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시, 구천교도소, 구천대학병원, 구천검찰청. 이 같은 가상 도시 소재는 연출 작품의 경계를 긋고 한 도시의 축소판을 표현하기 위한 드라마의 필수 장치인 건 확실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도시가 너무 많아져서 이젠 헷갈리기까지 하다(무진시, 무지군, 서원시 등). 그야말로 우리네 세상의 축소판을 그려내기 위해 온갖 억지 설정을 압축해서 표현하고, 그들만의 비리가 온 천지를 뒤덮어도 그건 구천 시라는 무대 안에 머무르게 하는 일종의 한정 공간이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렇다고 실제 도시명을 넣으면 소송각이 우려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왠지 성남시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주요 이야기
지금부터는 이 이야기의 모든 떡밥을 제거한 순수 흐름을 제공한다. 드라마를 보기 위해 준비 중이라면 다음의 스포에 주의해 주길 바란다.
NR포럼이라는 구천시 최상위 엘리트 그룹이 있다. 이들은 이 도시의 NK화학연구소, 병원, 검찰, 경찰 등을 움직이는 조직이다. 선조 때부터 가문으로 연결된 그들만의 이너써클을 결성했고, 지금은 강 회장이 이들의 주축이다. NR포럼에서 밀어주면 구천 시장 당선도 가능할 정도로 여론 형성 능력도 있다. 최도하는 강회장의 지지로 아무 기반이 없었음에도 시장 자리에까지 올라 이 NR포럼에 들어오게 되었다.
사실 최도하는 본명이 조성현이다. 어린시절 조부와 아버지가 강회장에 의해 죽임 당하는 것을 목격하며 오래토록 칼을 갈아왔다. 그는 최도하라는 인물로 세탁하고, 강회장의 최측근 자리에까지 올라 섰다. 한편 공지훈은 NR포럼의 차세대 리더이지만, 최도하가 많이 신경쓰인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매우 산만하게 진행되어 그 맥을 짚어내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우선 빅마우스라는 존재가 등장하는데, NR포럼의 펀드 자금 1천억을 갖고 도주하여, 모두들 그를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사실 요즘 <재벌집 막내아들> 덕분인지 1천억은 거액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빅마우스가 정말 이들의 돈을 사기친 것인지는 드라마 막판까지 아리송하게 진술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화려한 양지의 NR 그룹에 대비되는 존재로서의 빅마우스는 음지의 존재이자, 조직으로 거대 음모 세력에 맞서 싸우는 하나의 세력으로 최종 묘사된다.
극 초반에 누가 빅마우스냐를 갖고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중반을 넘어가면서 차츰 이들이 한 개인이 아니라 강한 결속력을 가진 빅마우스 조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선대의 빅마우스가 후대의 빅마우스를 지명하는 것으로 승계가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1대 빅마우스 노박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인물이였고, 같은 감방에서 함께 지낸 박창호 조차 짐작도 못한 인물이었다. 이 빅마우스는 교도소장 박윤갑을 움직였고, 박창호는 그들의 비호 속에 끊질기게 살아남아 2대 빅마우스가 된다. 물론 빅마우스가 승률 10%의 변호사 박창호를 처음부터 지목했다는 것이 좀 의아스러운 구석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NR포럼의 주요인물들이 빅마우스가 내세운 가짜 빅마우스 박창호로 인해 많은 혼란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노박이 NR포럼과 원수가 된 상황은 이랬다. NK화학의 방사성폐기물을 탐사보도 하던 딸이 죽음에 이른 것이다. 복수를 다짐하였고 딸로부터 얻은 단서는 서박사의 미발표 논문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노박은 단지 그 내용이 궁금할 뿐이었다. 딸을 그토록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이 서재용 박사라는 인물은 NK화학의 내부 연구를 통해 구천시의 혈액암 환자가 타지역에 비해 20배나 많다는 근거를 밝혀낸 연구 논문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는 NR포럼 전체에 대한 크나큰 위기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고, 이를 숨기고자 구천대학병원은 암환자의 영면치료를 허용하지 않는 방침으로 병원내 많은 암병상이 유지되지 않도록 힘써왔다.
더군다나 이런 방사능물질의 오염은, NK화학의 폐수를 인근 양식장을 통해 바다로 흘려보내 아무에게도 의심받지 않게 바다로 흘려보내는 꼼수를 써왔고, 오랫동안 NK화학을 지역경제의 기반으로 세우는데 이바지 해왔다.
비록 1대 빅마우스, 노박은 딸의 복수를 하지는 못하고 최도하에 의해 죽게되었지만, 박창호 변호사가 바통을 이어받아 NR포럼에 대항하고, 특히 최도하 구천시장의 비리와 그의 재임기간에 벌였던 특수물질 관리법 폐기 시도를 만천하에 드러나게 함으로써 검찰수사에 응하게 한다. 그럼에도 최시장은 무혐의로 풀려난다. 이어 강회장을 심장마비로 위장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고, 공지훈에게 돌아갈 유산을 가로챈다. 구천 시장에도 재당선되는 등 그야말로 평탄안 악인의 승리를 끝까지 보여준다.
드라마 막판, 이제 모든 부분에서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박창호 변호사. 남편 일을 돕다가 방사성 폐기물질에 노출되어 혈액암 말기로 고통스럽게 떠나 보낸 아내, 고미호를 떠올리면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며 허무함을 되뇌일만한 타이밍이다. 모든 승리를 만끽하며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는 최시장의 앞에 나타난 박창호 변호사는 회심의 몇마디를 던지고, 최도하 시장을 터럭 하나 안 건드린 상태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것은 바로 수영장 물을 방사능 폐기물로 오염시켜서, 장시간 노출하게 만든 결과다. 최시장은 피를 토하며 죽는다.
이 드라마는 권선징악을 기본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너무나도 과도한 설정 탓에 눈살을 찟뿌리게 하는 구석이 대단히 많다. 극초중반까지는 누가 빅마우스냐를 놓고 신경전, 탐색전, 갖은 심리전을 펼치다가 급기야, 빅마우스가 일개 개인에서 서로돕는 강한 조직으로 급부상하는 대목도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게다가 마지막에 시장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그 많은 수영장물은 도데체 어떻게 처분하겠다고 그렇게 한가득 옮겨놓았다는 것인지 설정 자체만으로도 머리가 아플지경이다.
주요 포인트는 찌질한 변호사 이종석의 변신이다. 점점 대담해져가고, 아내의 강력한 내조 덕에 진짜 빅마우스로 성장한다.
정의로운 빅마우스가 되었으면 좋겠어.
주인공이 이종석이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시청률이 경쟁작 (오늘의 웹툰)을 가볍게 누르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개인적으로는 윤아의 간호복 입은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줄은 몰랐다. 지금의 박창호를 만들어 준 것은 작은 단서나 빈틈에서도 희망을 찾는 아내, 고미호의 열정과 기지의 공이 크다 할만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많은 떡밥은 언제 회수 되는 것인가 싶은 게, 이 드라마의 아쉬운 대목이다. 시즌2라도 염두에 둔 것일까? 윤아도 없는데? 아니면 맥커핀이 될 상황이 될 것이다. 이상 MBC 올해 최고의 드라마 빅마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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