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신문광고를 통해 나오는 온갖 건강식품이 만병통치약인 양 포장되고 있다. 자극적이고 비과학적인 선전술을 구사될수록 상품의 매출이 올라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과학이 국민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교실에서 과학적 지식은 가르치지만 ‘과학적 사고’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특히 의학의 영역을 보면 원생동물이 어떻고, 파충류는 어떻고는 가르치지만 진작 우리 몸의 오묘한 원리에 대해서는 별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세상을 담는 눈
정호승의 시 「눈부처」 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다른 문학작품에서도 소개되는 이 눈부처란 말의 의미는 ‘눈동자에 비치는 사람의 형상’을 뜻하는 아름다운 순우리말이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당신의 눈동자에게 건배를”이라고 속삭이며 잉그리드 버그만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 버그만의 눈동자 속에 어린 보가트의 모습이 바로 눈부처다.
눈은 흔히 카메라에 비유된다. 각막은 카메라의 필터에 해당하며 수정체는 렌즈, 망막은 필름에 해당한다. 그리고 각막과 수정체 사이의 앞방에는 방수(房水)라는 물이 차 있으며 수정체와 망막 사이의 공간에는 유리체라는 찐득찐득한 물질이 있어 일정한 압력으로 눈의 모양을 유지한다.
많은 사람은 책을 오래 보거나 TV나 컴퓨터 모니터를 많이 보면 시력이 나빠진다고 여기지만 안과 전문의들은 ‘글쎄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근시는 보통 키가 급격하게 자라는 시기와 관련이 있다. 키가 가장 많이 크고 눈알 크기도 가장 많이 변하는 시기에 발생하는 것을 보면, 눈을 혹사한다고 시력이 나빠지지는 않는 것이다. 근시가 생기려면 하루 12시간 이상 1m 이내의 물건만 봐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런 상황에 있기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람만이 감정의 눈물을 흘린다고 알려져 왔지만, 새끼를 잃은 어미 바다 수달도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발견했다는 보고도 있다. ‘감정의 눈물’은 스트레스로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될 때 이것을 밖으로 내보내 몸 안에서 ‘독’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다. 눈물은 평소 아무도 모르게 나오는데, 이 눈물은 평소 흰자위에 있는 60여 개의 덧눈물샘에서 1분에 1.2㎕(㎕는 1백만 분의 1ℓ)씩 나와 눈알 표면의 눈물층에 흐르다가 코로 빠져나간다.
최근 과학자들은 눈물의 성분 가운데 락토페린을 암 치료제, 리소자임과 리보뉴클레아제를 에이즈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세숫대야에 얼굴을 담그고 눈을 깜빡이며 눈을 씻는 등 눈물을 물로 씻어 없애는 행위는 일종의 자해(自害) 행위다. 또한 인공눈물은 오로지 임시방편으로 써야 한다. 눈 건강을 위해서는 틈틈이 눈을 자주 깜빡이는 것이 좋다.
숨의 여로, 호흡기
남자는 가로막이 많이 움직이는 배호흡, 여성은 갈비뼈근육이 주로 움직이는 가슴호흡을 한다. 폐활량은 폐에서 기능을 하는 면적을 가리키는 것으로 어른이 돼서 운동을 한다고 늘릴 수 없다. 다만 달리기, 속보 등 유산소운동을 하면 호흡 시스템이 원활히 움직이게 되고 결국 폐의 기능이 좋아져서 폐활량이 늘어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추미의 가늠자, 얼굴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기의 머리뼈가 굳기 전에 엎드리거나 옆으로 재워 키워 점점 머리옆이 납작하게 바뀌고 있다. 이에 반해 서양의 일부 국가에서는 중세에서 20세기 초까지 아기의 얼굴을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유럽의 풍속화들에서는 머리뼈가 말랑말랑한 아기를 눕혀 널빤지로 내려누르는 ‘희한한 모정’이 담겨있기도 하다.
한편 볼붉힘은 사람만의 특징이다. 부끄러울 때 볼에서 시작해 목ㆍ코ㆍ귓불과 윗가슴까지 2, 3초에서 길게는 5분 정도 발개지는 홍조(紅潮)는 자율신경계 중 억제를 맡는 부교감신경이 자극받아 얼굴 혈관이 넓어져 피가 몰리기 때문에 생긴다. 찰스 다윈은 홍조에 대해 "인간에게만 나타나며 선첮적 장님조차도 얼굴을 붉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식과 사랑의 시작, 입
‘키스가 끝난 뒤 어떤 여자는 얼굴을 붉히고, 어떤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어떤 여자는 땀 흘리고, 어떤 여자는 대든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깔깔대는 여자다.’ 영국의 속담이다. 스페인에는 ‘턱수염이 나지 않은 앳된 남자와 키스하는 것은 소금 안 친 삶은 달걀을 먹는 맛’이라는 속담이 있다. 서양에서는 입술을 살짝 벌리고 혀를 내미는 행동이 성적 암시를 나타낸다며 아주 교양 없는 행동으로 간주한다. 미국 언론의 유명한 음식 칼럼니스트들은 대부분 나이가 50대 이상이지만 사실 여성은 40대, 남성은 50대가 지나면서 맛싹의 수가 줄고 미각이 떨어진다. 다만 이들은 수십 년 쌓인 경륜으로 '분위기의 맛'을 훨씬 더 잘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을 서게 만드는 이음새
유럽에서는 17세기부터 엉덩이선을 강조하기 위해 허리를 학대했다. 금속 성분의 코르셋이 유행해서, ‘이상적 허리’인 13인치를 향해 조르고 또 졸랐고, 여성들은 내장이 뒤틀려 신음하다가 걸핏하면 사교장에서 졸도하곤 했다. 이 풍급은 20세기 들어 점점 사라지긴했지만, 제2차세계대전 후 '뉴룩'의 유행으로 잠시 되살아나기도 했다.
종합병원 응급실에는 신혼부부가 성교 중 떨어지지 못하고 119구급차로 실려오는 일이 적지 않다. 의학적으로는 바기니스무스(Vaginismus)라고 하는 현상의 하나인데, 가장 황망한 것은 이처럼 ‘여성’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수축해 ‘남성’을 꽉 무는 것이다. 그러나 바기니스무스 중에 이런 경우는 드물고 '문'이 열리지 않아 성행위 장애를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관능미와 역동성의 상징, 다리
18세기까지 동ㆍ서양의 사람들은 여성이 발목을 보이는 것도 정숙하지 않게 여겼으며, 심지어 서양인들은 공연장에 있는 피아노 다리도 음심(淫心)을 유발할 수 있다며 주름장식이 달린 ‘바지’를 입혀 놓고서야 직성이 풀렸다. 요즘은 각선미가 중시되고 있어, 곧은 다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아기때부터 다리를 잡아당겨주곤 하는데, 엉덩이관절이 빠져나갈 우려가 있다. 어쩌면 너무 일찍 걸음마를 배우게 했을 때, 아기의 다리가 휠 수 있고 보행기도 다리 건강에는 좋지 않다. 업어키우는 것과 다리 휘는 것은 전혀 관계가 없다.
인체의 강물, 피
혈액형은 1900년 오스트리아의 칼 란드스타이너가 찾아냈고 그는 이 공로로 30년 뒤 노벨상을 탔다. 이전에는 아무 피나 수혈하다가 생사람을 많이 잡았다.
여성 해방의 상징, 가슴
여성운동은 브래지어를 불태우고 가슴을 드러내면서 불타 올랐다. 1968년 미국 애트랜틱시티, 시인 로빈 모건이 이끄는 여성해방당의 당원들은 미스아메리카를 뽑는 대회장 밖에서 이같은 화형식을 가졌다. 한편 기원전 8세기 호머의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여전사족(女戰士族) 아마존(Amazon)은 유방이 없다는 뜻이다. 기록에 따르면 화살을 더 잘 쏘기 위해 어릴 적에 오른쪽 유방을 없앴다고 한다.
노화의 상징, 피부와 주름살
피부는 우리 몸의 ‘성벽(城壁)’으로 면역계의 최첨단에 있다. 현대의학이 발달하기 전 전쟁터의 전사자들 중에 절반 이상은 상처로 피부 조직이 파괴돼 감염으로 숨진 것이었다. 영화에서처럼 뛰어난 장수의 칼날에 한 순간에 숨지는 사람은 정말 몇 명 되지 않았다.
생각의 주인, 뇌
뇌의 특정 부분이 특정한 기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술에 취했을 때 사람마다 주사(酒邪)가 다른 이유를 설명해준다. 우리가 흔히 ‘필름이 끊겼다’고 얘기하는 일시적 기억상실은 영어로는 ‘블랙아웃(Blackout)’이라고 하는데, 이미 언급했듯이 뇌 가장자리계에서 정보를 단기 저장할 때 신호 전달 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알코올이 뇌의 브로카(Broca) 영역에 주로 침투하면 혀가 꼬여서 말을 잘 할 수 없게 되고 중간뇌에 침투하면 눈동자가 풀린다. 소뇌가 술에 절게 되면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되고 숨뇌를 마비시키면 ‘급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뇌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너무 적다.
진화의 비밀을 간직한 세포와 유전자
생체에 필요한 에너지(ATP, Adenosine Triphosphate)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 안의 DNA와 구분되는 고유한 DNA를 갖는다. 또 박테리아를 죽이는 항균제에 쉽게 죽는다. 과학자들은 이런 점을 근거로 “20억 년 전 침투한 세균이 인간의 세포 소기관으로 자리잡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토콘드리아의 염색체는 어머니에게만 물려받는 것도 특징이다. 학자들은 인류의 공통적 어머니가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다고 하며, 이 가상의 여인에게 ‘미토콘드리아 이브’란 이름을 붙였다.
염색체에서는 3개의 염기쌍이 하나의 아미노산을 만들어내며, 몇 개 또는 수십 개의 아미노산이 모여서 단백질이 된다. 이때 DNA가 직접 아미노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령 RNA가 DNA의 암호를 읽는 ‘전사’ 과정을 거쳐 리보솜에 가서 운반RNA를 통해 특정 아미노산을 만드는데, 이를 ‘번역(translation)’이라고 한다. 이전까지 많은 과학자들은 “DNA의 3-5%만 인간에게 유용하며 나머지는 아무 의미 없는 쓰레기더미이므로 이들까지 분석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주장했다.
2001년 이후 쓰레기더미가 더 이상 쓰레기더미일 수 없게 됐다. 도대체 1-1.5%만이 유전자라면 초파리의 2배, 식물보다 적은 유전자로 어떻게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과학자들은 세 가지 가설에 주목했다. 첫째, 탤런트 김현주가 몇 개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처럼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는 것. 둘째, 지금껏 탤런트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연출자가 더 중요하며 ‘쓰레기더미’가 바로 연출자라는 것. 연출자가 탤런트의 출연 스케줄을 조절하듯 쓰레기더미가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등의 주요 역할을 한다는 것. 요즘 많은 과학자들은 쓰레기더미의 ‘이동 DNA(Mobile DNA)’의 역할에도 주목하고 있다. 셋째, 그동안 DNA의 심부름꾼 정도로 치부했던 RNA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2002년 세계 최고의 학술지인 「사이언스」는 RNA의 재조명을 그 해의 최고 뉴스로 선정했다.
동양에서 본 우리 몸의 주인, 기(氣)
기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은 서양의학자들이 심장 박동에 따라 피가 흐른다고 보지만 심장박동만으로는 피를 모세혈관 구석구석까지 2만 4,000㎞나 흐르게 할 수는 없다는 점 등을 내세우며, 기는 엄연한 실재이며 만물의 근원이라고 설명한다. 여하튼 우리 나라의 국선도ㆍ단학선원ㆍ연정원 등의 기 수련 단체에서는 지금도 ‘기를 살리려고’ 단전(丹田)호흡을 배우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국내 단전호흡 인구는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중 대부분은 몸과 마음이 맑아졌다면서 흡족해 하고 있지만 부작용인 기공병(氣功病)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공병에는 주화(走火)와 입마(入魔)가 있다. 단전호흡을 하면 수승화강(水昇火降), 즉 찬 기운은 올라가고 뜨거운 기운은 내려가는 현상이 일어나야 하지만, 화가 아무렇게나 흐르는 것이 주화다. 머리가 아프고 얼굴이 달아오르며 눈이 충혈되기도 한다. 또 귀울림(이명, 耳鳴), 조루, 복통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입마는 마귀에 붙들리는 것이다. 환청, 환시, 환각, 정서 불안, 수면장애 등이 나타나고, 마치 자신이 신통력을 얻은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가슴에 있는 나의 주인, 면역계
예로부터 인간의 마음은 가슴에 있다고 여겨왔는데, 육체를 관장하는 그 마음이 면역계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가슴샘(흉선)'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지 않을까? 여러 가지 철학적 질문을 던지지만 여하튼 면역계를 알면 최소한 인간이 왜 병에 걸리는지를 알게 된다. 고타마 싯달타를 출가토록 만든 질문의 하나이며 과거 숱한 사상가와 과학자들이 파고 든 문제, 즉 사람은 왜 병에 걸리는지에 대한 해답의 고갱이에는 면역계가 있다.
면역계는 ‘견장’이 다른 세포를 솎아낸다. 견장이 다른 세포에는 원래 아군이었던 것도 포함된다. 인체의 면역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T세포는 골수에서 만들어지자마자 가슴샘으로 보내지고 가슴샘은 ‘스파르타식 교육’을 연상시킬 정도로 엄격한 교육을 한다. 건강한 인체에서는 생산된 T세포의 96-97%가 가슴샘의 교육과정에서 탈락한다. 자기를 공격할 수 있거나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비자기(非自己)를 인식하지 못하는 세포는 모조리 제거되는 것이다.
감기를 일으키는 리노바이러스는 임파구가 바이러스에 대포를 쏘는 ‘포문’과 결합해 포문이 열리면 세포 안으로 쏙 들어간다. 성병을 일으키는 클라미디아는 백혈구 안에 들어간 다음 자신을 소화시키지 못하도록 방벽을 쌓는다. 말하자면 도둑이 경찰서 안에 둥지를 트는 격이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는 항원을 면역계에 알리는 보조 T세포 안에 숨는다. 면역계의 진화는 이들 바이러스 및 세균과 싸우는 역사였다. 물론 의학자들조차 인간의 면역체계에 대해 100만분의 1도 알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하루하루 몸이 예전만 못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 몸의 비밀과 알지못했던 상식을 얻는데 도움이 됐다. "현대의학이 발달하기 전 전쟁터의 전사자들 중에 절반 이상은 상처로 피부 조직이 파괴돼 감염으로 숨진 것이었다."라는 대목을 읽을 때, 예전에 봤던 <왕좌의 게임>이 떠올랐다. 도트라키 족의 수장 칼 드로고가 전장에서 입은 작은 상처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대목에서다. 당시 대부분의 전사자가 그랬듯이 그도 감염되어 죽은 것이다. 위대한 장수도 그렇게 가는 게 무지의 결과였기 때문이란 게 당연하면서도 허무한 당시 이야기의 전모였다.
처음에 시작할 때, 저자는 무척이나 거창하게 우리 인체에 관한한 '과학'과 '과학주의'를 구분했는데, 결국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만큼 많이 풀어내진 못했다. 물론 살림지식총서가 문고판이라 그만한 깊이를 더 담을 수 없으리라는 물리적 한계를 감안한다 쳐도 말이다. 이에 예전에 봤던 비슷한 류의 서적을 아래에 참고해 둔다. 앞으로도 건강에 대한 도서를 꾸준히 읽어서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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