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은 이런 제목의 글을 쓰고 싶었다. '정의로운 글쓰기'라는 것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뭐 그렇다고 그동안 정의로운 글쓰기를 애써 써 왔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뱡향성만 추구했다는 것일 뿐이다. 한때 책을 읽으면, 끝은 항상 교훈이 남겨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심지어는 시대의 정의로움을 추구하며 결말을 맺는 말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한 것 같다.
<인물과 사상>으로 일약 실명비판의 달인이 되신 강준만 교수를 지켜보며 희열을 느꼈었다. 노엄촘스키나 박노자 교수의 글도 외국인 시각의 정의로운 분노를 내포하고 있었다. 뿐이랴? 몸소 옥고 생활을 치르면서까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리영희 교수나, 신영복 교수 등의 글을 읽으며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근래에는 유시민 작가나 김어준 총수를 소비했더랬다. 기독교 비판에는 오강남 교수나 옥성호 작가의 책을 활용했다.
이런 면면들이 내 의식과 무의식을 타고 '문장 세계'의 나를 구성하는 듯 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소소한 것에 열을 올리고, 찌질했다. 꼰대였다. 남이야 어떠하든 내 주장을 관철시키기에 나의 정의를 무기삼아 휘둘렀다. 삶의 무기가 되는 정의였달까? 참으로 오만하지 않았나 싶을 만큼 말이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나는 정의롭지도 않았다. 글로써 나의 허세를 표하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의로운 척, 옳은 척, 의로운척, 믿음 좋은 척, 좋은 아빠인척, 자상한 남편인 척, 척, 척 하며..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유식한척까지 하려했던 것이 아닐까? 이게 바로 인정욕구 란 건데도 말이다. 모든 정의로움의 끝엔 '나잘람'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이러니깐 또 나를 바닥까지 캐리하는 것 같아, 스스로 여기서 일단 뭠춰야 하냐 싶은 타이밍이다. 그래서 하는 말. 정직한 글쓰기를 하자는 걸로.
일찌기 파스칼은 이런 멋진말을 남겼다.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어서 병사도 상것도 요리사도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찬양해 줄 사람들을 원한다. 심지어 철학자도 찬양자를 갖기 원한다. 이것을 반박해서 글쓰는 사람들도 훌륭히 썼다는 영예를 얻고 싶어한다. 이것을 읽은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렇게 쓰는 나도 아마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을 읽을 사람들도 ....
<팡새> 9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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