장애를 가진 부모가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은 바로 그들의 아이들이다. 다른 상황에서도 그렇듯이 그들은 부모노릇 하는 데에도 적절한 책임을 지지 못한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관심을 주기보다는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아이들을 밀쳐낸다. 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비행을 저지르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성격 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곧바로 학교 시스템을 탓하거나 다른 아이들을 탓하면서 그 아이들이 자기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당연히 문제를 무시한다. 책임을 회피해버림으로써 성격 장애 부모들은 자기 아이에게 은연중에 무책임한 태도를 가르치게 된다. 결국 삶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함으로써 그 책임을 아이들에게 부과하는 경우도 생긴다.(52)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부모노릇 할 때만 비효율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이러한 성격적 특징은 결혼생활, 친구관계, 업무적인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못한다. 이것은 피해갈 수 없는 결과다. 이미 말했듯이 개인이 책임을 졌을 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격 장애자들이 문제의 원인을 제 3자인 남편, 아이, 친구, 부모, 사장에게, 외부 상황인 나쁜 영향, 학교, 정부, 인종차별, 남녀차별, 사회, 제도 탓으로 돌리는 한 문제는 지속될 것이고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책임을 내던져버리고 그들 자신은 편안할지 모르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영적 성장이 멈추고 사회에 쓸모없는 짐이 돼버린다. 60년대의 한 유행어는 모든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말이다.
“당신이 해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신은 문제의 일부가 되고 말 것이다.”(53)
이러한 고통은 내가 선택한 일의 결과였다. 그러한 고통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나는 자유롭게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고 내 시간을 다르게 사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일에 열심인 것은 무정한 운명 때문이라거나 무정한 과장이 지워준 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고 내가 정한 우선순위였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자 나는 내 삶의 스타일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태 태도가 바뀌자 동료들에 대한 분노는 사라졌다. 원하면 그들처럼 지낼 수 있는 완벽한 선택의 자유가 있는데, 그들이 나와 다른 스타일을 선택했다고 그들에게 화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화내는 것은 그들과 다르게 지내고자 한 내 선택에 화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나는 내 선택에 만족하고 있었다. 우리가 우리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행동의 결과로 따라오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데서 비롯한다.(57)
이런 저런 상황에 따라서는 자유로운 의견. 느낌. 사상과 지식조차 표현하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 그런데 진실에 헌신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가? 첫째 결코 거짓을 말하지 말 것이고, 둘째로 진실을 숨기는 행위는 거짓말과 같을 수 있다는 점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진실을 숨겨야 하는 모든 경우에 심각한 도덕적 결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셋째로 진실을 숨기는 것이 개인적인 필요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즉, 권력이나 호감을 얻기 위해서라든가 자신의 지도를 도전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네째로 진신을 숨기는 결정은 상대방 입장에서 내려야 한다. 다섯째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당사자가 영적 성장을 위해 진실을 유용하게 사용할 능력을 갖고 있느냐이다. 끝으로 영적 성장을 위해서 진실을 활용할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할 때 대체로 우리는 과대평가보다는 과소평가하기가 쉽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86)
사랑하려는 욕구 자체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사랑은 행위로 표현될 때 사랑이다. 사랑은 의지의 행동이며, 다시 말해서 의도와 행동이 결합된 결과다. 의지는 또한 선택을 내포한다. 우리가 반드시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를 선택한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생각할지라도 실제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한편 정신적 성숙을 목적으로 실제로 노력할 때는 항상 그렇게 하겠다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겠다는 선택이 이루어진 것이다.(116)
나는 사랑을 정의하기를,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라고 했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보다는 의지에서 나온다.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려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사랑의 느낌이 없어도 사랑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 사랑의 느낌이 있으면 더욱 좋다. 그러나 느낌이 없을 때도 사랑하려는 의지와 헌신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으며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느낌으로 행동하는 것을 억제할 능력이 있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170)
진심으로 들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의 표현이다. 진심으로 듣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는 괄호로 묶는 훈육이다. 그것은 가능한 한 말하는 사람의 내면세계를 그의 입장이 돼서 경험하기 위해, 자신의 편견, 판단 기준, 욕구들을 일시적으로 포기하거나 제쳐두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합일은 실제로 우리 자신을 확장하고 확대하는 것이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 늘 새로운 지식은 획득된다.(182)
진심으로 듣는 것은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므로, 결혼 생활에서만큼 이것이 적합한 데는 없다.그런데도 대개의 부부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결코 진심으로 듣지 않는다. 그래서 부부가 상담이나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 치료사가 수행할 과제는 주요 과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적지 않게 실패한다. 그들이 기꺼이 투자하려고 했던 에너지와 인내심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183)
이제 심리 치료를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만드는 본질적인 요소를 알았다. 그것은 ‘무조건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것’도, 마법의 말과 기술과 태도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관심과 노력이다. 치료사가 환자의 성장을 돕기 위해 자신을 확장하고자 하는 마음, 즉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 진심으로 사무적이 아닌 개인적 감정 차원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실제로 환자와도 자신과도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다. 간단히 말하면 성공적이고 의미있는 심리 치료의 근본 요소는 사랑이다.(250)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가족이라는 사실을 – 심리 치료사를 제외하고는 – 잘 모른다. 성장 발달에 가장 기본이 되는 문화는 가족 문화이고, 부모는 그 ‘문화의 지도자’인 것이다. 더욱이 가족 문화의 영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말해준 신과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부모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세계다. , 부모가 서로에게 또는 가족에게, 가장 기본적으로는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것이다. 즉, 세계의 본질에 대한 배움은 자라면서 가족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부모의 말로 세계관이 결정된다기다는 오히려 부모의 행동으로 창조해내는 특수 세계가 바로 그것을 결정한다.(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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