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동명의 소설 [작은 아씨들]과는 인적 구성만 유사할 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다룬다. 원작이 어린 레이디들의 성장과 결혼을 다룬 것이라면, 이 드라마는 느닷없이 불의의 파고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정의의 여자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특출나게 싸움을 잘하거나 추리를 잘 하거나, 힘이 좋거나 하는 면은 없다.
인적 구성 면에서, 원작은 딸이 넷, 이 드라마는 딸이 셋이다. 원작에서 셋째가 일찍 죽으니까, 숫자는 일치하게 된다. 첫째는 특색없는 회계, 경리급 직원인데 대체로 일치한다. 원작에 비해 동생들을 챙기고 맏언니 노릇 하느라 열심이다. 다소 한국적이다 싶다. 둘째는 기자다. 불의를 보면 못참는다. 연대의식이 강한 편이다. 원작의 둘째가 작가인 것과 대체로 일치한다. 막내는 예고 미술과 학생이다. 원작의 미술 지망생과 일치한다. 심지어 부자인 고모할머니도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위의 구성에 '푸른난초의 비밀'을 가진 정란회라는 조직과의 일전을 다룬다. 과연 거대하고 강력한 조직에 맞서서 힘없는 세 자매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작가는 곳곳에 조력자를 보내 그녀들의 싸움을 돕는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 거듭 제공하니 작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이 작가 <헤어질 결심>의 그 작가가 맞나 의심스러웠다. 정서경 작가가 <알쓸인잡>에 출연했을 때, 인물간의 물리관계라는 면을 주로 묘사한다(작용 반작용)는 말에 감명 받았던 것 같은데, 이 드라마는 막장 같은 전개를 펼쳐 보여줬고, 어이없는 전개에 실소를 금치 못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실망스런 전개였다.
단적인 예로,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던 첫째 인주(김고은 분)가 극중 진화영 언니의 죽음을 파헤치며, 무책임한 죽음도 감내하는 장면들이 그랬다. 물론 그만큼 인주는 무책임하고 말만 앞서고 감정에 휘둘리는 면이 있긴 했다. 주인공으로서 너무 허술했다. 그런 그녀와 동생들이 거대 음모 조직을 송두리쩨 몰락시킨다는 결말이라니, 말이되는가? 저쪽은 살인도 서슴치 않는 비밀 조직인데다가 언론과 정계, 재계까지 연결된 강력한 조직망을 갖췄고, 청부살인에도 능하다. 소위 기획 살인으로 자살이나 사고 위장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이들인데도 말이다.
더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 시종 이 세 자매와 척을 졌던 박재상 이사장이 푸른 난초를 받아들고는, 그것도 대망의 서울 시장 선거를 이겨 놓고도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자살을 감행한다. 와이프 원상아 관장의 말에 따라 노예나, 뭐엔가 홀린 사람 처럼 말이다. 이제 악의 대상이 바뀌었다. 원상아 관장의 광기가 그 통제선을 넘어섰다.
배트남 파병 사조직인 정란회와 부동산 PF, 재개발 등을 통해 성장한 건설사, 그리고 그 비자금을 관리하는 한 경리 직원과 꼬리표 없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재배되는 푸른 난초 등의 거래정황 등이 이 드라마의 큰 흐름이라고 봐야하겠다.
이 드라마를 보니 허화평이라는 예비역 장성 하나가 떠 올랐다. 군 사조직 하나회의 회원이었고 천 억이 넘는 부동산 자산가가 되었고 자신의 복무시절의 정무적 판단과 국가 안보의 방향이 여전히 지금도 맞다고 믿는 작자다. 광주 민주화 운동도 북한의 무장 간첩설로 굳게 믿는 위인이다. 이런류의 인간들은 대체로 자신의 신념을 수정할 기회를 가져 보지 못한 듯 하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 인물만 떠올려졌다.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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