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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독서 단상

역사적 예수의 기원

by 체리그루브 2019.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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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예수 이미지 (위키백과)

 

라이마누스(1694~1768)는 그의 책 <예수와 그 제자들의 목적>을 살아 생전에 출판할 수 없었다. 아마도 당대 매우 이례적이고 배교적인 연구 결과였기에 목숨을 부지하기 조차 쉽지 않은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사후 1778년 출판된 그의 책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불을 지펴 놓았고, 이후의 연구는 그의 가설을 검증 및 확증하는 절차 정도로 여겨질 만큼 사소해 보인다. 아래 내용을 통해 그가 놓은 가설을 들여다 보자.

 

본래 예수가 전했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딱히 뭐라 설명하지 않아도 될만큼 유대사회 전반에 걸쳐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예수는 이 용어를 별반 설명하지 않았고, 유대 사회가 이해한 정도에서 크게 다르지 않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는 것으로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유대사회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포교는 짧은 시간에 수많은 무리에게 쉽게 받아 들여졌다. 예수가 제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왕국이 오고있다고 선포하라 한 것도 실은, 복음 자체가 오늘날 처럼 교의, 교리적으로 길게 서술되는 그 무엇이 아닌 "예수가 이끌고 오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가까워 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그뿐이었다. (생각보다 심플)

 

당대 유대인들에겐 예수가 메시야이고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 들여지는 데에 이질감이 없었다. (우리가 <구약>이라 부르는) 히브리 성경에서도 메시야는 사람을 일컫는 경우가 많았고, 다윗을 위시한 많은 왕이 하나님의 아들로 불렸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메시야는 그저 가장 높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셈이다. 당대엔 수긍이 가는 정황이었다.

 

성삼위일체와 같은 어떤 교리적 시각이 아닌 유대 사회의 예수로 인식하면, 그가 당대의 어떤 새로운 종교를 세우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를 보면 폐기하려 하기보다는 더 잘 지켜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후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진행된 율법 폐기론이 민망할 정도다.

 

예수는 또한 당시 유대사회에 만연한 종족 우선주의를 타파하지 못한 듯 하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10:5) 그는 이방인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전파하는 것을 막고 있다. 이 또한 이방인에 대한 포용적인 후대의 시각과 많은 다른 점을 보여준다.

 

예수가 일으킨 많은 기적에 대해서는 실은 없었던 것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런 초자연적 기적은 후대 제자들에 의해 각색됐다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실제 기적을 일으킬 능력이 있었다면,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를 보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마16:1) 했을 때, 예수가 부인할 수 없는 단 하나의 기적만 행했더라도 군중은 그를 더욱 따랐을 것이고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여기서 라이마누스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실제 예수는 각 지역에서의 봉기가 일어나 정치적 해방의 메시야로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대기하고 있었더란 얘기다. 후대 예수 제자들에 의해 각색된 고난주간과 예수 부활 사건에 대한 증언이 무색할 정도로 매우 세속적인 방법으로 유대사회의 해방이 가까워 오는 정황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23) 처럼, 봉기가 일어나 자신을 떠받들어 줄 것을 기대하였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해 "천국의 문을 닫고 다른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고 하여 민중의 심판을 이끌어 내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예수는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원망하며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라이마누스는 복음서 전문을 있는 그대로에서, 유대사회의 '역사적 예수'로 읽기 위해 노력했고, 거기에서 후대 제자들에 의해 각색되어졌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실제 예수의 목소리를 분리하여 냈다. 그 결과로 위에 서술한 부분과 같은 연구 결과를 낸 것이다.

 

결국 예수가 바라던 바는 신앙적으로 회개하고 율법적으로 더욱 정결하여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여, 로마로부터 정치적 해방을 맞이 할 것이고 유대는 독립적인 국가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자주적으로 살 수 있게 될 것이란 소망이었다. 즉, 유대인들을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예수의 죽음에서 제자들은 어떻게 극복했는가 하는 점이 이 연구의 귀결인데, 사망한 예수의 시신을 몰래 옮기고 50일이 지나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시점이 될 때까지 기다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부활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좀 구차하지만 있을 수 있는 정황이라 본다.

 

그리고 이들은 장차 오실(재림) 메시야에 대한 기대로 예수를 기다리는 종교로 새롭게 재편하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원시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보단 예수의 재림에 대한 희망으로 쓰여졌다고 봐야한다.

이런 점 때문에 초기교리의 문제는 지연된 재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바울의 구차한 변명이 데살로니가후서를 통해 온갖 이유가 놓여졌다고 본다.

 

라이마누스의 가설은 예수의 '메시야'가 주로 정치적 통치자 개념이었고 이는 초기 기독교의 기원이 제자들에 의한 기만으로 각색되어 출발했다고 설명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이는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 신학에서 대체적으로 배교적 연구 결과로 받아들여지지만, 당대 독일 신학에서는 역사적 예수 찾기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간이성에 대한 오류와 성찰이 일어나며 다시 미국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신학 연구로 돌아가는 분위기 이지만, 어떤 고대문서든 반드시 당대의 컨텍스트를 고려해야함은 실로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 하는 점에서 나름 시사하는 바를 안겨준다. 이런점에서 비신화화라는 화두를 던진 불트만의 테제는 오늘날에도 보편화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적어도 우리나라 역사만 보더라도 박혁거세가 진짜 알에서 나왔다고 실증적으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실제 그의 후손이더라도. 이는 당대 중요한 사람들이라면 갖을 법한 탄생설화가 덧입혀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바로 이런 비신화화 테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을 뒤져서 얻게 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고, 주요 출처는 슈바이쳐 박사의 논문 <역사적 예수의 연구>에서 소개된 내용이라고 보면된다. 역사적 예수 연구가 지금까지 4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학계에서 보는데, 바로 1세대 저작이라고 보면 되겠다. 모든 이적과 비상식적 내용을 배제 시키고 담백하게 구한 인간 예수 실존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에 뿌리를 둔 것을 보면, 그동안 그 출처에 목말라 하던 내게, 꽁꽁 싸매워진 이야기 보따리가 풀리는 듯한, 꽉 막힌 채증이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있을까 싶은 거기, 그저 한 실존주의자의 소설에 지나지 않은 이 이야기를 모태로 참으로 많은 역사적 예수 찾기가 감행됐구나 하는 허무감도 생긴다. 충분히 의심할 수 있고, 이성의 날을 세워서 검증하는 것도 건전한 신앙을 돌아보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다. 이 이야기를 찾아 헤맸던 탐색의 시작은 역시나 <신의 변명>을 읽은 직후였다. 뭔가 새롭고 운은 뗐는데 결말은 없는, <신의 변명>의 커다란 큰 그림은, 옥성호 작가는 뭐라고 할지 몰라도, 라이마누스의 이 이야기가 전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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