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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종교

[북리뷰] 대천덕 자서전

by 체리그루브 201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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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덕 신부에 대해서는 자주 들었으나, 특별한 기대감 없이 책을 들었다가 깊은 감동을 얻게 되었다. 이 책 또한 앞서 읽은 책들과 맥을 같이하여, 성령체험을 강조하는 신앙고백이 담겨있다.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은사나 열매가 아니라 코이노니아-하나님이라는 것”(110)이다. 그는 결국 성령님의 이끌림 하에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rtkee&logNo=150071548462

 

 

이 책을 통해 배우고 느낀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이책을 통해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부분인데, 젊은시절 한때나마 인본주의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인생의 실험에서 회심하게 된 과정이었다. 인간의 복지를 이루는 일에 헌신적인 자칭 무신론자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예수를 로 부르면서도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 보고 싶었다.”(137) 소설 <천국의 열쇠>에 나오는 탈록이라는 무신론자 의사는 중국에서 병자들을 치료하다 죽게된다. 그 소설은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천국에는 누가들어가는가?’ 하고 말이다.

 

나는 2,30대의 일부분을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으며 보냈다. 꼭 예수를 믿는 길 뿐만이 아니라, 다른 길도 있다는 것에 열린 마음을 갖고 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그러면서 자연히 기성정치와 재벌과 언론에 대한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사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나를 병들게 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였다. 일찍이 대천덕 신부도 젊은 시절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됐다.

 

그는 어떻게 돌아서게 되었는가? 그 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상주의적 인본주의자였던 내 친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환멸을 느끼고 인권 투쟁에서 멀어짐으로써, 결국 이러한 노력을 잔인하게 이용해 자기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의 손에 인간의 권리를 넘겨 주는 것을 보았다.”(138) 이것으로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유일한 끈은 오직 이기심뿐이다. ‘의 이기적인 관심과 의 이기적인 관심이 우연히 일치할 때 우리는 같이 일할 수 있고 일종의 교제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138) 이로써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다. 창조주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인간을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신뢰할만한 존재로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철학으로서 인본주의는 효용성이 없다. 그것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라는 바위에 좌초한다.”(138)

 

나는 이런 경험까지 가볼만큼 활동가로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내 스스로 되돌아 볼 때, 황폐해진 마음, 메말라 버린 신앙과 사랑없음을 놓고 볼 때에도, 마음의 독인 부정분노를 어떻게 해서든 내려놓아야 한다는 시급한 과제를 안게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천덕 신부의 결단과 실천은 커다란 위안을 준다 하겠다.

 

두번째는 교파간의 갈등이 기독교 전파의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바울이 육신의 일이라고 열거하고 있는 바 개인주의라는 죄는 지난 여러 세대 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오늘날도 교회를 부패시키고 있다. 교회는 시기와 당 짓는 것과 분리함 등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경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5:21)라고 말씀하고 있다.”(109) 그는 이러한 개인주의를 가볍게 여기는 풍토를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걸림돌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도 많은 교단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분열되는 것을 보며, 또 그러한 교단들의 종류조차 나열하고 설명할 수 없는 입장에서 보면, 보통 염려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밖에도 감명깊게 와닿았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우리 가정의 특징이었던 논리적인 설득과 엄격한 처벌 사이의 균형이야말로 성경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사람들을 다루시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13)

 

4대에 걸친 우리 가정의 간증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37:25)는 것이었다. 내가 다녔던 신학교의 교수님들이 이 구절을 성경에서 빼 버리고 싶어했을 때,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그들의 무지를 불쌍히 여겼다. (14)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의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위선자로 미움을 받을 것이며, 사회에서 억압받는 자들이 곧바로 사탄의 손으로 달려가게 되리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다. (139)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결단이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통해 일하신다. 우리 마음 속에 치유를 일으키고 있었던 사랑은 그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하나님 그분의 사랑이었다.(53) – 대천덕 신부가 평양외국인학교에 와서 받았던 치유들

 

얼마 후 할아버지가 쓰신 <성령 세례>를 읽었다. 나는 이것이 성경의 주제라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80)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의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위선자로 미움을 받을 것이며, 사회에서 억압받는 자들이 곧바로 사탄의 손으로 달려가게 되리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다. (139)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로다.”(139) 시편917

 

우리는 성숙과 성장에 대한 찬송을 불러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성장해야 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설교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성숙한 목회자들이 필요하다. 현재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한 모든 조건은 성숙보다는 지식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성숙한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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