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현 감독의 2014년도 영화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남편은 돌아오지 못했다. 대신 그의 전사 소식을 전하러 왔던 친구가 도리어 집에 눌러 앉아 남편 행세를 했다. 민경(이유영 분)은 애 둘을 키우며 힘들었지만, 그를 내어 쫓아낼 순 없었다. 힘이 없었다. 그 남자는 점점 더 난폭해졌다. 형편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어느날, 그녀에게 모델 제안이 들어왔다.
서울에서 내려온 유명 조각가의 아내(김서영 분)가 민경에게 다가간 것. 남편 준구가 낙향한 이후 병약하여 작품활동을 갖지 못한 것을 마음아파 하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모델을 댓가로 큰 돈을 챙겨왔건만 폭군남편은 노름에 빠져 돈을 모두 잃었다. 그러던 중 다방 여인을 집으로 불러들여 잠자리 하던 것을 들키자, 도리어 민경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민경은 얼굴이 엉망진창이 됐다.
그런 사정을 준구(박용우 분)도 알게 됐지만, 손쓸 방법이 없었다. 다만, 다시 작품 활동만 재개할 뿐이었다. 준구의 아내 정숙은 작업실에 나가지 않았다. 혹여나 원치않는 장면을 보면 어쩌나 싶은 초조함이었을까? 내겐 그렇게 읽혔다. 남편의 상태는 좋아졌는데, 정숙은 마음이 편치 못했나보다. 잠시 서울에 갔다올 일이 있던 날, 일이 터졌다. 민경의 폭군남편이 작업실에 들이쳐 작품을 훼손하고, 민경을 데리고 갔던 것.
정숙은 뒷수습으로, 폭군남편에게 돈을 두둑히 주고 작품 완료때까지만 참아달라고한다. 마침내 준구는 새벽이 다 되도록 작업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와 마지막 대화에서 은은하게 존경과 사랑을 담아 고백한다. 다음날 준구는 옷을 잘 차려입고 집을 나서고, 민경은 남편의 죽음 소식을 경찰로부터 듣게 된다. 총격에 의한 살해라는 것. 그리고 민경은 작업실로 가다가 또 하나의 총 격발 소리를 듣게 된다.
준구는 민경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기고 갔다.
여태껏 나는 그저 사람의 몸뚱이에서 아름다움을 찾아해맸었지. / 그러나 자네 덕분에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어. / 사람의 얼굴에 배인 삶의 흔적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네. / 자네는 내게 큰 가르침을 준 걸세. / 자네 남편은 돌아오지 않을 걸세. / 부끄럽지만 내가 자네에게 해줄게 이것밖에 없더군. / 진심을 행복하게 지내게. / 정말 고마웠네.
그리고 준구는 아내, 정숙에게도 편지를 남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 / 망가져가는 내 몸뚱아리가 당신에겐 더이상 짐이 되긴 싫었어. / 비록 내 몸은 겨울을 가고 있지만, 비로소 내 작업은 봄을 맞았어. / 나는 이 작품의 제목을 '봄'이라 지으려고 해. / 어느 조각가의 말처럼, 예술보다는 삶 그 자체가 가치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 이얼굴에는 내 삶이 배었고, 내 삶에는 당신이 투영되어 있지. / 부족한 사람이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 이순간까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이제야 고백하네.
이유영의 재발견이었다. 전라 노출이 많은 작품임에도 외설적이지 않게 절재된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외국에서는 수상도 꽤나 많이 한 작품이라던데, 유독 한국에서만 인색했다. 이렇게 묻혀버리도록 하기에는 너무도 아련한 상처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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