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스웨덴 영화다. 영화 중반에 남편이 아내에게 "노르웨이로 가버려!"라고 나온다. 영어도 아니고, 프랑스어도 아닌 생소한 발음이 귀에 낯설었다. 분명 외국인들도 한국의 발음을 중국과 일본 것에 비해 낯설게 여긴다면 이런식일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이 영화는 남녀의 사랑이라는 게 일부일처제에 국한 된 것이 아님을 인류 태고의 시작부터 설명한다. 난잡한 관계가 성행했었으나 차츰 종교가 생겨나고, 특히 어거스틴이 그 개인의 죄책감에 기인한 여성혐오를 종교에 투영시키면서 황급히 자유로운 성을 가둬놓고 일부일처제를 공고히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세기에 여성의 참정권이 회복되고, 자유로운 히피 문화가 조성되면서 현재의 이혼율 60~70%의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디오라마>인 것이 생경하여 보기 시작했는데, 본디 우리가 아는 프라모델 전시방법이 아닌, 19세기에 유행했던 이동식 극장을 얘기하는 거였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는 나레이터와 디오라마 상황극,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 토론, 그리고 영화의 주요 스토리를 이어가는 한 가정의 권태와 일탈, 그리고 이혼과 양육권싸움을 하는 영화가 뒤섞여 나온다.
여자 주인공의 고단함은 남편의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육아 방임에서 나온 것이라 나도 공감하는 부분인데, 되려 여자에게 일탈을 권유하는 남편이 뭣같다고 여겨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내가 바람피웠다고, 이혼을 강행하는 남편이 느꼈을 배신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남편은 그렇게 아내에게서 아이들을 빼앗고, 아내를 바닥까지 끌어내려 고통스럽게 복수한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 다시 육아의 버거움 때문인지 양육권은 엄마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 부부는 각자 연애를 하고 크리스마스에 애인을 끼고 앉아 아이들과 만찬을 나눈다.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다.
어느 선까지는 <사랑과 전쟁> 수준의 단막극 같은데 어쩌면 보편적인 서구 가정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되고 보면, 누가 엄마이고, 누가 아빠인지 헷갈리는 상황도 올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아직 결혼 안한 엄마 아빠의 애인을 어찌 불러야할 거며, 그걸 보고 배운 자녀들의 앞날도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해서 말이다. 가정이 해체되어가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가까운 미래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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