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4년째. 이제 갓 서른을 넘긴 부모는 억척세게 강한 마음을 품어야 했다. 매일 부두 선착장으로 일용직을 전전하지만, 매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유는 되도록 물에 희석해서 먹였다. 아이들은 아빠가 자주 집에 있어 좋았다지만, 각종 연체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이제는 더이상 팔아치울 값나가는 물건도 없다. 식료품점도 더이상 외상은 안된다 했다. 전기도 끊겨 나무 울타리를 분질러 뗄감으로 사용해야 했다.
가난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야 하는 상황이 집집마다 속출했고, 경제적 이유로 파탄나는 가정도 늘어갔다. 그는 아들에게 절대로 가족이 흩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 약속했다. 그러던 어느날 애들이 열이 나고 아팠다. 병원도 갈 수 없는 없는 상황이었으니, 엄마는 돌봐줄 친척집으로 보내야 했다. 남편인 자신과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것에 실망한 그는 "가족이 흩어지면, 지는 거야"라고 내뱉으며 집을 나선다. 어떻게든 애들을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빈민구제소를 찾아 돈을 빌렸다. 나머지 금액은 동료들을 찾아가 구걸해 애들을 데려왔다.
영화 <신데렐라 맨, 2005>에 나오는 내용이다. 다시 선수로 복귀한 그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경기력이 좋아진 이유로 "우유"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이상 아이들과 흩어지지 않기 위해, 물에 희석한 우유를 먹이지 않기 위해, 시합을 해야하는 절박한 이유가 그에겐 있었다.
시절이 하도 수상해서, 제2의 대공황이 올 거라는 위기감이 거론되는 요즘이다 보니, 이런 영화가 전달해 주는 여운은 오래토록 남아, 이렇듯 재회하게 했나보다. 여행업도 부도직전이라하고, 항공업, 운수업, 호텔이나 숙박업도 불황이다. 그러니 대형 캐미컬 회사에도 영향을 준다. 폐점하는 상가들도 속출한다는 뉴스도 연이어 나오고, CJ의 극장 매각설이나 컨벤션센터의 유지가 힘들다는 뉴스도 나온다. 주인공 브래독은 "누가 뉴욕시의 택시회사가 부도날 줄 알았겠느냐"고 말한다. 그는 선수시절의 파이트 머니를 모두 그곳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케이스다. 이런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은 그나 우리나 마찬가지다.
단기적으로 쌀이나 라면을 쌓아두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공황은 수년에 걸쳐 지속됐다. 당시 미국의 돌파구는 전쟁이었다. 국가가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해서 극복했다는 것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였고, 실제로는 2차세계대전 참여로 극복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
그렇다면 이번의 위기는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일까? 일개 소시민으로서 갖는 과분한 질문이다. 바이러스가 경제적 타격에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최대치를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다. 이런 때에 유독 한국이 주목받는 것에서 개인적 느낌을 이야기 해 보려한다.
한국사람들은 시스템에 대한 요구 눈높이가 높은 편이다. 해외에서는 자신이 사용하는 업무 시스템에 의견을 추가적으로 내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다다. 이유인즉슨 불평불만 하는 사람으로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공해준 시스템과 매뉴얼만 명확히 일치하면 군말없이 잘 쓴다. 불편해도 잘쓴다. 반면 한국사람들은 시스템이라면 "적어도 이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높은 기준이 있다. 네이버나 다음이 그 기준이 되었었고, 요즘엔 쿠팡이나 배민이 그러하다. 또한 이명박근혜 정부의 무능하고 부패한 운영탓에 국민의 감시가 높아지고, 정보 개방 요구가 잘 반영되게 됐다.
이렇듯 사용편의성과 정보개방성을 토대로 시스템이 갖춰지니, 되려 민간에서 대학생들이 앞다퉈서 코로나19 동선지도를 제공한다. DUR을 통해 마스크 과잉판매를 제재한 것도 큰 성과였다. 과연 세계가 비웃었던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이제와서 웃어넘길 것이었나 싶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개발자 대우가 좋다 하는데, 우리 나라는 급여도 적고 할 일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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