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다소 놀랍지는 않지만 뇌리에 오래 남아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미래사회의 자본주의적 생애 연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에서 기계인간의 마지막 단계, 즉 인간과 구별이 안되는 기계인간이 존재하는 미래상이다. 유발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에서도 상상 못할 부유한 계층에게서만 생애 연장에 대한 기회가 주어질 거란 이야기도 이 서사에 한 몫 거든다.
<정이>의 미래 사회에는 얼마를 지불 가능하냐에 따라 A, B, C타입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A타입은 많은 비용이 청구 되는데, 젊은 몸으로 갈아탈 수 있게 되고, 인격권이 주어져 사람과 동일 취급을 받는다는 식이고, 그보다 저렴한 B타입은 인격권은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 C타입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유족의 동의를 받아 대량생산 모델 타입에 투입될 양산형으로 사용되며, 되려 유족에게 소정의 비용을 주게 된다는 설정이다. 생각보다 선택지가 다양하지 못한 게 아쉽긴 했지만 충분이 상상 가능한 범위를 열어 보여줬다는 면에서 확실한 체감이 된 것 같다. 영원한 삶에 대한 인간의 염원이 돈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인류가 머잖아 등장하겠다는 이야기다.
<정이>는 인간과 기계와의 전쟁에서 '국민 영웅'으로 칭송받던 한 여성 군인, 윤정이 팀장을 C타입으로 양산하는 과정을 다룬다. 작전후 성공적인 탈출을 모의 테스트 하며 원인모를 실패의 원인을 밝혀내려 노력한다. 그러다가 회사는 더이상 양산형 군인에 대한 필요을 느끼지 못했다. 곧 화성과의 화해 무드가 펼쳐질 거라 했다. 일부 팀원은 존경하는 정이팀장의 몸을 갖고 성인용 사이보그로 제작하려하였다. 어쨌든 폐기될 몸이었다.
그러나 큰 변수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윤박사가 바로 윤정이 팀장의 딸이었다는 것이다. 35년 전 작전에 투입되었던 엄마를 아무 힘없이 C타입 양산에 동의한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엄마의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공부하고 취직하여, 이제는 엄마를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여느 양산형 모델을 테스트 하듯 그렇게 지내오던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회사는 이제 윤정이 팀장을 양산형 모델로 출시하려 했던 것이다. 한 번도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돌아온다 해놓고 자기를 버린 엄마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 엄마지만, 막상 폐기하려 하니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윤박사는 얼마전 말기 암 선고도 받았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딸이 엄마의 살 날을 연장해 주기 위해 위험한 작전을 감행한다.
탈출 액션씬은 너무나도 긴박했다. 헐리우드급으로 볼꺼리를 제공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탈출하고 끝. 과연 정이는 어찌 됐다는 것인가? 얼마못가 밧데리가 다 떨어져 어느 숲, 나무 옆에 서서 굳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감독은 이 신파에서 강한 모성애를 이끌어냈다.
미래사회는 여전히 조직의 상명하복이 완연하고, 기계 폐기물이 더욱 많이 배출되며, 삶의 질이 그닥 나아 보여지지 않는다. 도리어 더 엄격한 경찰국가가 되어 치안이 살벌하고 더 어둡게만 보여진다. 탈출에 성공한다해도 정이 팀장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박사는 이미 말기암환자여서 생의 미련이 없었던지 정이의 탈출을 도우며 목숨을 내거는 모험을 한다.
정이 팀장의 스펙터클한 액션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스러운 이야기다. 그러나 C타입으로 유족이 제공한 육체를 양산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폐기 과정과 갈등을 묘사 했다는 것은 미래사회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요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생각할만한 꺼리가 될 것 같다.
결국 감독이 이야기 하려던 게 신파였던가 싶은 의아심이 들기도 한다. SF영화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옷 같다. 결국 모녀의 뜨거운 재회였던가 말이다. 뭐.. <스타워즈>도 갑자기 "I'm your farther."했으니 비슷하게 봐야할까? 정이팀장의 부비부비가 이 영화의 핵심 씬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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