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히 왕 앞에서 점잖은 채하며, 서로를 비방하는 신하들의 모습이라니.. 왕은 오늘도 머리를 가로저으며 자리를 뜬다. 어느 편이라고 감쌀 수 없는 애매한 상황. 그저 서열이 정리되고 나면, 그제서야 인정해주면 그뿐인 자리다. 제왕적인 왕의 지위라는 것은 사대부를 대표하는 관념적 왕이라는 허울뿐이다. 자신의 백성을 위해 구휼책을 펼치려 했던 선대왕의 생각을 품고는 있지만, 그 뜻을 펼치려 할 때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기적 사대부들과 한참의 논의를 펼쳐야 하니, 어린 왕으로서는 그들을 이길 제간이 없다. 그래서 왕은 오늘도 체념에 젖어든다.
2.
흥부는 삼 류 연애 소설가다. 연흥부라는 이름으로 저잣거리에서 꽤나 유명하다. 그의 유명세에는 이유가 있다. 15년전 민란으로 부모를 잃고 헤어진 형(놀부)이 그의 이름을 듣고 찾아오기를 바랬다. 그러던 중 형이 민란의 영웅으로, 지명수배 된, '각기장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형은 이미 동생을 알았다 해도, 동생이 처지가 곤란해 질까봐 애써 찾아 오지 않았으리라. 형제의 우애는 떨어져 있던 시간 만큼 간절하고 두터웠다. 흥부는 어린날 형을 거둬서 키워준 조혁을 찾아간다. 가난한 사람들과 일평생 함께 살아가는 조혁에게 형의 소재를 물어보지만, 가르쳐주지 않는다.
3.
때는 <정감록>이 시중에 읽혀지고, 조선의 왕이 '이씨'가 아닌 다른 성씨를 가진자가 왕위에 오르리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루는 김응집(김원해 분)과 앙숙이 깊었던 조항리(정진영 분)가 연흥부를 불렀다. 김응집을 역적으로 모함하는 이야기를 꾸며 <정감록 외전>을 쓰라고 지시한 것이다. 금새 저잣거리는 <정감록 외전>이야기로 가득해 진다. 본래 김응집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왕은 조항리와 김응집 두 세력을 모두 견제하는 인사를 단행한다. 어쨌든 김응집은 더 벼슬에 큰 집착이 없음을 증명해야 했고, 강등되고 만다.
4.
<정감록 외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재주가 있는 흥부를 본 조혁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세상을 풍자하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면, 형과의 만남을 주선해 준다는 것. 구지비 이야기의 소재를 찾는 것이라면, 자신과 자기 형(조항리)을 소재로 삼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흥부가 보았던 조혁이 형수에게 밥주걱으로 뺨을 얻어맞는 것도 보았던 참이었다. 제비와 호박씨를 날아다 준다는 이야기는 한참의 고뇌끝에 나온 아이디어였다. 이 이야기가 <흥부전> 이다. 이름은 형님과 자신의 이름을 넣었다지만, 스토리는 조혁과 그 형에 대한 내용이다. 또 한 번 조선은 이 이야기로 술렁인다. 모두가 보아도 이 이야기는 조항리와 조혁의 이야기 인것이다. 김응집은 이 내용을 토대로, 역적을 길러 키우는 조혁과 조항리를 일거에 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왕께 고한다. 결국 조혁, 흥부의 제자, 흥부가 국문(鞠問)에 잡혀온다.
왕께 소신을 밝히는 조혁(김주혁 분). 백성에게 꿈을 갖게 하는 구휼을 펼치고 함을 알리자, 왕은 놀랜다.
그렇지만, 왕은 그를 보호해 주진 못한다.
5.
일찌기 조항리는 민란의 무리를 돕던 동생을 못마땅히 여겨 호적에서 파 버렸고, 그의 땅을 몰수하다 시피한다. 그리고도 이 국문장에서는 행여 자신의 일신에 누가 될까봐, 칼을 들어 순식간에 조혁을 즉결 처리한다. "꿈을 꾸는 게 죄"라는 것이다. 왕은 또다시 이들이 들이쳐 받는 모습을 뒤로 하고 퇴장한다. 조혁의 구휼하는 정신을 기특하게 여기던 터였지만, 조항리의 무험한 행위를 보면, 어쩌면 자신이 마음에 품었던 구휼책도 포기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왕은 황급히 퇴장하고, 상황은 모함을 했던 김응집을 잡아 가두는 것으로 종결된다. 이후 왕을 기만한 죄로 김응집은 사약을 받아 죽게 된다.
6.
거세게 휘몰아친 피바람으로 왕은 강연 회의에 참석치 않는다. 흥부는 돌연 조항리를 찾아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세간의 유명한 <흥부전>을 각색하여 궁궐의 예식에 맞게 공연하자는 것이다. 조정의 가라앉은 분위기도 정상화 하고, 클라막스인 놀부의 박타는 장면에서는 어수선한 틈을 타 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찬탈하면 어떻겠냐고 역모를 부추긴다. 조항리는 이를 받아들이고, 왕께 연회를 제안한다. 그러나 이는 조항리를 처단하기 위한 흥부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흥부는 조항리의 공격을 막아내며, "너같은 꿈을 꾸는 것이 죄"라고 반박한다. 앞서 친동생 조혁을 죽인 죄목(꿈을 꾸는것이 죄)에 대한 복수다. 역모를 막게된 흥부는 왕에게 "백성이 먼저인 성군"이 되어달라고 요청한다.
7.
궁궐 내 백성들과 대치된 모반세력에게 흥부는 모든 것이 끝났을을 알리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내 여러분들께 하나 물어보리다.
착취와 편파로 얼룩진 권력이 우리들 위에 설 명분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이 나라의 주인은 우리 백성들이요."
이 영화를 보면서 "스토리텔링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흥부전>을 모를리 없는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가 하는 궁금함이 있었다. 그런 점이 이 영화에 대한 첫인상과 흥미를 떨어트린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흥부라는 작가가, 실은 매우 우애 좋은 형제지간의 이름을 빌렸다 뿐, 당대 앙숙같은 형,동생 지간 (조항리와 조혁)을 비유한 풍자를 그려 <흥부전>을 탄생 시켰다는 대목. 그 풍자는 다름아닌, 탐욕에 얼룩진 조정대신들과 서민들에 대한 갈등구조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흥미로왔던 부분을 꼽자면, 첫째는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문구에서였다.
19세기 중반, 국정이 혼란스러웠고, 곳곳에 민란이 일어났다는 대목인데, 이는 한국전쟁 이전의 상황과 비슷한 대목이라 눈길을 끌었다. 즉, 전국적으로 빈번한 국지전이 있었다는 것과 유사했다. 일제 강점을 촉발했던, 동학 혁명 이전에도 이미 그 기미가 전국적으로 100년 가까지 지속되어 온 점이 확인되는 대목인 것이다. 그만큼 국가로서의 시스템이 불안정했고, 많은 재력가와 정치가가 나라를 혼탁하게 운영했던 결과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패한 역사의 골은 생각보다 깊었다고 본다. 한국동란 이후, 우리 역사에서 테러가 잠잠했던 기간을 볼 때면, 남북간의 대치되었던 지난 60년간의 상황만큼 평화로웠던적이 있었는가 싶다.
두번째 흥미로왔던 장면은, <흥부전>를 출판해 내는 과정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겼던 것이리라.
글을 쓰고, 목판을 만드는 과정과 인쇄된 종이를 말리는 작업이 한땀 한땀 수고스럽게 그려졌다.
이중 이 아래 장면이 백미였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책으로 엮게 되면 나올 결과물"을 미리 계획해서 인쇄하는, 한글에서 말하는 "소책자 인쇄" 방식으로 인쇄가 되더라는 것이다. 인쇄 기술의 정수가 나오는 대목이다.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ㅋㅋ
그리고 이런 <흥부전>이 책으로 전국에 배달되고, 각종 공연으로 저잣거리에서 불려지는 일련의 활동들이 소위, 문화로 불려지는 오늘날과 소설-영화-연극 상품화와 무엇이 다른가 싶다. 물론 오늘날의 시각으로 그려진 허구 사극이라는 점을 염두해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흥부전>이 던져주는 한국적 정서와, (역모를 저지하기 위한 서민들이 횃불을 들고 모여드는) 촛불혁명의 오마주가 시민혁명의 상징하는, 오늘날 시국과 맞물려 재밌게 읽혀지는 부분이 되었다.
이제 홍경래에서 시작된 민란 운동이, 조혁을 거쳐, 흥부에게 이어져 내려온다. 한낫 삼 류 연애소설 작가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써 내려감으로써 "백성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는 데 일조한다는 큰 이야기의 흐름 안에 과정의 결과로 빚어진 오늘날의 <흥부전>을 음미해 보는 맛이 있었다. 그만큼 스토리텔링의 힘이 있었다고 본다. 조혁을 연기했던 김주혁의 찡그린 미소가 왜 이렇게 애잔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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