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봤을 때,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스토리는 전혀 기억나질 않아 다시 보는 계기가됐다.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한국참전 용사였던 주인공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도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고, 스스로도 참전 때 저지른 참혹한 살상의 죄의식을 고통스러워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의 동네에 차츰 동양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더니, 동양 소수민족 몽족 이웃이 옆집으로 떡하니 들어오게 된다.
그 이웃의 아들 타오가 이 노인이 아끼는 자동차 "그랜토리노"를 훔치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마는데, 이는 동네 불량배들의 사주였음을 알게 되고, 차츰 타오의 앞날을 걱정해주며 도움을 준다. 타오의 누이인 추는 밝은 성격으로 타오와 이 노인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불량배들에게 추가 성폭력과 구타를 심하게 당하게 된다. 모두들 이 노인의 복수를 예상하고 우려하지만, 노인은 다른 복수를 꿈꾼다. 불량배들의 저택으로 늦은 밤 찾아가 담배불을 붙이려 라이터를 꺼내는 시늉을 하는데, 이를 본 불량배들은 일제히 총을 발사한다. 노인은 장렬히 쓰러지고, 그의 점퍼에서는 총이 발견되지 않는다. 불량배들은 그가 총을 꺼내는 것으로 오해하고 발사한 것이고, 결국 총기 미소지자에 대한 살인을 면치 못하여 모두 구속되기에 이른다. 이게 이 노인의 마지막 복수였던 것.
노인은 유언으로 자신의 집을 교회에 기부하고, 그랜토리노는 타오에게 남겨준다. 결국 "그랜토리노"는 노인의 마음을 타오에게 전해주는 매개가 된다. 미국인들이 동경하는 전형적인 목가적 환경을 폭력적 현실 속에서 지켜나가는 작품이었다. 몇몇 대사들은 정말 주옥같았는데, 옮겨적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언제나처럼 노인의 회심을 기도하며 도전했던 젊은 카톨릭 신부는 27살의 앳된 모습을 하고 감히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인에게 인생을 논하다가 번번히 발길을 되돌려야 했는데, 노인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며, 그동안 홀로 져왔던 인생의 큰 짐을 털어버리는 계기로 삼는다.
이때 고백하는 노인의 훈장에 서린 반전어린 고백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가 받은 훈장은 6.25전쟁에서 열심히 싸워 이룬 성과라기 보다는 어린 전쟁고아들의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쌓은 결과라는 것이다. 전쟁은 모두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라지만, 미국영화에서 과거 한국전쟁에 대한 반성적인 목소리를 담은 것은 이 영화가 최초이지 않을까 싶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초반에 나오는 그의 인종차별적인 모습은 어쩌면 보수적인 그의 면모에서도 드러내지만, 반면에 마음 한구석은 바르고 따뜻한 면이 있다라는 것은 미국성을 대변하는 의도된 연출이자 영화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그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노출하게 되면서 한평생 움켜쥐고만 살던 것을 베풀며 나눌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영화가 현실과 다른 점은 바로 이 변화에 있지 않은가 싶다. 죽음을 앞두고 사람은 변하는 법인가? (내가 아는 노인의 속성이 이게 아니다. 실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노인의 죽음은 그의 인생을 속죄하는 참으로 값진 희생이 되었다. 사랑하는 타오와 추를 위해 그들의 인생이 오점없이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인은 그렇게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의 죽음은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유쾌하고, 멋스러웠고 종교적 숭고함까지 느껴지게 했다. 이웃을 위한 죽음까지는 고사하고, 작은 침해와 불이익에도 날선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내게 선한 마음을 갖도록 해준 영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에게 좀더 따뜻한 인사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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