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은 보유자본에 따라 결정되는 위상이다. 김규항은 중산계급 이상은 우파, 중산계급 이하는 좌파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속한 계급의 범위 내에서 우파, 좌파를 옹호하거나 주장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중산계급 이상의 사람들 중에도 소수 이긴 하나 좌파의 생각을 품는 사람들이 있고, 중산계급 이하의 사람들 중에서도 우파의 생각을 품을 다수가 존재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마땅히 자신의 계급에 맞게 생각해야할 사람들이 자신에 반 하는 결정과 사고습관에 몸이 베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우민화 정책에 따른 교육의 결과일 수 있고, TV나 신문을 통해 학습된 결과 일 수도 있다. 그래서 홍세화는 우리들에게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한다. 우리는 너무 좁은 이념의 스펙트럼 속에 갖혀 사고하고 있다. 기껏 해야 "수구적 극우냐,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냐"인 것이다. 이는 모두 우파 견해로, 우리 사회는 진정한 좌파적 견해를 소유하지 못한 중산계급 이하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중산계급 이하의 사람들 조차도 자본논리에 순응적이기 때문이다. 신분상승에 대한 유혹을 벗어버리지 못해 신기루를 좇아 가거나(자녀교육, 부동산 투자, 주식투자 등등), 현재의 삶의 질만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부던히도 애쓰는 사람들, 도시생활 최저 생계비만이도 탈피해 보고자 땀흘리는 사람들에게서 조차도 우리는 자본의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다. 여기에는 매스컴을 통한 소비조장 사회도 한 몫하고 있다. 승자독식 사회로 안내하는 자본의 논리와 그 진행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의료보험 민영화니, 수도 민영화니 하는 것들은 우리들의 공공 가치를 심하게 훼손하게 될 텐데도, 자본가의 음모를 계속 넋 놓고 보아야하는가 말이다.
이제 우리는 공공의 가치가 우리의 삶의 가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몸으로 느낄 때가 되었다. 우리의 개인적인 욕망으로 팽창하는 부는 공공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자녀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미래를 선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의식은 깨어있어야한다. 저 서유럽의 좌파적 성향의 복지 서비스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많다. 그들은 좌, 우파를 떠나 더이상 그들의 사회복지의 가치를 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몸으로 이미 체험했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논리가 그것을 대신할 수 없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념과 사고는 어떠한가? 교육의 탓인지 단지 우리는 그들과 국민성 자체가 달라 그와 같은 체제가 맞지 않는다고 한국형을 고집할 것이다. 이는 어쩌면 수구 세력들의 바람에 맞춰 우리가 한국형(?)으로 순응해주는 것 때문은 아닐지 반성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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